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탈당 좀’…골치 아픈 의원, 내보내면 살고 버티면 죽는다?

구민주 기자 2023. 5. 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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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망언‧돈 봉투 논란 의원에 탈당 권유…당은 책임 벗고 의원은 직 유지
의원 징계 다루는 국회 ‘윤리특위’는 역대 단 2건 징계…‘개점휴업’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더불어민주당 윤관석(왼쪽)·이성만 의원 ⓒ연합뉴스

잇단 '망언' 논란과 '돈 봉투' 의혹으로 각각 곤혹을 치르고 있는 거대 양당에 한 가지 비슷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물의를 빚은 자당 의원들을 향해 당 지도부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자진탈당을 적극 권유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골치 아픈 의원을 당 밖으로 밀어내 책임까지 함께 '손절'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은 '책임에서 벗어나고, 당사자도 당의 징계를 피하며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권의 '탈당의 공식'이 또 한 번 양당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돈 봉투'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송영길 전 대표를 비롯해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탈당계를 받아냈다. 당 지도부를 비롯해 다수의 구성원들이 '선당후사' 정신을 강조하며 탈당을 적극 설득한 결과로 알려진다. 당에서 이들에 대한 진상조사와 징계에 착수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자, 버티던 끝에 탈당을 결단한 거란 분석도 제기된다.

이들은 당을 나가며 일제히 "당에 더는 누를 끼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윤관석‧이성만 의원은 "반드시 명예를 되찾고 당으로 돌아오겠다"고도 강조했다.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나 사과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민주당은 탈당한 이들 외에 의혹에 연루된 다른 의원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당을 떠날 것을 권유하는 분위기다. 이를 두고 논란의 의원들이 당적을 포기할 경우, 당 차원서 이들에 대해 자체 조사나 징계를 논의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책임 회피를 위한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각종 망언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김재원‧태영호 최고위원을 두고 당 일각에서 최고위원직 사퇴와 자진탈당을 적극 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권유에는 당 차원의 중징계보다 선제적인 행동에 나서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는 논리도 작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당 윤리위에서 당원권 정지 1년 이상의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내년 총선 출마가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경우 끝내 스스로 결단을 내리길 거부하면서 당 윤리위에 운명을 맡기게 되었다.

3일 오전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재원 최고위원(왼쪽)과 태영호 최고위원. ⓒ연합뉴스

논란→당내 조사 움직임→탈당→징계 회피 공식 반복

의혹의 끝이 '탈당'으로 귀결되는 경우는 정치권에서 반복돼 왔다. 2020년 '일감 몰아주기'와 증여세 탈루 의혹 등이 제기된 전봉민 의원, 이해충돌 의혹에 휩싸인 박덕흠 의원의 경우 모두 당에서 자체 진상조사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하루도 안 돼 탈당을 선언했다. 예정된 조사 절차는 탈당과 동시에 모두 중단됐으며, 이들은 수개월 후 조용히 복당했다.

비슷한 시기 민주당도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 사태와 임금체불 등으로 논란을 빚은 이상직 의원이 당 윤리감찰단에 회부된 직후 자진 탈당하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민주당은 당시 '이상직 사태'로 여론의 비판이 일자 '징계 회피성' 탈당자가 복당할 경우 불이익을 주는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제 민주당 당규 11조와 18조 등엔 '징계 회피를 위해 탈당한 자는 5년 내 복당할 수 없으며 향후 복당 시 해당 사유를 참작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어 '당무위원회가 달리 의결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는 예외 규정을 달아 놓은 탓에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양당 모두 때마다 논란→당 차원 조사 움직임→자진 탈당→징계 회피이라는 공식을 따른 데 대해 따끔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자진탈당은 절대 책임을 지는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최 교수는 "'선당후사'라는, 국민이 보기에 무의미한 명분을 내세워 당을 나가고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하는 게 어떻게 책임 있는 자세인가"라고 지적하며 "의원직 사퇴하고 배지를 떼야만 비로소 진정한 징계"라고 강조했다.

"윤리특위 제소, 정치적 퍼포먼스로 전락"

국회의원들의 각종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이들의 징계 여부를 따지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단골로 언급되곤 한다. 주로 상대 정당에서 징계안을 제출하지만, 실제 징계로 이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때문에 윤리특위가 '개점휴업' 상태라는 지적이 때마다 반복돼왔다.

4일 현재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헌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발의된 232건의 징계안 중 본회의를 통과한 안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강용석 전 의원의 징계안 단 2건에 불과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석을 점거해 회의 방해로 30일 국회 출석 정지 처분을 받았다. 강용석 전 의원의 경우 2011년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역시나 30일 국회 출석 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로 인해 윤리특위가 사실상 '국회의원의 윤리의식 제고와 자율적 위상 정립을 위한다'는 출범 취지를 벗어나 양당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정쟁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들도 다 윤리특위에서 징계가 심사되고 실제 징계가 내려질 거라고 보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다 알면서도, 상대의 잘못을 국민 앞에 부각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로 징계안 제출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윤리특위가 징계율을 높여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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