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공천개입 의혹 녹취' 파문 확산…건강한 당정관계 계기돼야

연합뉴스 2023. 5. 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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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밝힌 태영호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3일 국회에서 녹취 파문, 후원금 쪼개기 의혹 관련 입장 발표 후 기자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2023.5.3 xyz@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에게 공천 문제를 언급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에 대한 옹호 발언을 요구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이 수석과 태 최고위원의 부인에도 당내·외에서 비판이 가라앉지 않자 당 지도부는 태 최고위원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태 최고위원을 둘러싼 의혹을 기존의 다른 사건들과 병합해 심사해달라는 김기현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는 8일 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이에 대해 태 최고위원은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녹취록 속 발언을 한 것은 맞지만 이를 빌미로 자신을 "정치권에서 퇴출하려는 정치 공세"에는 강력히 맞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 4·3사건, 백범 김구 선생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데다 최근 '후원금 쪼개기 의혹'까지 제기된 태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출범 두 달도 안 된 당 지도부가 잇단 설화와 지지율 하락으로 휘청이는 가운데 녹취록 파문까지 겹치면서 당내 일각에서는 때 이른 비대위 전환 주장까지 제기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국민의힘은 4일로 예정된 최고위원 회의를 취소했는데 김 대표의 외부 일정 때문이라는 설명과는 달리 징계 절차가 개시된 태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의 참석에 대한 부담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녹취록에 따르면 태 최고위원은 지난 3월 9일 보좌진에게 이 수석이 '민주당이 한일 관계 가지고 대통령 공격하는 거 최고위원회 쪽에서 한마디 말하는 사람이 없다' '공천 문제 때문에 신경 쓴다고 하는데 당신이 최고위원 있는 기간 마이크 쥐었을 때 마이크를 잘 활용해서 매번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오늘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들어가면 공천 문제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태 최고위원은 "과장이 섞인 내용"이라고 부인했지만, 만약 이 수석 발언이 사실이라면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중대 사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새누리당 총선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이라면 모를까 시대가 바뀐 지금도 대통령 참모가 노골적으로 여당의 당무에 개입하고 공천을 미끼로 의원을 압박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이 국민의힘 총선 공천에 분명한 개입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면서 "그 배후의 정점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공직선거법 제9조 2항에 따라 검찰과 경찰은 신속·공정하게 수사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고, 김웅 의원은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이 수석을 즉각 경질하고 검찰에 고발하라. 태 의원이 거짓말한 것이면, 대통령실을 음해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태 최고위원이 해명한 대로 없는 얘기를 꾸며낸 것인지, 아니면 거짓이었다는 해명이 거짓인지는 당장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최근 당과 대통령실 간의 분위기로 볼 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파행의 연장선에서 이번 사태가 터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당시 당 대표 경선 방식이 당원 100%로 바뀐 것이나 나경원 전 의원을 주저앉힌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 수석은 김 대표의 유력한 경쟁자였던 안철수 의원을 겨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고 직격하기도 했다. 이런 덕분인지 3%의 지지율로 출발한 김 대표는 결선 투표도 없이 당선됐다. 하지만 아직은 뚜렷한 지도력도, 존재감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시선이 온통 용산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집권 초부터 버겁게 거대 야당을 상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내년 총선을 정권의 성패를 가를 중대 변곡점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국회의 도움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나 힘 있는 개혁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민심의 전달 창구 역할을 해야 할 여당이 대통령만 바라보는 상황은 총선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위원들에게 "밖에서 듣기 거북한 훈수도 들어보라"고 주문했는데 당정 관계도 마찬가지다. 여당이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놓고 정부와 머리를 맞대는 동시에 쓴소리라도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건강한 당정 관계를 만들어야 윤석열 정부도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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