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규모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난항… 단독입찰에 ‘유찰 행렬’

채민석 기자 2023. 5. 4. 10: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암사동·미아3구역, 시공사 선정 실패
‘노른자 입지’ 소규모 정비사업에도 찬바람

최근 서울 지역의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소규모재건축정비사업이 시공사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시공사들이 리스크 줄이기 위해 사업성이 떨어지는 소규모 사업은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건설사들이 규모가 작아도 입지가 좋으면 눈독을 들였지만, 지금은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분주한 상황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암사동 495번지 가로주택정비사업의 시공사 입찰이 유찰됐다. 암사동 495번지 일대는 8호선 암사역이 도보 5분 거리에 있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가 인접해 있는 등 교통 입지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또한 강동초, 천호초, 천일중, 성덕고 등 교육 인프라와, 광나루한강공원 등 환경 인프라도 갖췄다. 이곳에는 지하 2층~지상 15층 규모의 공동주택 252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공덕현대아파트. /네이버부동산

지난달 10일 조합 측에서 진행한 현장설명회에 DL이앤씨와 두산건설 등 6곳이 참여해 경쟁 입찰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DL이앤씨만 단독으로 입찰해 결국 유찰됐다. 정비사업 시공사를 선정할 때 2개 이상의 시공사가 참여하지 않으면 유찰된다. 2회 이상 유찰되면 조합 측은 단독 입찰한 시공사와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대형 건설사들이 소규모 사업장 수주를 놓고 과거보다 더 고민이 많아진 이유는 사업성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정비사업의 규모가 작으면 일반분양 물량이 거의 없고 조합원 물량이 대부분이라 사업성이 좋지 않다. 또한 부대시설과 생활인프라가 대규모 단지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해 분양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건설 경기가 얼어붙을수록 건설사들은 소규모 사업장의 수주를 가장 먼저 줄일 수 밖에 없다.

과거에는 소규모 정비사업이어도 입지가 좋으면 소위 ‘알짜 사업’이라고 판단해 대형 건설사들이 입찰에 나섰었다. 당시에는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아 경쟁이 치열해진 대규모 정비사업의 수주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대형 건설사들도 사업 속도가 빠른 소규모 재건축을 여러 개 수주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현대건설이 143가구 규모의 장위 11-1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수주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건설사들은 수주 자체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1분기 기준 10대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 신규 누적 수주액은 5조5242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동기(6조7786억원) 대비 33.3%가량 감소한 수치다. 청량리6·8구역, 신당8구역 등 1000가구 이상 규모의 정비사업도 단독 입찰로 인한 유찰이 줄을 잇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은 더욱 외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소규모 사업장은 입출구가 좁고 교통이 불편해 장비가 드나들기 불편하다. 또한 서울 지역은 인근에 주택이 밀집해있어 일조권 등 다양한 민원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조합은 일반적으로 건설사와 입찰 전에 미리 접촉하지만, 공사비가 올라간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입찰을 거절하기도 한다. 시장에 불균형이 생긴 것이다.

268가구 규모의 강북구 미아3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도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뒤 최근 재공고를 냈지만, 또 다시 유찰됐다. 이곳은 미아역·우이신설역을 끼고 있어 ‘더블 역세권’이라는 평가를 받은 곳이다. 1차 현장설명회 때 두산건설과 KCC건설 등 7곳이 참여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지만, 1차 입찰에는 코오롱글로벌만 참여해 유찰됐다. 조합 측은 재공고를 내고 2차 현장설명회를 했지만, 오히려 설명회에 참여한 건설사는 3곳으로 줄었다. 2차에서도 코오롱글로벌만 입찰했다. 조합은 수의계약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370-9번지 일원 공덕현대아파트 소규모재건축정비사업 조합도 최근 시공사 재입찰 공고를 냈다. 이곳은 지하 2층~지상 20층 아파트 219가구 규모로 진행되는 소규모 사업이지만, ‘노른자 땅’인 공덕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당초 큰 무리 없이 경쟁 입찰이 성사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장설명회에도 금호건설 등 10곳이 참여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입찰에 나선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6수’에 나선 곳도 있다. 지난달 7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남성아파트 재건축 사업에는 롯데건설만 입찰했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입찰에 나선 이후로 1년간 다섯 번이나 시공사 선정에 나섰지만, 끝내 실패했다. 이곳은 지하3층~지상28층 공동주택 488가구와 부대복리시설 등을 조성하는 등 다른 곳보다 규모가 크고, 입지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곳이라 그 충격이 더욱 컸다.

건설사들은 대규모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 서울의 한남4·5구역, 노량진1구역 등 2000가구 이상이 들어설 예정인 곳에서 시공사 선정에 나선다. 지방도 부산 해운대구 중동5구역과 부민2구역 등 지방 1000가구 이상 대규모 사업장이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소규모 사업장에는 더욱 찬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불황기때 소규모 사업장은 더욱 남는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 현장 소장·공무·공사는 대형 사업장과 똑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인건비 측면에서도 불리하고, 자잿값도 대량 구매 할 때와 비교하면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다”며 “부지가 좁다 보니 옆 단지에서 민원을 걸어 공사를 중지시키거나 피해보상금을 요구하는 등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소규모 사업을 수주할 이유가 줄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