“나는 피해자”라는 임창정과 자산가들... 일각선 “미미한 처벌이라도 필요”

연선옥 기자 2023. 5. 4. 1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시작된 ‘SG증권 발 주가 폭락 사태’로 8개 종목 시가총액이 8조원 이상 증발했다. 주가가 폭락하면서 해당 종목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됐다. 그러자 주가 조작 세력으로 의심받는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와 친밀한 유명 가수 임창정은 물론, 주가 조작 일당에게 자금을 건넨 고액 자산가, 해당 종목을 장내 매수한 개인 투자자들이 일제히 피해를 호소하고 나섰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들을 순수한 피해자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휴대폰을 개통해 넘기고 신용카드로 수수료를 지불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불법 가능성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투자 수익 극대화를 위해 결과적으로 불법 투자 행위를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다. 이런 측면에서 손실을 입은 투자자에 대해서도 미미하게나마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큰 피해를 입긴 했으나 법의 판단을 받아야 유사한 사건이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가수 임창정은 SG발 주가 폭락 사태로 막대한 투자 손실을 입었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뉴스1

라 대표 등 이번 SG 발 주가 폭락 사태를 유발한 주가 조작 일당은 다단계 방식으로 모집한 투자자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매매 가격을 미리 짜고 거래하는 통정매매 방식으로 8개 종목 주가를 2~3년 동안 대폭 끌어올렸다. 40% 정도의 증거금으로 2.5배만큼 주식을 주문한 뒤 나중에 시세 차액만 정산하는 파생상품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해 원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금융 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자 투자자들이 일제히 주식을 내던지기 시작했고 주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타깃이 된 대성홀딩스·서울가스·선광·삼천리·세방·다우데이타·하림지주·다올투자증권 등 8종목 주가는 폭락 사태 이후 50~80% 안팎 폭락한 상태다.

검찰과 금융 당국은 이번 사태의 배경에 주가 조작이 있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라 대표를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행위 등의 혐의로 입건했고, 가담 의혹을 받는 10명도 출국금지했다.

사태가 터지자 투자자들은 피해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대부분 주가 조작 등 불법 행위로 수익을 낸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고, 단지 고수익을 내준다기에 믿고 돈을 맡겼는데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변호인을 선임해 채권 추심을 유예하고 일정 기간 이자를 면제해 달라며 금융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시중 은행 예금 금리가 연 3% 안팎으로, 이보다 조금 높은 예금 특판 상품이 나오면 은행 ‘오픈런’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투자금의 몇 배 수익을 원하면서 ‘묻지마 투자’에 나선 것은 암묵적으로 전주(錢主) 역할을 수행해 결과적으로 불법 행위에 동조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부동산이나 주식 등 모든 자산 시장에서 기본 원칙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으로, 손쉽게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약속은 투자 사기를 치겠다는 말과 같다”며 “고수익을 기대하다가 손실이 나니 ‘나는 피해자’라는 논리는 더 이상 우리 국민에게 통하는 정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막대한 투자 손실이 발생했지만, 손실을 입은 투자자를 피해자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는 투자자가 의사결정할 때 공정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투자 이익을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태에 타깃이 된 종목들이 급등하자, 투자 경고가 나오는 와중에 장내 매수한 개인 투자자들 역시 단순히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를 들어 라 대표 일당이 주가를 끌어올린 삼천리와 대성홀딩스, 서울도시가스 등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투자 경고가 나왔다. 지난 2~3년 동안 주가가 1000% 급등했는데, 기초체력 없이 오른 주가가 과열 상태라며 언제든지 큰 폭 조정받을 수 있다는 증권사 분석이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럼에도 많은 개인 투자자가 해당 종목을 매수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수법이 조금씩 바뀔 뿐 주식시장에서 발생하는 주가 조작은 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며 “투자 자금을 맡겼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 역시 낮은 수준으로라도 처벌해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