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법 시행 2년...아동학대 사망 ‘살인 판단’ 늘었다

2023. 5. 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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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살해 판례 6건 분석해보니
최소 7년형에서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
사법 당국, 아동학대살해죄 처벌 강화
초기 수사 단계부터 규명 의지 높아져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이 ‘살인’으로 인정된 첫 사례가 2013년 울산 계모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살인으로 기소된 사건은 많지 않았습니다. 정인이법이 통과 이후에는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 살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정인이법 통과 이후 2년이 지난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정인이법(2021년 개정 시행된 아동학대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으로 ‘아동학대살해죄’가 생기면서, 사법 당국이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인 사건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공혜정 대표는 2014년 아동학대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제정과 2021년 아동학대처벌법 상 아동살해죄 신설을 주도했다.

아동학대살해죄는 아동을 학대해 고의로 숨지게 한 피고인에게 일반 살인이 적용되는 범죄보다 더 엄한 처벌을 할 수 있다. 아동학대살해죄의 법정형은 사형·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살인은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정인이법이 통과될 당시 법조계에서도 우려가 상당했다. 고의성 입증이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판례가 쌓이면서 수사 단계에서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 실수로 일어날 수 없는 중대 사건이라는 인식이 커져서다.

▶유사 사건 처벌 더 강해...무기징역도=4일 헤럴드경제가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기소돼 형이 확정·공개된 판례 6건을 분석한 결과 가장 높은 형량을 받은 피고인은 20개월 영아를 성폭행·살해한 A씨(31)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영아가 잠을 자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는 이유로 1시간에 걸쳐 폭행해 살해했다. 2심 재판부는 징역 30년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범행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매우 크다.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성이 있다”며 무기징역을 내렸다.

가장 낮은 형량을 받은 사례는 7년형이었다. 지난 2021년 친부 B씨가 생후 64일 된 영아가 운다는 이유로 손과 주먹으로 4차례 아이를 폭행해 사망하게 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B씨가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봤지만,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초범이라는 점을 이유로 7년 형을 내렸다. 다만 이 경우도 살인죄로 기소된 유사 사건에 비해서는 형량이 높다. 정인이법이 시행되기 직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산후우울증을 앓던 C씨가 생후 7개월 된 영아를 수차례 바닥에 던져 살해한 혐의로 재판받은 사건이다. 수사 결과 C씨는 사망 이틀 전에도 피해자를 때리고 떨어뜨리는 학대 행위를 한 적이 있었지만 징역 3년형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다른 사건은 징역 14년, 징역 15년, 징역 22년,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10년 형 이상이 전체 6건 중 5건을 차지한다. 아동학대살해죄가 생기기 이전과 비교하면 중형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가 2001~2015년 발생한 아동학대사망 사건을 분석한 ‘아동학대 사망사건 판결의 양형 분석’에 따르면 학대를 주도적으로 한 가해자 69명 중 37.6%가 징역 3년 미만(벌금 및 집행유예 포함)의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징역 10년 이상 비율은 11.5%에 불과했다.

▶수사단계 아동학대살해 규명 의지↑=사법당국의 판결은 수사 현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찰이 사건을 살해로 송치하게 위해 초기 수사 단계에서 살해 정황, 증거를 면밀하게 살펴봤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발생한 3건의 아동 학대 사망의 공통점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죄명이 아동학대치사에서 아동학대살해로 변경됐다. 죽음에 이르게 한, ‘고의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지난 3일 인천경찰청은 지난달 30일 구속된 D씨(24)의 죄명을 아동학대살해로 변경했다. D씨는 생후 40일된 아들을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방치해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D씨는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아들을 씻기다가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사건 당일 사망 전에도 한차례 더 무릎 높이에서 아들을 방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으로 파악됐다. 상습적인 아동 학대 행위가 사망으로 이어졌고, 아이의 호흡이 달라진 상황을 인지하고도 병원에 가지 않은 점을 미필적 고의로 본 것이다.

인천경찰청은 지난 2월에도 2살 아들을 사흘간 집에 방치해 숨지게 한 여성 E씨(24)도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E씨는 사건 발생 이전에도 밤에 아들을 집에 두고 외출해 다음날 귀가한 적이 다수 있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비슷한 시기 발생한 초등학생 사망 사건도 동일하게 변경됐다. 계모인 F씨(43)가 1년에 걸쳐 학대와 방임을 반복했으며, 사망 가능성을 알고도 병원 치료 등 조치를 구하지 않아 숨지게 했다고 판단했다.

공 대표는 “처벌 강화 자체보다 중요한 건 인식 변화”라며 “예전에는 아이가 사망해도 ‘어쩌다 죽었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아이를 죽게 한 사람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법이 바뀌면서 인식이 뒤따라온 사례”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전문 신수경 법률사무소 율다함 변호사 또한 “입증이 어려워 무죄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지만 공소 과정에서 살해가 무죄가 나올 경우를 대비해 예비적 죄명으로 아동학대치사를 포함하는 등 실무적으로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며 “살해죄를 주장하는 정에서 죄질이 나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니 형량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법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지영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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