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삼성에 갑질한 美 브로드컴이 꺼낸 카드는

장유미 2023. 5. 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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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 공정위에 200억원 상생기금 제시…수천억 피해 본 삼성 등 국내 업계 '불만'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삼성전자가 미국 업체들의 '동네북' 신세가 된 모양새다. 퀄컴에 이어 미국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에게도 갑질을 당했기 때문이다. 브로드컴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진 시정 방안으로 200억원 규모 상생기금안을 제시한 상태지만, 갑질을 당한 삼성전자가 이를 반대하고 나서면서 공정위가 향후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주목된다.

삼성전자 서울 본사에 걸린 삼성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이 내놓은 동의의결(자진 시정)안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공식 의견서를 조만간 공정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동의의결안에 삼성전자에 대한 피해보상 방안을 포함하거나, 동의의결 대신 정식 심의를 통해 브로드컴의 위법 여부를 확정해달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다음달 7일 전원회의를 열고 공정위 심사관과 브로드컴이 협의해 마련한 동의의결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 수천억 피해 준 브로드컴, 200억 상생기금으로 면피?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의 핵심 부품인 RF 프런트엔드(RFFE), 와이파이(Wi-Fi), GNSS(위성항법시스템) 등을 공급하는 회사다. 2020 회계연도 기준으로 순매출액이 약 239억 달러(약 28조7636억원)다.

공정위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경쟁사를 배제할 목적으로 삼성전자 등 국내 스마트 기기 제조사에 불리한 내용의 3년 장기 독점 계약 체결을 강요한 혐의를 받는다. 기간은 2020년 3월 27일부터 2021년 7월 2일까지로, 삼성전자가 스마트기기 부품을 매년 7억5천만 달러 이상 구매하도록 강제했다. 사실상 삼성전자의 계약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쟁업체의 진입을 막은 셈이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 기기의 핵심 부품인 RF 프런트엔드(RFFE), 와이파이(Wi-Fi), GNSS(위성항법시스템) 등을 공급하는 회사다. [사진=브로드컴]

삼성전자는 부품 공급이 갑자기 끊기면 완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던 탓에 브로드컴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할당량을 채우려고 부품을 과다 구매했을 뿐 아니라 장기간 다른 경쟁사 부품을 이용하지 못하고, 남은 부품은 악성재고로 떠안게 됐다. 이에 따른 피해액은 수천억원대로 추산됐다.

이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금지된 '경쟁사업자 배제 행위', '배타조건부 거래 행위' 등에 해당된다.

업계에선 피해가 워낙 광범위했던 탓에 2016년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된 퀄컴에 버금가는 제재가 이뤄질 것으로 봤다. 그러나 공정위가 해당 사안을 심사하던 중 브로드컴이 지난해 7월 동의의결을 신청했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동의의결은 사업자가 제안한 시정방안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조사 중인 사안이라도 법 위반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앞서 공정위는 애플이 지난 2021년 국내 이동통신사들을 상대로 '갑질'을 벌인 사건에 대해 거래 질서 개선, 소비자 후생 제고 및 중소 사업자 상생 지원을 위한 1천억원 규모의 기금 마련 등을 담은 동의의결안을 확정한 바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애플에 이어 브로드컴까지 업체들에게 수천억원의 피해를 입혔지만,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실질적 보상 없이 적은 금액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특히 브로드컴이 제시한 200억원은 턱 없는 수준이란 판단이다.

그러나 브로드컴의 동의의결 절차는 막바지에 접어든 만큼 공정위가 기존 내용을 뒤집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국내 업체들이 요구하고 있는 피해구제 방안이 추가되지 않은 채 최종 동의의결 결정이 날 경우 대형 소송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동의의결은 빠르게 피해구제가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해당 사업자가 과징금 같은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돼 '면죄부' 논란이 있다"며 "국내 업체들이 수천억원대 피해를 입었는데 실질적으로 구제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의의결안의 피해구제 효과는 미미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 퀄컴도 삼성에 부당 계약 강요…공정위, 과징금 '1兆 폭탄' 확정

삼성전자는 미국 반도체 기업인 퀄컴에게도 '갑질'을 당했다.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모바일 제조사 등에 부당한 계약을 강요한 것이다.

퀄컴은 삼성전자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AP) '스냅드래곤'의 제조사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에 있는 본사 퀄컴 인코포레이티드는 특허권 사업을, 나머지 2개 사는 이동통신용 모뎀칩세트 사업을 하고 있다.

퀄컴 본사 [사진=퀄컴]

공정위는 지난 2016년 퀄컴에 1조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퀄컴이 모뎀칩세트 공급과 특허권을 연계해 기업들에 이른바 '갑질'을 하고 특허권을 독식했다고 판단해서다.

업계에 따르면 퀄컴은 휴대전화 생산에 필수적인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를 보유하고 있다. 또 특허 이용을 원하는 사업자에게 SEP를 차별 없이 제공하겠다는 '프랜드(FRAND) 확약'을 하고 SEP 보유자 지위를 인정 받았다. 프랜드 의무는 표준필수특허(SEP) 보유자가 특허 이용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퀄컴은 삼성·인텔 등 칩세트사가 계약 체결을 요구하면 이를 거부하거나 판매처를 제한하는 등 실질적인 특허권 사용을 제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퀄컴이 칩세트를 공급 받는 휴대전화 제조사들에도 특허권 계약을 함께 맺도록 강제했고, 이를 통해 칩세트 시장 지배력을 강화해 휴대전화 제조사와의 특허권 계약도 일방적인 조건으로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휴대전화 제조사들의 특허권을 넘겨받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고 결론짓고 퀄컴에 철퇴를 가했다. 퀄컴은 일단 공정위 처분을 받은 후 3개월 안에 과징금을 모두 납부했으나, 이에 반발해 이듬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서울고법(원심)은 지난 2019년 공정위 시정명령 10건 중 8건이 적법하고 과징금도 정당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이후 퀄컴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최근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처분을 그대로 확정했다. 공정위가 관련 혐의를 인지해 조사에 본격 착수한 지 약 8년 8개월 만이다. 공정위가 퀄컴에 부과한 과징금은 약 1조311억원으로, 공정위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상 타당성 없는 조건 제시와 불이익 강제 행위 등이 다른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어렵게 하는 부당 행위라고 본다"며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판단 기준을 재확인 해 구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퀄컴이 2009년에 이어 2016년에도 공정위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건으로 시정조치를 받았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이 같은 행위가 이후에도 개선이 됐는지는 사실 의문"이라며 "공정위가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업체들이 해외 업체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받는 지에 대해 꾸준히 감시하며 '시장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더 충실히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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