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분신한 건설노조 간부는 왜 조합원 채용을 요구했나

제희원 기자 2023. 5. 4. 13:4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춘천지법 앞에서 분신한 양 씨는 4년 전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했습니다.

철근이나 형틀을 담당하는 토목 직종 건설노동자였던 양 씨는 자신의 유서에서 "억울하고 창피하다.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찰 독재정치의 제물이 되어 지지율을 올리는 데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죄없이 구속돼야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노동약자 보호'와 '건폭 척결'의 간극

지난 5월 1일 노동절,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춘천지법 앞에서 분신한 양 씨는 4년 전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했습니다. 철근이나 형틀을 담당하는 토목 직종 건설노동자였던 양 씨는 자신의 유서에서 "억울하고 창피하다.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 것뿐인데 윤석열 검찰 독재정치의 제물이 되어 지지율을 올리는 데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고, 죄없이 구속돼야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건설 노동자는 무엇이 그리 억울했을까요. 건설노조의 채용 요구 맥락을 이해하려면 건설업의 특성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건설현장은 대부분 상시고용 사업장이 아닙니다. 건설현장이 개설되면 그때마다 채용을 위한 교섭이 진행됩니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요구를 받아 더 높은 수준의 임금과 안전 지침 준수 등을 사측에 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비조합원과의 채용 상 차별을 두지 말라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문제 삼는 '조합원 채용 강요'와 '노조 전임비'의 맥락입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권리 찾기가 '건폭'으로 낙인"


건설노동자들이 처음부터 노조를 만들어서 교섭했던 건 아닙니다. '일용직 노가다'로 불리는 건설노동자들은 1년에 몇 번씩 고용과 실업 상태를 오갑니다. 불안한 고용 상태에 더해 노동 조건을 취약하게 만드는 불법 하도급 관행도 만연했습니다. 지난해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 결과를 보면 이른바 '오야지'로 불리는 인맥에 의한 채용이 74.9%에 달했습니다. 소개를 빌미로 일당의 일부를 떼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고요. 노동조합이 꾸려지면서 이 같은 불법 하도급 관행에 개입하게 된 겁니다. 일당과 고용 안정 및 안전에 대한 개선을 끊임없이 노조는 요구해왔고 이런 요구가 사측은 불편했을 겁니다. '건폭'이라는 낙인엔 이 같은 배경이 숨어있습니다.
사실 조합원의 고용 문제를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건설현장에는 일반 회사와 같은 명시적인 채용 절차라는 게 없어서 불투명했고, 안전 지침을 방조해 온 관행도 여전했습니다. 전체 산재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이 건설업에 집중된 현실이 이를 말해줍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건설노조가 교섭하는 과정에서 '우리 조합원만 100% 다 채용하라'는 요구였으면 문제였겠죠. 하지만, 상대적으로 권리 주장이 쉽지 않은 비조합원, 이주노동자와의 차별 없이 조합원도 채용해 달라는 건 노조의 기본적인 요구입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 엄단…노동자만 겨누는 칼날


그래서 '건설노조는 하나도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설령 특수한 배경이 있다 하더라도 그동안의 투쟁 방식을 돌아볼 필요는 분명합니다. 공사 진행을 방해하고, 비조합원들을 핍박하는 방식 역시 지탄받을 만합니다. 건설 현장의 켜켜이 쌓인 불법을 해소하려면 '노조 때리기'만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수차례 노사 법치 주의를 강조하면서 노사 양측의 불법 관행에 대해 엄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건설 현장을 구성하는 여러 불법의 주춧돌 중 유독 '노동조합'이 타깃이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건폭'이라는 신조어를 언급한 이후 수사의 강도는 더욱 세졌습니다. 한 건설현장 관계자는 "노조의 비위 행위에 대해 경찰이 무리한 진술을 요구한다."고 진술했습니다. 건설 현장 불법 행위를 단속한다는 수사의 칼날이 대형 건설사를 향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악화일로 치닫는 노-정 관계…노동개혁 향방은?


노동자 분신 사태 이후에도 당정은 여전히 노조 때리기 방침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대화는 사라지고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엄혹한 말만 난무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개혁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폭력을 뿌리 뽑아 노동 약자를 보호" 하겠다고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노동 약자 보호'엔 '일용직 노가다'들의 노동조합 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희원 기자jessy@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