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투명인간, 유령으로 대하는 방송사는 들어라"

윤유경 기자 2023. 5. 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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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경남CBS 대책위,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 원직복직 요구 피켓투쟁 집회 진행 100일째…"CBS는 즉시 행정소송 중단하고 경남CBS 아나운서 정규직 고용하라" 규탄 이어져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노동위원회 복직 명령에 불복한 CBS를 비판하는 1인 시위가 오늘(4일)로 100일째다.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해고한 경남CBS 결정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지만 CBS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해당 아나운서를 다시 프리랜서로 복직시켰기 때문이다.

CBS는 최 아나운서와 4년 4개월에 걸쳐 3차례의 '프리랜서 업무위탁 계약'을 맺고 경남CBS에 고용했다가 2021년 12월31일자로 '계약종료'를 통보했다. 이후 경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지방노동위원회는 최 아나운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며 그의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인정하고 CBS에 복직을 명령했다.

하지만 CBS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최 아나운서와는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복직시켰다. 업무 지시 방식을 바꿔 노동자성 지표들을 없애면서 '무늬만 복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적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이에 불복해 지난 3월16일부터 점심시간마다 CBS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해왔다.

1인 시위 100일째를 맞은 4일 오전 언론노조와 대책위 등은 서울 목동 CBS 앞에서 투쟁 집회를 열었다. 행사 1부는 '방송사에 많은 비정규직들이 법적·제도적 보호 없이 불안정 노동을 하며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플래시몹으로 시작했다. 유령 분장을 한 대책위원들은 아나운서뿐 아니라 '방송 작가', '프리랜서 PD', '캐스터'가 적힌 종이를 붙이고 시위 현장을 맴돌았다. 시위 현장에는 스티커 투표를 통해 투쟁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가판대도 마련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적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4일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의 정상 원직 복직를 요구하며 피케팅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스티커 투표를 통해 투쟁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들었다. 사진=윤유경 기자

최 아나운서는 투쟁 이야기와 응원글로 대본을 꾸려 현장에서 약 20분간 '거리의 라디오'를 진행했다. 최 아나운서는 “나는 법이 인정한 노동자이지만, 매일 다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경남CBS는 나를 투명인간, 유령으로 대하고 있고 그 빈도와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며 “아나운서로서의 입지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모두 무너지고 있다. CBS가 자정능력이 있는 조직이라고 믿고싶다. 정의를 외치던 CBS로 돌아와달라”고 말했다.

CBS의 '꼼수'로 최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 복직했지만 이후 CBS는 노동자성으로 인정받을 만한 요소를 없앴고 최 아나운서는 각종 괴롭힘에 시달렸다. 최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 돌아간 이후, 전용 컴퓨터가 없어지고 업무지시도 구두가 아닌 전용 서류함으로 대체됐다. 회사가 '한국아나운서협회에 소속된 아나운서만 정식 아나운서'라고 주장해 최태경 '아나운서'라고도 불리지 못하고 있다. 방송에서도 홈페이지에서도 아나운서라고 소개되지 않는다”며 “경남CBS 홈페이지에도 내 이름으로 된 게시글이 다 삭제됐고 게시글을 올릴 수 있는 권한이 박탈당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오랜 고민 끝에 공개 투쟁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 피케팅 시위 현장에서 발언하는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 사진=윤유경 기자.

이날 최 아나운서의 이야기에 지나가는 20~30여명의 초등학생들이 “힘내요”, “멋지다”라고 외치며 응원의 목소리를 보태기도 했다. 대책위에서 마련한 현장 게시판에는 '정상복직을 응원합니다', '한 사람의 삶과 노동을 무시하면 CBS는 무너진다', '함께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정규직과 같은 일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라고 적힌 시민들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적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4일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의 정상 원직 복직를 요구하며 피케팅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시민들이 응원의 한마디를 전했다. 사진=윤유경 기자

노동위에서 최 아나운서를 법률대리한 김유경 노무사(돌꽃 노동법률사무소)도 “노동위의 (복직명령) 결정이 나던 날 최 아나운서가 정말 좋아했다. 싸움을 다시 시작할 때까지 한 달 넘게 고민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최 아나운서는 '이 말도 안되는 선례가 방송 바닥에 남는 순간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며 “본인의 안위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명확하게 들었다. 반드시 이 투쟁을 통해 최 아나운서의 평범한 일상을 돌려놓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피케팅 시위 현장에서 발언하는 김유경 노무사. 사진=윤유경 기자.

2부에서는 시위 참석자들이 릴레이 발언을 이어갔다. 현장에 참석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노동위원회와 노동청, 법원이 존재하는데 때로는 기관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로 인해 표류하는 노동자가 생긴다. 최태경 아나운서의 투쟁이 그렇다”며 “CBS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될 일이다. 반드시 해고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아니라면, 최 아나운서에 대한 괴롭힘을 멈춰야 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원직 복직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케팅 시위 현장에서 발언하는 류효정 의원. 사진=윤유경 기자.

조주희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노무사는 “CBS처럼 노동위원회의 구제 명령을 이행하는 척만 하는 사용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한다면 노동법의 존재 의미는 없어질 것”이라며 “정당한 권리를 하루아침에 침해당한 노동자는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법적으로도 수년을 싸워야 하는 동시에 일터에서도 꿋꿋이 버텨내야만 하는데, 정작 법을 어긴 CBS 경영진은 사건을 외면한 채 각자의 삶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나조차도 너무 억울하다. 우리는 서로의 곁을 지키며 투쟁을 이어가고 법과 상식이 통하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케팅 시위 현장에서 발언하는 조주희 노무사. 사진=윤유경 기자.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은 “5인 미만이나 어려운 노동 현장을 취재해 준 방송사들이 권리찾기유니온의 '가짜 3.3 노동자의 날' 기념식 때부터 보도를 잘 안하고 있다. 출입 기자들에 따르면, 특정 방송사 몇 개는 대놓고 데스크에서 (보도를) 자른다고 한다”며 “방송사가 반성하지 않고 수많은 '최태경'을 노동자가 아닌 유령으로 취급하겠다고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기자회견과 집회 등에서 방송 산업을 맨 앞에, 가장 악랄한 산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피케팅 시위 현장에서 발언하는 정진우 위원장. 사진=윤유경 기자.

발언자들은 CBS가 정상 원직복직을 위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장은 “부당해고 문제, 프리랜서로의 원직 복직이라는 CBS의 황당한 반응이 더 이상 이 문제를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CBS는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도 “CBS가 시간을 더 끌어봐야 가중되는 것은 비난과 부담뿐이다. CBS 사측에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합리적으로 명령을 이행하고 정당한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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