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궁녀들 구슬 처럼 살던 도시, 왜 유곽이 되었나 [함영훈의 멋·맛·쉼]

2023. 5. 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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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이시카와현 가나자와 히가시차야 이야기

[헤럴드경제, 가나자와=함영훈 기자] 일본 쿠로베-다테야마 알펜루트 여행을 시작하는 시점, 이시카와현에는 ‘리틀 교토’라 불리는 히가시차야 거리가 있다.

히가시차야의 미소

히가시차야 거리를 관할하는 이시카와현은 일본 주부(中部)지방에서 산, 바다, 반도, 농촌, 도시, 유적, 문화예술 등 가장 다채로운 매력을 두루 갖춘 곳이다.

특히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는 수많은 문화예술 공간들이 있는데, 일본 최고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에서 북쪽으로 10여분만 걸어가면 만나는 히가시차야 거리와 300년된 전통마켓 오미초시장은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히가시차야 거리는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중세-근세 마을이다. 많은 설명서에 ‘유곽’이라고 적혀 있어 환락가를 연상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비오는 어느 봄날 오후 히가시차야 거리

쇼군인 도쿠카와 가문은 지방 호족의 준동을 방지하기 위해 지방성주들에게 연 3회 도쿄 알현, 부인 도쿄 강제 거주 등을 명했다. 이시카와-기후-도야마 등지를 지배하던 영주 마에다는 모반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소문내기 위해 매우 소극적인 태도와 바보스런 행동도 많이 해, 주민들로 부터 ‘바보영주’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일왕이 사는 교토와 가까운 곳을 지배하는 영주라서, 마에다 가문은 쇼군으로부터 결혼 동맹까지 하자는 ‘명령’을 받게된다.

이에 따라 도쿠가와 가문의 타마히메 공주가 14세에 마에다가문 후계자와 결혼해 가나자와에 살게 되는데, 이때 궁녀 300명을 데리고 왔다. 가나자와에 변화 생기기 시작한 계기였다.

수도의 궁궐에 크게 뒤지지 않는 규모의 식솔이 생기면서 작은 궁에서 모두 거주할 수 없게 되자, 성 주변에는 시종들의 생활공간이 형성되고, 성에 물품을 대는 상단이 포진하게 된다. 가나자와라는 도시가 확장된 이유이다.

가나자와의 직물은 매우 섬세하고 귀티가 난다.

의복, 생활용품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에 자연히 이 도시엔 직물산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궁녀가 되기 위해서는 지혜, 손재주, 미모를 모두 겸비해야 하기 때문에 도쿄 출신 궁녀들이 만들어낸 가나자와 직물은 일본 내 최고품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이름 처럼, 구슬(한국발음:다마) 같은 지혜를 발휘하던 타마공주는 시댁에 대한 친정의 오해를 푸는 중재자로서, 가나자와 경제산업의 주역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만 23세에 요절하고 만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대다수 궁녀와 시종, 타마공주의 성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다시 도쿄로 돌아가고 히가시차야 및 주변 동네는 공동화된다.

찬란했던 영화를 뒤로한 채 잡초만 자라는 빈터엔 시인과 묵객이 찾아든다. 300궁녀와 공주의 억척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런 이야기는 문인들의 단골소재가 되고...

히가시차야 거리 140년된 떡집

문화예술인들이 몰려들자 자연히 이들에게 술과 음식을 파는 가게가 생겼고, 아련한 이야기의 서정에 빠져 노래를 부르는 유곽도 들어선다. 문화예술 유곽이었기에 게이샤의 수도 늘고, 수준도 높았다고 한다. 공동화되었던 도시가 문화예술-상업형 도시로서 부흥기를 맞은 것이다.

그래서 일부 소개글에는 ‘유곽이지만 풍류과 문화가 있던 건전한 장소’로 소개되고 있다. 아마 일본내 여러 중심도시 중 그나마 멋이 살아있는 유곽거리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궁인들이 떠났어도 가나자와의 다른 마을들엔 궁인들이 유산 처럼 남겨준 직물산업이 건재했고, 건강 농업생산물의 소출도 여전히 많았으며, 사금(砂金) 채취 가공을 통한 부의 축적도 지속됐기 때문에, 이곳은 풍요를 기반으로 문화, 예술, 다도(茶道), 미식 등이 발달했다고 모두투어 임지은 역사문화해설가이드는 분석했다. 고등어, 정어리, 방어 등 수산물, 잎담배, 밤 등 농산물 소출도 많았다.

가나자와시립 금박공예관. 가나자와의 금광 전설은 서동요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지금도 중세~근세 상인, 시인, 묵객, 게이샤들이 머물며 일하던 공간들이 잘 보존돼 있다. 대부분의 가옥들에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이곳과 비슷한 느낌의 교토는 인파가 북적거리지만, 이곳은 비교적 호젓하다.

가나자와 특산공예 공방, 지역 술, 금박 아이스크림, 전통과자, 커피 등 다양한 음식과 문예콘텐츠를 즐기는 곳이다.

이 거리의 상인들도 매우 친절하다. 한국인들도 잘 아는 일본의 거대도시, 유명관광도시와는 달리 친절의 진정성도 느껴진다. 그 진정성은 한국인 여행자의 마음에 훅~ 하고 와닿는다. 보슬비가 내려 더 운치 있었던 4월 하순 어느 봄날 히가시차야 거리는 한국여행객의 가슴에 추억처럼 포근히 내려 앉았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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