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술기행](95)“500년 내려온 문중 술 제조법을 현대 스타일로 바꾸었습니다.”

박순욱 선임기자 2023. 5. 4. 14: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농업회사법인 신선 박준미 대표, 2019년 청주신선주 3종 출시
작고한 부친 박남희 명인 유지 이어받아 신선주, 현대인 입맛에 맞게 재탄생시켜
보신용 약재 넣었지만, 약재향은 도드라지지 않아…밑술 걸러 누룩취도 제거
“세계 속의 신선주로 우뚝 설 때까지 가야할 길 아직 멀었다.”
청주신선주는 고 박남희 명인과 딸인 박준미 식품명인의 '합작품'이다. 농업회사법인 신선의 박준미 대표는 500년 역사의 청주신선주 제조법을 현대인 입맛에 맞게 수정했다. 약재 함유량을 대폭 줄여, 약재향이 도드라지지 않도록 했다. /농업회사법인 신선

“청주신선주는 몸에 좋은 보신 강장용 약재인 생지황, 숙지황, 인삼, 당귀 등 10가지 이상의 약재와 청원생명쌀, 청주산 찹쌀, 직접 재배한 토종 밀로 만든 누룩으로 빚은 귀한 약용주입니다. 저희 함양박씨 문중에서 500년 이상 내려온 가양주죠. 충북 무형문화재이였던 친정아버지(2019년 작고한 박남희 명인)가 적지 않은 재산을 다 털어 청주신선주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하셨죠.

그러나, 문중에서 전해져온 제조법은 약재 함유량이 너무 많아 도저히 상업화가 어려웠습니다. ‘이게 십전대보탕이지, 무슨 술이냐?’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전통방식을 고수했던 아버지와 달리, 저는 지금 여건에 맞게끔 레시피를 대폭 바꾸었습니다. 우선, 약재를 줄여 넣어 약재향이 도드라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또, 기존의 단양주(한번에 술을 빚는 방법)가 아닌 삼양주(밑술에 두번의 덧술을 거쳐 술을 완성하는 제조방식) 방식을 채택, 술맛이 훨씬 깊고 부드럽게 했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아버지도 제가 만든 술맛을 보고는, 만족해 하셨어요. 제가 만든 청주신선주가 세상에 나오는 걸 보시고 석달 후에 돌아가셨어요. 그게 2019년 일입니다.”

농업회사법인 신선의 박준미 대표가 청주신선주 탁주를 들고, 제조법을 소개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농업회사법인 신선 박준미 대표는 충북무형문화재 4호 청주신선주의 19대 전수자이자 대한민국 식품명인이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즐겨 마셨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청주신선주는 함양박씨 문중에서 500년 이상 내려온 가양주다. 충북 청주시 산성동 함양박씨 문중 문헌인 현암시문합집에 신선주의 내용이 쓰여 있고, 대대로 함양박씨 문중에서 신선주를 빚고 있다.

‘능히 백발을 검은 머리로 변하게 하고, 노인을 젊은이로 만들어 해가 갈수록 수명을 더하도록 한다’는 술이 청주신선주다. 그 술을 만들고 있는 박준미 대표는 말한다. “이 술은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한 약으로 먹었어요. 몸에 좋은 약재 10가지를 넣어 발효시킨 술이어서, 식사 전에 한잔씩 마시면 소화흡수를 돕고 몸에도 좋기 때문이죠.” 청주신선주는 탁주(12도), 약주(16도), 소주(42도) 3종이 있다. 그리고 각각 도수를 조금씩 낮춘 청주신선주 라이트가 있다.

실제로 청주신선주에는 귀한 약재가 여럿 들어간다. 숙지황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우슬은 무릎에 좋다고 전해져 온다. 청주신선주에 들어간 유일한 꽃인 국화는 머리를 맑게 해준다고 하지 않던가.

청주신선주에 들어가는 각종 약재들. 국화, 당귀, 숙지황, 생지황, 하수오, 백문동, 인삼 등이 들어간다. /농업회사법인 신선

그러나, 약은 약이요, 술은 술이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굳이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 곧바로 필요한 약을 복용하면 된다. 약용술이라고 해도, 많이 마셔서 좋을 리가 없는 게 술이다. 옛날과 달리, 몸에 좋은 약이 요즘에는 얼마나 흔한가? 더구나, 약재향이 진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청주신선주도 이런 이유로 오랫동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문중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제조법 그대로 술을 빚으면, 이건 거의 술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엑기스 약재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십전대보탕 같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겠나. 술인지 약인지 분간이 안된다는 건, 결국 ‘상업용 술’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저런 연유로, 1994년 충북 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청주신선주가 세상에 나온 건 무려 25년이 지난 2019년이었다. 500년 동안 문중에서 빚어서 마셨던 술인데, 이를 상업화하는데 25년이라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청주신선주 3종 세트. 왼쪽부터 탁주(알코올 도수 12도), 약주(16도), 증류주(42) 순. 청주신선주는 10여가지의 약재를 부재료로 넣은 약용주다. /박순욱 기자

“아버지 박남희 명인은 가양주 제법을 그대로 지켜서 청주신선주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500년도 더 지난 지금 소비자가 그때 술을 좋아할 리가 없죠. 숱한 실패와 쓴맛을 맛봤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아버지가 차린 양조장이 부도를 맞기도 했고요. 전통을 계승하되, 현대인의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저도 아버지 곁에서 같이 10년 정도 술을 빚으면서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깨달음입니다.”

박준미 대표는 2019년에 지금의 농업회사법인 신선 양조장을 차렸다. 청주신선주가 출시된 것도 그해다. 하지만, 양조장을 직접 세우기 10년 전부터 아버지와 술을 빚어왔다. 청주신선주를 세상에 내놓려고 말이다. 그러면서 하나씩 레시피(술 제조방법)을 수정해 나갔다. 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만든다는 ‘법고창신’이 바로 청주신선주 개발과정이었다. 실제로 청주신선주를 마셔보면 누룩취도 거의 없고 여러가지 약재향도 도드라지지 않는 깔끔함이 느껴진다. 직접 재배한 밀누룩 덕분인지, 다양한 꽃, 과실향이 은은하다.

청주신선주 빚기 체험에 참가한 방문객들이 발효가 끝난 탁주를 거르고 있다. /농업회사법인 신선

그렇다면, 박준미 대표는 친정아버지도 못한 청주신선주의 현대화를 어떻게 했을까? 첫번째가 술 거르기, 여과다. 청주신선주는 특이하게 술 빚는 도중에 거르기, 여과를 한번 더 한다. 밑술을 한지 사흘쯤 뒤에 1차 덧술을 하는데, 이때 밑술을 천 포대기에 거른다. 술 발효가 끝나기 전에 ‘거르기’ 작업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거르기’는 술 발효가 끝났을 때, 술지게미를 제거해 탁주와 약주를 만드는 과정으로, 탁주는 대개 천 포대기에 완성된 술을 넣어 거르고, 약주는 용수를 박아넣어 맑은 술을 따로 뺀다. 그런데, 청주신선주는 술 빚는 도중에 술 거르기를 한번 더 한다. 누룩취를 제거하고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서다. 물론 술 발효가 끝났을 때도 거르기를 한다. 박준미 대표는 “2차 덧술 때 여러 약재를 넣는데, 그 전에 술을 거르면, 술맛이 훨씬 깔끔해진다”고 말했다.

농업회사법인 신선의 박준미 대표가 청주신선주 발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두번째 청주신선주의 현대화는 삼양주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신선주 제법은 원래 단양주다. 밑술, 덧술 구분없이 한번에 술을 빚어 완성한다. 밑술을 먼저 하고, 덧술을 한번 하면 이양주, 덧술을 두번 하면 삼양주다. 단양주 스타일대로 약용주인 청주신선주를 만들 경우, 쌀과 누룩, 각종 약재를 한꺼번에 넣어야 한다. 단양주의 장점은 한번에 술을 빚어 경제적이라는 점인데, 반대로 술맛이 가볍고, 특히 단양주로 만든 약용주는 약재향이 너무 강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 삼양주로 만들 경우, 들어가는 쌀 함유량이 늘어나 단양주보다 단맛이 다소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박준미 대표는 “단양주로 만든 술은 너무 드라이해서(달지 않아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엇갈린 반면에, 삼양주로 빚은 청주신선주는 대부분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2차 덧술 때 찹쌀을 쓴 것도 술에 감칠맛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박 대표는 단양주인 가양주 제법과 달리, 삼양주로 청주신선주를 빚어 약재향을 줄이고 술맛을 훨씬 부드럽게 했다.

세번째는 약재 함유량을 대폭 줄였다. 문중 가양주 주방문에 나와 있는 약재양의 30~40%만 사용했다. 절반 이상을 줄인 셈이다. “청주신선주 상품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약재향이 도드라진다는 점이었어요. ‘국내 최고의 약용주’라는 자부심은 지켜야겠지만, 너무 전통 속에 갇혀 있으면, 헤어나오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소비자들이 부담없이 우리 술을 즐기려면 약재향을 대폭 줄여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젊은 소비자들은 누룩취 이상으로 약재향을 싫어하거던요.”

청주신선주를 생산하는 농업회사법인 신선 양조장 외관 전경. 조만간 제2 양조장도 가동된다. /박순욱 기자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던 박준미 대표가 아버지를 도와 본격적으로 술 빚기에 나선 것이 2010년. 거의 10년 만인 2019년에야 자신이 만든 청주신선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고 박남희 명인이 1994년 충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부터 치면 무려, 25년만에 청주신선주가 가양주 범주를 벗어나 세상에 나온 것이다.

청주신선주 출시를 위한 박준미 대표의 노력은 비단, 제조방법의 현대화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박 대표는 상품화 이전 거의 10년 전부터 국제비엔날레 및 각종 문화행사에 참석, 개발이 끝나지도 않은 청주신선주 무료시음 행사를 하면서, 시음객들의 반응에 귀기울였다. 500년 역사의 신선주 원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청주신선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박 대표는 “전통주라고 대중들에게 외면받지 않고, 술에 들어가는 약재 함량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끔 배합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고, 또한 사랑받는 신선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박준미 대표의 시야는 해외로 뻗어 있다. 일본, 중국 등 해외문화교류 행사에 적극적이다. “음식의 일종인 술 역시,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식문화를 해외에 적극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웃 나라 양조장들과 적극 협력해 술 품질을 더 높이는 노력도 하고요. 청주신선주가 세계 명주 반열에 오를 때까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요.”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