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도 멀어지는 결혼·출산… 정부 획기적 정책 뒷받침돼야”[문화미래리포트 2023]
(2) 인구 감소에 국가경쟁력 위기 - MZ세대 저출산 해법 좌담회
최근호 복지부 2030 자문단원
이광배 복지부 2030 자문단원
이은경 행안부 2030 자문단원
사회= 손윤희 복지부 청년보좌역
최근호
최저시급 연봉 2500만원 청년들
16년간 한 푼 안써야 4억 아파트
결혼·출산이 ‘자격 인증’돼버려
이광배
비교 경쟁적 사회 풍토도 한 몫
지방엔 일터·수도권은 둥지없어
일자리 있다면 청년들 지방 갈것
이은경
육아 부담 아직까진 여성이 많아
경력단절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
휴직해도 직장 돌아올 수 있어야
정리 =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측되는 자녀 수)이 0.78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한국 사회의 ‘인구 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저출산 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구조적 원인이 맞물린 복합적인 문제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만혼(晩婚)과 비혼(非婚), 무자녀 가정 등을 스스로의 선택이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까지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는 저출산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들은 결혼과 출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주거와 일자리, 양육 및 교육 여건 등 경제적 문제가 개선돼야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버거워하는 MZ세대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국가의 세심하고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의 초저출산 현상을 낳은 세대이자 인구문제 해결의 주체인 MZ세대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문화일보는 오는 6월 29일 ‘인구-21세기 국가 흥망의 열쇠’를 주제로 한 ‘문화미래리포트(MFR) 2023’을 앞두고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에서 2030 자문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MZ세대를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본사에 초청해 ‘저출산에 대한 MZ세대 인식과 해법’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졌다. 손윤희 복지부 청년보좌역의 사회로, 복지부에서 2030 자문단으로 활동 중인 최근호·이광배 씨와 행안부 2030 자문단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씨가 참여했다. 모두 30대로 이 중 이광배 씨는 기혼자로 자녀가 1명 있으며, 다른 이들은 모두 미혼자다. (이하 존칭·직함 생략)
△손윤희 = 미혼으로서 결혼 전망은 어떻게 보나요.
△최근호 = 결혼 자체가 어둡죠. 최저시급 기준으로 연봉 2500만 원을 받는 일반 청년 입장에서 봤을 때 16년간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서울 외곽에 4억 원짜리 소형 아파트를 대출 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걸 계산해보고 암울해졌어요. 과연 “내가 결혼이란 범위까지 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을 포기한 30대 중반 청년들은 “결혼하거나 출산하는 자체가 ‘인증’받는 거다. 인간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결혼과 출산을 할 자격을 갖췄다는 거니깐. 결혼시장에서 밀려났을 때 경제력, 가정환경, 부양 능력이 떨어졌단 뜻이 아닐까”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점점 갈 수 없는 단계로 느껴져요. 결혼하기 위해 여자 친구를 만들 수 있는 환경도 부족하고 결국 결혼에서 밀려나는 거죠.
△손윤희 = 2030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이광배 = 비교 경쟁적 사회문화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출산 적령기인 20∼30대들은 출생한 순간부터 성장하면서 대학 입시 제도를 위해 달려가는 환경에 있었어요. 인터넷 세대인 만큼 SNS와 대중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에요. 객관적·정량적 생활수준은 과거보다 높아졌지만 비교우위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겁이 나죠. 부모 세대는 단칸방에서도 시작했는데 우리는 그때보다 더 나아졌는데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은경 = 출산 후 육아를 남편이 도와준다고 해도 여성이 더 많이 부담하는 실정이에요. 여성이 경력 단절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 육아휴직을 해도 편하게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손윤희 =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이광배 = 주거 문제라고 봅니다. 많은 선후배가 어떤 가정환경과 경제적 여건에 있냐 여부를 떠나서 주거 문제를 다 고민하고 있어요.
△최근호 = 주거와 일자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은 선택’이 된 것은 선택하고 싶어서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으로 밀린 측면이 커요. 지난한 결혼 준비 과정이 진입 장벽으로도 작용합니다.
△손윤희 = 어떤 주거 조건을 선호하나요.
△최근호 = 주거 조건이라고 한다면 세 가지가 있는데요. 곰팡이가 안 슬고, 층간 소음 없고, 겨울철 결로(내·외부 온도 차로 창이나 벽에 물이 맺히는 현상)가 안 생기는 거예요. 이 문제가 해결되는 주거 공간이 아파트인데, 빌라나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서는 해결이 안 돼요. 가족들 건강 문제 때문에 중요한 조건이에요. 그런 조건을 따지다 보니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지 아파트여서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광배 = 대부분 급여 생활자들이죠.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도 균형 있게 살려면 직장이 집과 너무 멀 경우 힘들어요. 가장 큰 문제는 급여 대비 너무 많이 오른 수도권 집값이라고 봅니다. 직장인들이 열심히 모아 직장과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현실이 너무 멀어지니깐 30대 남성들은 큰 부담감을 갖고 있어요.
△손윤희 = 비수도권 삶은 어떻게 보나요.
△최근호 = 지방에서 ‘한 달 살기’를 해봤는데 너무 좋은데 너무 안 좋기도 했어요. 맑은 공기와 덜 치열한 환경은 좋았어요. 새벽 붐비는 지하철이 익숙했는데 지방에서는 대중교통을 타도 여유롭죠. 반대로 말하면 대중교통이 부족하고, 차가 없으면 다니기 힘들었어요. 차가 있고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면 지방에서도 아이를 기를 수 있다고 봅니다.
△이광배 = “지방에는 먹이가 없고 수도권에는 둥지가 없다”는 말이 있어요. 지방에 먹고살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면 청년들이 갈 거라고 봅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인 서울이 사람들에게 주지 못하는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를 우선시하는 MZ세대도 있어요.
△손윤희 = 요즘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고 치이면서 살아야 하나”란 질문을 많이 합니다.
△이광배 = 국가적 관점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놓고 보면 결혼, 출산, 육아는 인생을 완성하는 과정이고 행복한 순간이기도 해요. 이 시대 청년들이 힘들고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 속에서 얻는 큰 행복도 분명히 존재하죠. ‘디스토피아(암울한 미래)’만 얘기할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희망과 행복도 비쳤으면 좋겠어요.
△이은경 =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주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가 있을 때 나의 삶을 힘들게 그렸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비관적 전망을 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내 해결해주는 게 사회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최근호 = 30대 초반까지는 비혼주의자였어요. 30대 중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주변에 비혼주의자였던 형들이 결혼하는 것을 봤습니다. 결혼 후 이런 조언을 해줬어요. “인터넷에서 말하는 게 다 현실은 아니야. 결혼 후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있어. 아이가 생겼을 때 포기하는 게 많지만 모든 것을 다 포기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있어.” 결혼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됐는데 이런 이유로 저출산 문제도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손윤희 = 결혼과 출산에 대한 미래 전망은 어떻게 보나요.
△이광배 = 출산과 육아 이후 제 시간은 부족해졌어요. 부부의 삶은 아이를 낳은 전후로 달라져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 만족도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안온함이 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4살짜리 아들이 ‘아빠’라고 웃으면서 안길 때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져요. 출산과 육아에서 느끼는 행복이 이전에 누렸던 행복보다 큽니다.
△손윤희 = 아이가 8세가 될 때까진 정부가 일부 지원하지만, 성장기인 중·고교 과정을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국가가 보육을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아요.
△이광배 = 아이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저출산 구조니깐 우리 아이가 지금보다 덜 경쟁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존재 자체만으로 경쟁력이 있는 숫자가 태어나니깐요. 출산과 양육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소중한 경험이에요. 앞으로 인생의 페이지를 닫을 때 그래도 행복이나 웃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윤희 =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최근호 = 혼자 살아도 힘든데 결혼하면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요. 청년들이 무능력자여서 정부가 출산과 보육 등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아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니깐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광배 = 정부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갈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구 문제는 민간이나 시장에만 맡겨 해결될 수 있는 자율적 영역은 아니니깐요. 저출산은 사회구조적 변화로 생긴 현상이라서 정부의 정책적 리딩(선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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