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뒷 이야기] 동의 없이 결박당한 환자 3년간 외로운 싸움, 이유는?

윤길환 2023. 5. 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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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시작되자 의무기록에서 '결박 문구' 삭제..."경찰, 보건소에도 불만 많아"
'마취 깨보니 팔다리 묶여 있었다…고소하자 의무기록서 결박 삭제' 보도=출처:MBN 뉴스7


지난 3월 23일 MBN 뉴스 7에서는 '마취 깨보니 팔다리 묶여 있었다…고소하자 의무기록서 결박 삭제'란 뉴스가 방송됐습니다.

말 그대로 수술한 환자가 병원에서 동의 없이 결박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소했더니 간호사가 작성한 의무기록에서 '결박'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는 내용인데요.

미처 방송에서 전하지 못한 여러 이야기가 있어 취재 후기에서 전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지난 2020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수도권의 한 대형병원에서 척추 수술을 받은 김 모 씨는 마취에서 깨 정신을 차려 보니 팔다리가 묶여 있었습니다.

해당 병원에서 척추 수술받은 김 모 씨=출처:김 모 씨 본인


김 씨는 병원에서 사전에 결박에 대한 동의가 없었지만, 마취에서 깨는 과정에서 위험할 수 있었을 거라 이해하고 이제라도 결박을 풀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다른 부위 디스크 등으로 몸이 너무 아프니 결박을 풀어주세요." 간호사에게 수차례 요청했지만 '움직이지 말라'며 무시당했고, 결국 김 씨의 결박은 2시간 40여 분이 지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와서야 풀렸습니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간호사들에게 "왜 아직도 결박을 풀지 않았냐"고 지적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 씨에겐 마스크를 통해 안정제 등이 투입되는 호흡기 치료제(네블라이저)가 부착됐는데요.

호흡기 치료제 부착한 김 모 씨=출처:김 모 씨 본인


이 과정에서 간호사들이 김 씨에게 호흡기 치료제 원액을 얼굴과 눈에 쏟았습니다.

세 차례 정도 이런 일이 반복됐다고 하는데, 간호사들은 실수로 그랬다며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 씨는 간호사들이 오랜 시간 결박한 부분을 의사에게 지적당하자 앙갚음한 행동이라고 확신하고 이때 병원에 대한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다짐했고, 이후에도 사과가 없자 경찰에 고소하게 된 겁니다.

이런 배경 속에 경찰의 수사 개시 후 의무기록에 결박 문구가 삭제됐다는 부분이 보도됐습니다.

의무기록에서 사라진 결박 문구-출처:김 모 씨 본인


김 씨는 병원뿐만 아니라 사건을 맡긴 경찰에도 불만이 많습니다.

수사 후 의무기록에 결박 문구가 삭제된 걸 알고 경찰에게 알렸지만, 경찰에선 '강제 결박'에 대한 고소만 접수됐다며 결박 문구 삭제에 대한 부분은 따로 고소를 제기하라고 했는데요.

김 씨는 결국 결박 문구 삭제 혐의를 따로 고소했지만 배정된 수사관이 마치 병원에서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정해진 답을 가지고 수사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수사관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며칠 뒤 김 씨가 병원과 간호사들에게 제기한 고소는 증거 불충분으로 각하됐습니다.

불복한 김 씨가 보건소를 통해 민원을 제기해 보건소에서 같은 사건을 고발해 재수사가 진행되면서 2년이 지나서야 경찰은 해당 간호사들에게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송치했고 이들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김 씨는 똑같은 사건을 환자 개인이 고소했더니 기각, 기관이 고발했더니 기소가 이뤄졌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경찰에 이러한 결과에 대한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경찰에선 처음에 김 씨가 고소했을 땐, 혐의를 적용하기에 증거가 너무 부족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검찰에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고소인의 진술만으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며 반려 당했고, 여러 차례 김 씨를 불러 추가 증거를 확보하려 했지만 김 씨가 출석을 거부했다는 겁니다.

이 시기는 김 씨가 담당 수사관을 믿지 못하겠으니 교체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교체 없이 고소가 각하된 기간과 일치합니다.

사실, 김 씨는 민원을 접수하고 병원과 간호사들을 고발해준 보건소에도 불만이 많습니다.

결박 사건이 있던 시기에 이미 보건소를 찾아간 김 씨가 강제 결박은 물론 간호사들이 호흡기 치료제를 눈과 얼굴에 흘린 점을 이야기했지만, 보건소에선 실수로 그럴 수 있다며 이들을 두둔했다고 하는데요.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첫 번째 고소가 기각된 후에도 계속해서 보건소를 찾아가 민원을 제기한 김 씨가 보건소에선 '블랙 리스트'였다고 합니다.

이후 보건소가 계속된 민원에 못 이겨 해당 병원과 간호사들을 고발했을 때에도 결박 문구 삭제 부분은 빼고 간호사들의 전자의무기록 서명 누락만을 가지고 고발이 이뤄졌습니다.

간호사가 환자 결박했다는 의무기록=출처:김 모 씨 본인


의료법 제23조 3항 등에 따르면 의무기록에서 문구 삭제나 수정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중한 범죄이지만 서명 누락은 벌금형에 그치는 수준입니다.

취재진이 해당 보건소에도 해명을 요청했지만, 민원인 김 씨의 존재는 알고 있어도 워낙 오래전에 담당자들이 다 바뀌어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이번 일로 개인이 혼자 나서 고소를 진행하면 너무나 외롭고 힘든 싸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는 김 씨.

이번엔 변호인을 통해 정식으로 차근차근 문제를 정리해 기각당한 결박 문구 삭제 부분에 대한 고소를 다시 진행한다고 하는데, 김 씨의 분하고 답답한 마음이 이번엔 풀릴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 윤길환 기자 / luvleo@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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