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공연계 ‘송해’로 기억되고 싶어요”
[서울&] [사람&]
을 안내하고 있다. 이씨는 26년째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리는 전통예술 공연의 진행을 맡고 있다. 송파구 제공'>
20살 때 국립창극단 1기생으로 시작
박동진 명창의 제자로 가무악에 능해
공연·방송도 진행, 우리 가락 등 알려
“쓰러질 때까지 마이크 놓지 않을 것”
‘얼씨구~ 좋다!’ 국악인 이정일(69)씨가 흥겹게 추임새를 넣으며 600여 명 관객의 호응을 이끌었다. 송파구 석촌호수 서울놀이마당에서는 송파민속예술단의 공연이 한창 펼쳐지고 있었다. 그의 팔은 손끝에서 어깨까지 공중에서 더덩실 굽이쳤다. 때론 양팔을 활짝 벌려 손뼉을 치기도 하고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흔들기도 했다. 농악놀이, 태평무 등 90여분의 공연 동안 그는 무대 앞이나 뒤에서 내내 서서 출연자와 관객을 이어주는 역할을 쉼 없이 이어갔다.
“공연, 사회, 강연으로 50년 동안 늘 서 있다 보니 습관이 돼서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지난 4월22일 토요일 오후 공연이 끝난 뒤 만난 그는 피곤한 기색 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는 26년째 서울놀이마당의 공연 진행자로 함께해왔다. 서울놀이마당은 1984년 서울시가 만들었고 1997년부터는 송파구가 이관받아 운영해온 상설 노천 공연장이다. 다양한 전통예술 공연이 4~6월, 9~10월 주말마다 열린다.
그의 국악 인생은 20살에 시작됐다.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 무대에서 박동진 명창의 ‘흥보가’ 공연을 보고 그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소리꾼 혼자 우리 소리와 재담, 연기와 춤을 모두 소화해내는 데 매료돼 자신이 갈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방송국 연기자 공채시험에 합격했지만 포기하고, 1972년 국립창극단원 1기생 모집에 지원했다. ‘춘향전의 이도령 역에 딱 맞는 외모’라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으며 합격했다.
매일 5시간씩 개인 연습을 추가로 하며 목소리를 틔우는,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차츰 비중 있는 배역도 맡을 수 있었다. 2년 만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형문화재 전수장학생으로 지정받아 박동진 명창에게서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1993년 그의 국악 인생은 변곡점을 맞았다. 20년의 단원 활동을 접고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그간 갈고닦은 가무악을 기본으로 1인 창무극을 선보였다. 혼자서 18인의 역을 소화해내기도 했다. 송파구로 이사하면서 정월 대보름 등 지역의 크고 작은 민속 행사에서 사회를 보게 됐다. 이런 인연으로 1997년부터 서울놀이마당 민속공연의 진행을 맡아왔다. 공연 진행과 더불어 방송인, 국악 강사로도 활동을 이어갔다.
1990년대 후반 서울놀이마당에는 음향, 조명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시멘트 의자에 지붕도 없어 비나 햇볕 등으로 관객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등 불편이 적잖았다. 관객이 불편을 덜 느끼고 즐길 수 있게 눈길과 마음을 끌 수 있는 멘트를 준비했다. 2000년대 초 시설 새 단장 이후엔 관객이 좀더 다양한 전통문화 예술공연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데 힘을 보탰다.
26년 장수 진행의 비결에 대해 그는 “춤, 장구 등 가무악을 두루 할 수 있고 임기응변에 강한 편이라 길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팀의 지각이나 포기로 펑크가 났을 때는 직접 공연하기도 했다. 가무악 분야를 두루 알고 있어 스크립터도 직접 쓴다. 충분히 숙지하고 있기에 현장에서는 거의 보지 않고 진행한다.
관객이 잘 호응해주면 공연 진행을 준비하느라 쌓인 피로가 싹 가신다. 그는 오랜 공연 진행으로 그 자신도 많이 성숙해졌다고 했다. “덕담하고 격려하며 응원하는 게 몸에 배면서, 젊었을 때 욱하던 성격도 없어지고 철도 든 것 같네요.” 그의 얼굴에 사람 좋은 웃음이 번져갔다.
코로나19 때는 많은 문화예술인처럼 그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3년 넘게 준비해온 새 1인극 ‘이정일의 판’ 해외 공연이 무산됐다. 공연 준비하느라 투자한 것이 고스란히 빚으로 돌아왔다.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서울놀이마당 출연 횟수도 이전보다 많이 줄었다. 코로나19로 두 해 동안 문을 닫고 지난해 다시 열었지만, 예산 축소 등으로 공연 횟수는 예전만큼 늘지 않았다. 그는 “처음엔 좀 서운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관객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에 불러주면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 한다”며 “어려운 여건에도 서울놀이마당 전통공연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서강석 구청장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칠순을 앞둔 그는 누군가가 나이를 물으면 ‘꽃띠’라고 답한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앞으로 새로운 1인 창무극 공연도, 서울놀이마당 진행도 이어가길 희망하고 있다. “판소리를 오래 하면서 아랫배 부위 하단전에 힘을 주며 복식호흡을 해 오장육부가 튼튼하고 속 건강이 좋다 보니 생각도 긍정적으로 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만능예인으로 전통공연계의 ‘송해’로 기억되고 싶다”며 “쓰러질 때까지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며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겨레 금요 섹션 서울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