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 비판여론 속 찰스 3세, 1700억 ‘세기의 대관식’
왕세자 책봉 65년만 최고령 국왕
2.23㎏ ‘무거운 왕관’ 피날레 장식
203개국 대표 2200명 참석 예정
엘리자베스 2세보다 간소한 행사
영국민 75% “관심없다” 반응 싸늘
일각선 “혈세낭비 말고 개인 돈으로”
70년만에 열리는 찰스 3세 신임 국왕 대관식 행사에 영국이 들썩이고 있다. 오랜 전통에 따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리는 대관식은 ‘찰스 3세 시대’의 개막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자리다. ‘왕의 행렬’ 리허설이 진행되는 등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지만 영국인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이번 대관식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보다 간소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약 1억파운드(약 1670억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비싼 대관식’을 치르는 새 국왕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군주제 회의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외적으로 거세지는 군주제 비판은 찰스 3세 국왕의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최장기간 왕세자, 최고령 대관식…203개국서 2200명 초청=대관식은 6일 찰스 3세 부부가 탄 마차가 버킹엄궁에서 출발하는 ‘왕의 행렬’을 시작으로 오전 11시부터 약 1시간 가량 진행된다. BBC는 “대관식의 피날레는 찰스 3세가 무게 2㎏가 넘는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는 장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찰스 3세는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임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다.
찰스 3세 국왕은 지난해 9월 엘리자베스 2세 서거로 자동으로 국왕에 즉위했다. 1958년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65년만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세자를 지낸 찰스 3세의 나이는 역대 최고령인 75세다.
이번 대관식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과 비교해 간소하게 치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3시간 가량 진행된데다, 국내외 인사 8000명이 초청된 반면 이번에는 참석자가 2200명으로 크게 줄었다. 행렬의 행진 거리도 짧아졌다.
대관식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질 바이든 여사가 참석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영연방인 캐나다·호주·뉴질랜드·파키스탄 총리와 폴란드·필리핀 대통령도 자리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독일과 이탈리아의 대통령도 명단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선 한덕수 총리가 정부 대표로 참석할 예정이다. BBC는 국가원수 100여명을 포함해 203개국 대표가 참석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2020년 왕실을 떠난 해리 왕자도 대관식에 참석할 예정이나, 부인 매건 마클과 자녀들은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영국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여론조사업체 유거브가 최근 영국 성인 3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가 대관식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18∼24세 응답자 중에서는 ‘거의 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75%에 달했다.
가뜩이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군주제 회의론이 높아지고 있는데다, 찰스 3세가 인기 없는 왕세자였고 복잡한 가정사 등으로 여론의 호응을 받지 못한 것도 대관식에 대한 관심이 낮은 배경으로 꼽힌다.
▶들끓는 군주제 비판…“찰스 3세 재산으로 대관식 해야”=더군다나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당장 국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와중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호화 대관식’을 치르는 새 국왕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높을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세금이 아닌 본인 재산으로 행사를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영국의 가디언은 찰스 3세의 개인 재산이 18억파운드(약 3조332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CNN은 “높은 인플레이션과 수년 간 정체된 임금, 에너지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수백만 영국인을 빈곤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하지만 매우 부유한 찰스 3세는 자신을 위한 화려한 행사에 수천만 납세자들의 돈을 쓰려 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영연방 국가들에서 군주제 이탈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도 찰스 3세가 마주하게 될 도전 중 하나다. 지난 2월 호주 중앙은행(RBA)은 1992년부터 엘리자베스 2세 초상이 인쇄돼 있던 5호주달러 지폐 앞면에 찰스3세 초상 대신 원주민 문화 관련 도안을 넣는다고 발표했다. 최근 대관식을 앞두고서는 ‘군주제 아닌 민주주의’라 적힌 티셔츠까지 팔리고 있다.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총리의 경우 찰스 3세 대관식 참석을 위해 영국으로 떠나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독립국가가 돼야한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미 찰스 3세는 왕실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그 핵심으로 ‘왕실 규모 축소’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왕실 자체는 ‘슬림화’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민족, 종교적 전통을 수용함으로써 군주제의 영향권은 확대해 나가는 것이 찰스 3세가 내놓은 해법이다.
이번 대관식에는 다른 종교 성직자들을 초청하는 등 다문화·다종교 사회인 현대 영국의 모습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도 담길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이후 군주제를 지지하는 국민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면서 “찰스 3세가 군주제를 구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대관식을 계기로) 영국이 사회적 유대를 재확인할 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손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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