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순간을 함께하는 우정, 선수와 매니저의 세계
선수와 매니저는 단순히 ‘계약’으로 묶인 관계만은 아니었다. 지난 4월 제주에서 열린 KLPGA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의 우승자 이예원의 일일 매니저를 수행하며 느낀 그들만의 세계를 공개한다.
윈윈하는 그들의 관계, 어떤 계약이 껴 있기에?
골프 선수의 수입 구조는 크게 3가지다. 성적에 따른 상금 수입, 그에 따른 인센티브, 그리고 기업과 후원 계약으로 받는 계약금(연봉) 등이다. 연봉은 선수의 성적과 스타성, 이미지, 잠재력 등에 따라 달라진다. 선수가 우승을 하면 계약금을 제외하고, 상금 수입과 후원 기업에서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수령하는데 인기가 많은 선수는 후원 기업이 10곳이 넘어 그 수익이 막대하다. 프로 골퍼의 수입 중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게 인센티브다. 정해진 일정 금액을 받거나 보통 대회의 상금에 따라 우승 시 30~50%, 5위 이내 20~30%를 받곤 한다. 선수는 성적에 따라 더 많은 보너스를 받을 수 있고, 후원하는 기업은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수록 더 큰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선호한다. 여기서 매니지먼트는 중개인 역할을 한다. 매니저가 여러 기업에 자사 소속 선수의 후원을 제안하고 계약이 성사되면 15~30%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그리고 선수가 우승했을 경우 인센티브의 일부도 매니지먼트의 몫이 된다. 선수가 성적을 잘 낼수록 계약금은 몇 배씩 뛰기도 하니 매니저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와 장기간 계약을 맺고자 하고, 선수는 후원 기업을 더 많이 매칭해 줄 수 있는 매니저를 구하며 윈윈 구조를 유지하게 된다.
제주에서 열린 KLPGA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3, 4라운드에서 지난해 신인왕 이예원의 일일 매니저 제안을 받았다. 선수 계약과 선수 활동에는 ‘거액이 오간다’는 사전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호화스럽고 젠틀하게 선수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주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주어진 첫 임무는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김밥집에 들르는 것이었다. 시작부터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예원의 소속사인 매니지먼트 서울 남민지 대표와 함께 김밥을 들고 갤러리 틈에 섞여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일일 매니저로서 할 일은 비교적 간단했다. 선수를 앞서지 않고 뒤를 따라 가는 것, 선수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 갤러리와 겹치지 않게 하는 것, 선수의 의상이 불편할 때 개선하는 것, 선수에게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을 공급하는 것…. 남 대표는 매의 눈으로 선수가 실수를 하는 지점과 체력이 떨어지는 포인트를 짚어내며 경기력을 분석했다.
이예원은 공동 2위 선수들에게 6타 차로 넉넉히 앞서며 플레이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1만 보를 걸었을까. 갑작스러운 미스샷이 나왔다. 체력이 달리는 듯 안색이 어두워진 그를 보니 김밥에 손이 저절로 갔다. 플레이가 느슨해지자 제주의 사나운 바람과 선수 간 신경전, 다른 선수 팬클럽의 오버스러운 리액션까지 선수를 방해하는 모든 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4라운드 선두로 출격하는 그의 뒤에 서니 ‘방해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선수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불필요한 말을 섞지 않았고, 의미 없는 웃음도 짓지 않았다. 지친 선수들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던 기자의 역할을 내려 놓고 한 선수만 바라보니 꽤 많은 생각이 스쳤다. 선수에게 어떤 편의를 더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 한다든가, 경기 중 흔들리는 것을 잡아줄 멘털 코치를 떠올린다든가….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에이전트와 같은 동질감에 사로잡혔다.
선수와 매니저는 최고의 순간을 함께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관계
이예원은 결국 KLPGA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의 우승컵을 들었다. 매니저로서 마지막 역할은 그가 방송에서 읽을 우승 소감 멘트를 깔끔하게 다듬어주는 것이었다. 고작 2라운드만 함께 했을 뿐인데 생애 첫 승을 거머쥔 그와 최고의 순간을 함께해 영광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예원이 우승을 놓쳤다면 어땠을까 시뮬레이션을 해 봤다. 아마 우승을 놓친 원인을 분석하고 체력 및 운동 관리부터 멘털 트레이닝, 잠재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를 찾는 등 퍼포먼스를 높이기 위한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비단 이것이 계약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 대회가 아니라 몇 년 동안 한 선수의 표정을 읽어내는 담당 매니저의 무게감은 더했을 것이다.
이 생각을 토대로 그들의 관계는 ‘최고의 순간을 함께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관계’라고 정의 내리게 됐다. 선수에게는 몇 년 동안 우승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연속 컷 탈락을 한다거나 만년 2위만 하면서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또 서로 오해가 생겨 떠났다가 다시 마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겠지만 어쨌든 계약을 바탕으로 긴 여정을 함께하며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은 공통된 사실. 계산적인 수익 분배를 떠나 ‘우정’의 감정이 자리 잡은 곳에서 이 산업이 지탱하고 있음을 깨닫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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