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다 아는 ‘행복한 왕자’…왜 1인 뮤지컬로 만들었나
유럽 어느 도시 광장에 ‘행복한 왕자’ 조각상이 서 있다. 두 눈엔 사파이어가, 손에 쥔 칼자루엔 루비가 박혀 있고, 온몸은 황금으로 덮여 있다. 어느 겨울밤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던 제비 한 마리가 조각상 아래서 쉬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올려다보니 왕자가 흘리는 눈물이다. 왕자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에 붙은 보석을 떼어 전해달라고 제비에게 부탁한다. 제비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행복한 왕자>는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1888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자신의 두 아들을 위해 쓴 동화이지만, 그는 동화를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읽는 책”이라고 정의하며 어른들도 읽기를 바랐다.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어릴 때 접했을 이 동화가 한국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개막해 6월18일까지 초연을 하는 뮤지컬 <행복한 왕자>다.
동화가 원작이라 아이들이 보기에도 좋지만, 어른들이 보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가난한 이들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자신의 모든 걸 내어주는 행복한 왕자와, 그를 보며 점차 동화되고 사랑에 빠지는 제비의 마음이 묵직하게 와 닿는다. 뮤지컬을 기획·제작한 에이치제이(HJ)컬쳐의 한승원 대표는 지난 3일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린 프레스콜 행사에서 “둘리보다 길동이가 더 이해되면 어른이 된 거라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울었는지, 동심이 사라져서 운 건지 모르겠더라”며 “동화 <행복한 왕자>를 보고 ‘내 안에 동심이 살아있는데, 어른이 됐다는 이유로 동심을 밀어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에게 동심을 돌려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뮤지컬 제작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행복한 왕자>는 뮤지컬에서 좀처럼 드문 1인극이다. 배우 혼자서 작중 화자인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해 행복한 왕자, 제비, 다락방 청년 등 등장인물들을 모두 연기한다. 양지원·이휘종·홍승안 세 배우가 번갈아 출연하는데, 이날 프레스콜 무대에 세 배우가 차례대로 올라 각기 연기를 펼쳤다. 오스카 와일드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는 해설자 같고, 행복한 왕자나 제비 등의 시점으로 대사를 하고 노래할 때는 오롯이 그 인물이 됐다. 한 대표는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꿈과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를 한 배우가 각 인물이 되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표현하면 어떨까 싶어 1인극으로 만들어봤다”고 말했다.
1시간20분 내내 혼자서 무대를 이끄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배우들은 1인 뮤지컬에 도전하면서 느낀 고충을 털어놓았다. 홍승안은 “다른 배우들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재미로 공연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1인극을 연습할 땐 너무 외로웠다”고 했고, 이휘종은 “대사량이 너무 많고 80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다”고 했다. 양지원은 “혼자 다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잠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공연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연기한 행복한 왕자처럼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홍승안은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이 정말 잘 보인다.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관객과 함께 대화하고 호흡해나가는 재미를 알게 되면서 부담 대신 행복을 느끼게 됐다”며 웃었다. 양지원은 “첫 공연을 해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이 내 안에 찾아오더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135년 전 나온 <행복한 왕자>여야 할까? 한 대표는 “진부한 주제에 다 아는 얘기일 수 있다. 시효성도 떨어지고 재밌는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하고 살면서 언젠가 꼭 만나야 하는 이야기라 생각한다”며 “관객들이 동화를 봤다기보다는 질문을 하나씩 품고 나가 삶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에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이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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