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부터 정당 현수막 규제 강화···‘강제철거’도 불사한다지만···
정부는 오는 8일부터 정당 현수막의 설치 장소와 위치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위반 시 강제철거도 불사하기로 했다.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설치로 민원이 잇따른 데 따른 조치이다. 그러나 ‘공해’ 수준으로 치닫는 현수막의 내용에 대해서는 손 쓸 방도가 없어, 효과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에 정당 현수막 설치를 금지하는 내용의 ‘정당 현수막 설치·관리 가이드라인’을 오는 8일부터 시행한다고 4일 밝혔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보행자가 통행하거나 차량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곳에서는 현수막 끈의 가장 낮은 부분이 2m 이상이 되도록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정당 외의 단체명이 표기되거나, 당원협의회장이 아닌 일반 당원 이름이 표기된 현수막도 설치를 금지하고, 이를 어긴 현수막은 관할 지자체에서 철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돼 지난해 12월부터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관한 현수막은 시·도지사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간 자유롭게 게시할 수 있게 되면서 민원이 폭증한 데 따른 조치이다.
이후 정당 정책과는 큰 관련이 없는 흑색선전과 원색적인 상호 비방 등이 담긴 현수막들도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라며 거리 곳곳에 내걸렸다. 행안부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관련 민원이 2배 이상 폭증했고, 관련 안전사고는 8건 발생했다.
가이드라인은 옥외광고물법 5조를 근거로 마련됐다. 법 5조는 ‘신호기 또는 도로표지 등과 유사하거나 그 효용을 떨어뜨리는 형태의 광고물’, ‘소방시설 또는 소방용품 등과 유사하거나 그 효용을 떨어뜨리는 형태의 광고물 등’의 설치를 금지하는데, 이를 정당 현수막에 준용하고 기준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법이 설치 금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나 강제집행에 관한 사항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위임하지 않아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철거에 나설 경우 불복 소송 등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 현수막의 내용 자체를 규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현수막의 내용이 ‘통상적 정당활동’에 속하는지는 옥외광고물법이 아닌 선거관리위원회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얼마 전 제주 4·3 사건과 관련해 ‘김일성의 사주를 받았다’는 취지의 정당 현수막 내용에 대해서도 제주 선관위는 ‘통상적 정당활동’으로 인정했다”며 “이런 판단에 개입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는 상태”라고 했다.
행안부는 가이드라인을 만들면서 정당을 비롯한 각계 의견을 수렴했고, 현장 사진 촬영, 철거 전 자진 철거 요구 등의 절차를 거칠 계획이다.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자의적 공권력 남용’으로 보일 여지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현재 현수막의 표시 방법과 설치 기간만 규정돼 있는 시행령에 대한 개정을 추진하고, 현재 국회에 발의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향후 국회를 통과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발의안은 정당 현수막의 강제 철거 등의 근거를 담고 있다.
최호택 배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정당이 스스로 현수막을 규제하는 법 개정에 찬성할 가능성은 낮고,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태에서 강제 집행이 시도될 경우 재물손괴나 손해배상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적극적인 조치가 어려울 것”이라며 “예전처럼 관청이 현수막을 허가하는 대신 지역 별로 민간심의위원회를 설치해 설치나 내용 등을 심의하게 하는 방법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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