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귀신 보는 그랜저’ 가볍게 볼 일 아니다

박진우 기자 2023. 5. 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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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중심 차(SDV·Software Defined Vehicle) 기술 강화에 미래차 성패가 달렸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를 실현하려면 소프트웨어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벤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전 회장 역시 "자동차는 이제 기름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달린다"고 말했다.

그랜저는 현대차가 소프트웨어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린 모델로, 각종 신기술이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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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중심 차(SDV·Software Defined Vehicle) 기술 강화에 미래차 성패가 달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1월 신년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회장은 “2025년까지 회사 시스템 전반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할 것”이라며 “안전과 품질에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독자 운영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 산업은 전통적인 기계 산업에서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변모하고 있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를 실현하려면 소프트웨어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벤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디터 제체 다임러그룹 전 회장 역시 “자동차는 이제 기름이 아닌 소프트웨어로 달린다”고 말했다.

전기차나 자율주행뿐 아니라 내연기관차에도 이미 소프트웨어가 관장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차에 장착되는 수많은 센서나 기계장치의 제어를 모두 소프트웨어가 한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커넥티드, 인포테인먼트, 첨단운전자보조(ADAS) 등의 기술이 소프트웨어에 의해 구현된다.

소프트웨어의 확장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고장이 나타난다. 현대차의 신형 그랜저가 대표적이다. 그랜저는 최근 앞에 아무것도 없는데 전방충돌방지보조장치(FCA)가 작동해 차가 갑자기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가리켜 ‘귀신 보는 그랜저’라는 웃지 못할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7세대 신형 그랜저는 이런 문제를 올해 들어 벌써 12번 일으켰다. 이 가운데 8번이 소프트웨어 문제다. 그랜저는 현대차가 소프트웨어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린 모델로, 각종 신기술이 적용됐다.

그래픽=정서희

정보기술(IT) 업계에 디버깅(Debugging)이라는 말이 있다. 소프트웨어를 실행하는 중에 나타나는 오류를 바로잡아나가는 걸 의미한다. 현재 그랜저에서 발생하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한 고장 역시 ‘디버깅’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동차에 소프트웨어 비중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이 디버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동차는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프트웨어가 관장하는 특정 장치의 오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랜저에서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한 리콜이 진행되는 사례도 있었다. 리콜은 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결함이 있을 때 진행된다.

최근 현대차 내부에서는 기존의 자동차 개발자들과 새롭게 유입된 IT 개발자들의 문화가 충돌하고 있다고 한다. 기계 산업과 소프트웨어 산업 간의 주도권 싸움이 자동차 산업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도권의 무게추는 IT 쪽으로 쏠리는 분위기인데, 이는 정 회장의 SDV를 향한 의지가 반영된 영향으로 보인다.

그랜저가 브랜드 최상위 차라는 점에서, 또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점에서 출시 반년도 되지 않아 잦은 품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분명히 점검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문제들이 지나치게 소프트웨어에 힘을 실어준 탓은 아닌지, 그래서 자동차에 가장 중요한 안전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차’는 소프트웨어가 고장의 중심이 된다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박진우 자동차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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