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다시 해고될 지 모를 불안 속에 217일 보냈다"
“복직 이후 217일, 공개 투쟁 이후 176일, 1인 시위 이후 100일이 됐지만 CBS는 단 한 번도 대화에 나서지 않고 거부하고 있습니다. CBS에 요구합니다. 저는 CBS의 조직원이자 노동자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간입니다.” 애써 담담하게 말하던 최태경 경남CBS 아나운서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새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울먹이던 그가 힘들게 덧붙였다. “저는 여전히, 하지만 지금도 CBS가 자정 능력이 있는 조직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최 아나운서가 그토록 사랑했던 CBS는 여전히 원직복직 요구에 묵묵부답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적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4일 오전, 서울 양천구 CBS 사옥 옆 ‘보이는 라디오’ 부스 앞에서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복직 피켓 100일 투쟁’ 집회를 열었다. 최 아나운서의 원직복직을 위해 지난 1월25일부터 경남CBS 앞과 서울 CBS 본사 앞에서 이어지고 있는 릴레이 1인 시위가 이날로 100일을 맞았기 때문이다.
최 아나운서는 지난 2012년 5월부터 총 7년 4개월을 CBS에서 일했으나 지난 2021년 12월31일 해고를 당했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최 아나운서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자’로 인정, ‘원직복직 시키라’는 구제명령을 내렸지만 소용없었다. 경남CBS는 원직복직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그를 프리랜서로 복직시켰고, 자리와 컴퓨터, 결재 라인을 없애는 것은 물론 홈페이지 글쓰기를 차단하는 등 최 아나운서를 철저히 프리랜서로 대했다. 또 지난해 11월엔 중노위 판정에 불복한다는 의미로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릴레이 1인 시위는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민사회단체 주도로 시작한 것이다.
"최태경 아나운서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이날 집회는 플래시몹과 축하공연 등 다소 밝은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스티커 설문과 최 아나운서를 응원하는 포스트잇들이 집회 한편에 자리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최 아나운서의 투쟁을 응원하며 한때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다만 CBS를 성토하는 구호와 발언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최 아나운서의 복직 투쟁에 연대하고 CBS의 무책임함을 규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지금 CBS가 프리랜서로 복직시켜야 한다, 이런 주장들을 하던데 이런 건 자기 모순이다. 재계약을 하거나 기한에 정함이 없는 노동자로의 전환을 검토하면 모를까 프리랜서로 복직이라는 것은 형용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반드시 해고하고야 말겠다, 이런 의지가 아니라면 최 아나운서에 대한 괴롭힘을 이제 멈춰야 한다”며 “노동권을 보장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진짜 원직 복직 이행하라. 최 아나운서는 투명 인간이 아니다”고 촉구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지지 발언에서 끝까지 싸울 것임을 밝혔다. 윤창현 위원장은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시민사회 그리고 언론 노동자들의 인내심을 자꾸 자극하지 마시라. 이 문제의 결론이 어디로 갈 것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 있다”며 “사용자들도 알고 있고, 시간을 더 끌어봐야 가중되는 것은 비난과 부담뿐이다. 합리적으로 명령을 이행하고 정당한 일자리를 보장함으로써 존중받는 언론사, 책임 있는 언론사로 CBS가 여전히 책무를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시길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김영민 한빛미디어 노동인권센터장도 “현재 상황이 괴로운 것은 최 아나운서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 지켜보는 CBS 구성원들의 마음도 편할 리가 없다”며 “왜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을 보내는 일터에서 서로 불편하고 누군가는 또 괴롭게 만들어야 하나. 이런 상황을 반 년 넘게 지속하고 있는 경영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고, CBS를 정말 사랑하는 구성원의 마음을 할퀴고 훼손하면서 해야 할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드시 최 아나운서의 평범한 일상 돌려놓을 것"
이날 집회에선 최 아나운서의 법률 대리를 도맡아왔던 노동법률사무소 돌꽃의 김유경 노무사도 참석해 지지 발언을 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싸움을 시작할 때까지 한 달 넘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최 아나운서가 저랑 정말 많은 얘기를 하셨는데, 그 때 이분의 싸움이 정말 큰 의미가 있겠구나 생각했던 대목은 본인이 이 싸움을 시작한 이유였다”며 “이 말도 안 되는 선례가 방송 바닥에 남는 순간 본인이 너무 힘들 것 같다, 본인의 안위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정확하게 들었다. 너무 감사했고, 저는 반드시 이 투쟁을 통해 최 아나운서의 평범한 일상을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프리랜서로 복직한 최 아나운서는 언제 또 다시 해고 통보를 받을지 알 수 없어 현재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 아나운서는 “근로계약서 한 장 없이, 언제 다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217일을 보냈다”며 “정말 보릿고개를 넘는 심정으로 이번 봄 개편을 지나왔다. 경남CBS 임원진으로부터 호출을 받게 될까봐 전전긍긍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오늘만 제발 무사히, 라는 마음으로 매일 매일을 보냈다”며 “노동위의 판단대로라면, 그리고 CBS가 노동위의 판단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저는 고용 불안을 느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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