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김지하 1주기…남긴 숙제 이어받는 다짐의 자리 될 것”
“그의 글씨·그림, 진정한 의미의 현대문인화”
8일은 지난해 세상을 뜬 김지하(1941~2022) 시인의 1주기가 되는 날이다. 김지하의 친구와 동지, 후배들은 6~7일 경기도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추모문화제를 마련해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린다. 학술 심포지엄과 공연으로 이루어진 이 행사와 함께 김지하의 글씨와 그림을 모은 전시회가 4~9일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김지하는 무엇보다 시인이었고 정치적 투사이자 생명사상을 갈파한 사상가이기도 했지만, 글씨와 그림에서도 독자적인 세계를 일구었음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준비가 한창이던 3일 오후 백악미술관에서 전시 총괄을 맡은 미술사학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를 만나 이번 전시의 의미에 관해 들어보았다.
“추사가 죽은 지 10여년 뒤에 그의 시집이 나오는데, 그 책에 신석희가 평론을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추사는 본디 시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 김지하가 워낙 뛰어난 시인이기 때문에 그가 그림에도 대가라는 점이 묻힌 느낌이에요. 제 생각에 지하의 그림은 추사의 시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고 봅니다.”
‘꽃과 달마, 그리고 흰 그늘의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마련된 전시에는 김지하의 글씨와 그림 40점과 그가 글씨와 그림을 배운 무위당 장일순의 난초 그림 2점, 김민기가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 쓴 노래 악보 등 모두 43점이 나온다. 인사동 술집 벽에 썼던 이용악 시 ‘그리움’과 담시 ‘오적’ 및 ‘앵적가’의 발표 지면에 실렸던 삽화 등은 원본이 아닌 사본으로 만날 수 있다. 액자에 담긴 작품들과 함께 김지하의 시집과 산문집, 번역시집 등도 따로 전시된다. 김지하 구명운동에도 참여했던 장폴 사르트르가 직접 편집을 맡은 프랑스 잡지 <현대> 1975년 8~9월호에 ‘오적’이 프랑스어로 번역돼 실린 것도 눈에 뜨인다.
“지하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미술대학에 가고 싶어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서울대 미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지하가 글씨와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운 건 오랜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1980년대 초 원주의 무위당 장일순 선생한테서 서예와 묵란을 지도받으면서였어요. 그 뒤로 지하는 묵란과 묵매, 달마, 수묵산수, 채색 모란꽃 등으로 분야를 옮겨 가며 자신의 미술적 재능을 한껏 뽐냈습니다. 그의 글씨와 그림은 장르를 뛰어넘어 자신의 예술성과 마음, 의지까지 표현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현대 문인화라 할 수 있습니다.”
김지하는 글씨에서도 독특한 자기 서체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자신의 초기 시 ‘황톳길’을 원고지에 펜으로 정서한 작품과 역시 자신의 시 ‘불귀’를 붓으로 쓴 작품, 후배인 판소리 명창 임진택에게 써준 ‘흉중장우주’(胸中藏宇宙) 등이 나왔다. 유 교수는 “지하의 글씨는 그의 시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정형과 법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특히 추사 김정희를 본받은 바가 많아서 그의 작품 중에는 ‘방 완당’(倣 阮堂·김정희를 모방하다)이라 밝힌 작품이 있을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지하의 글씨는 붓에 가하는 힘을 달리하여 글자의 짙고 옅음이 리듬으로 나타나면서 기본적으로 유려한 가운데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절절한 울림이 있다”고 평가했다.
“인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진짜 화가예요. 이번 전시에 나온 지하의 인물화는 많지는 않지만 그가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하고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달마를 그리면서도 코믹한 표정으로 세태 풍자와 같은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어요. 임꺽정을 연상케 하는 우락부락한 이미지로 그린 ‘자화상’이라든가 경제학자 박현채 선생이 파리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재미나게 표현한 그림 등에서 지하의 화재(畫才)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유 교수는 “그림을 볼 줄 아는 이라면 지하가 2014년에 그린 수묵산수 작품들을 보고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농묵(진한 먹)과 담묵(옅은 먹)이 카오스를 이루면서 미묘하게 조화되는 반추상화는 그가 추구한 ‘기우뚱한 균형’ 또는 흰 그늘의 미학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하는 말년에 수묵산수와 함께 채색 꽃그림을 그렸다. 특히 ‘어려서 제일 그리고 싶었던 건 뜰 뒤의 모란이었다’고 말했던 그의 채색 모란은 “화사하면서도 지하의 시 제목이자 화두와도 같았던 ‘애린’을 떠오르게 하는 아련한 아픔이 동반된다”고 유 교수는 설명했다. 유 교수는 7일 오전 11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리는 김지하 추모 심포지엄에서 ‘붓 끝에 실린 모시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김지하의 그림과 글씨에 관해 발표를 한다.
“김지하는 대학 시절에 저를 비롯해 이애주, 채희완, 임진택, 김민기, 김영동 같은 후배들을 민중예술운동의 길로 이끈 존경하는 선배였습니다. 당시 우리는 지하 형을 ‘강도 형’이라고 불렀어요. 우리의 마음을 뺏어갔다는 의미에서였죠. 제가 그간 쓴 평론 중에서도 김지하론을 쓸 수 있게 된 건 큰 기쁨이자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교수는 “이번 전시를 통해 김지하의 그림이 그의 시와 문학, 사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엿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전시를 계기로 김지하의 글씨와 그림을 한데 모은 제대로 된 도록을 만들었으면 한다”며 “그와 함께 김지하의 생애와 활동을 충실하게 정리하는 아카이브 작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지하의 삶은 대중의 영웅이었다가 대중으로부터 경원시되는 과정이었습니다. 80년대에 그가 주창한 생명사상은 너무 일찍 들고나온 느낌이 있어요. 그때는 한참 5공화국과 치열한 싸움을 하는 중이었는데, 지하의 생명사상은 대중이 보기에는 저 먼 산 너머에 있는 얘기 같았거든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말과 방향이 옳았는데… 그가 대중보다 반 발짝 정도만 앞서 나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 그의 49재 때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주는 모습을 보며, 지하가 우리 마음 속에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게 잊힌 지하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번 1주기 추모행사는 김지하가 남긴 숙제를 우리가 이어받아 나가야 한다는 다짐의 자리가 될 겁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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