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쟁이 며느리’ 동화는 나쁜 이야기일까요?
“아빠 시집살이가 뭐야?”
지난 주말(2023년 4월23일)에 윤겸이와 전래동화 ‘방귀쟁이 며느리’를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윤겸이는 여섯 살로, 아저씨 딸이랍니다. 전에도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책장을 펴자마자 또 궁금한 게 나오네요. ‘시집살이’처럼 요즘은 보기 드문 풍습이 전래동화에는 많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시집살이는 ‘여성이 결혼한 남편 부모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을 말해요.
‘시집’에서 살면 어떨 것 같냐고 물으니 윤겸이는 “불편할 거 같아. (남편 부모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잖아”라고 합니다. ‘방귀 한번 뀌어보라’고 한 남편의 부모가 며느리를 나무라며 내쫓는 대목에선 “자기(남편 부모)가 뀌라고 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쫓겨난 며느리가 방귀로 배나무에서 배가 후두두 떨어지게 하는 장면이 나왔어요. 가장 재미난 장면인데, 아빠가 자꾸 물어봐서였을까요? “재미없어”라고 하네요. 이유를 계속 물었더니 “몰라”라며 달아나버렸어요. 며느리는 방귀를 쓸모 있는 데 쓴 뒤 시집에 다시 돌아가요. 여러분도 이 이야기 읽어보셨나요?
참지 않은 선녀, 케이크가게 차린 신데렐라
이 이야기는 ‘방귀 잘 뀌는 며느리’ ‘며느리 방귀’ 등등의 이름으로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고 있어요. 비슷한 이야기가 수십 건 전국 각지에서 수집됐다고 하네요. 서점에 가면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방귀쟁이 며느리’ 책들이 있어요. 그런데 방귀 뀐다고 며느리를 내쫓고, 과일(배)을 따도록 해줬다고 ‘네 방귀도 쓸 데가 많겠구나’라며 칭찬한다? 차별적 시선을 담은 이야기 아닐까요?
“아이들이 똥·방귀 소재를 좋아하니까 그렇겠죠. 다른 가족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고 며느리만 일해요. 그리고 며느리가 방귀로 배를 떨어뜨린 다음에 다시 시집으로 돌아가면서 행복해해요. 가부장제 안에서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죠.” 건강한 이야기를 골라 아이들에게 추천하는 일을 하는 유지은 ‘딱따구리’ 대표가 이렇게 설명했어요. 어려운 말이 많죠? 가부장제는 아빠와 할아버지 같은 남성이 다른 가족을 다스리는 가족 형태예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이건 옛날에만 그랬던 거야’라고 이야기해줘도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옛이야기를 지금 상황에 맞게 다시 쓰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2019년 5월 대학생 5명이 ‘선녀와 나무꾼’ 등 전래동화들을 다시 쓴 <선녀는 참지 않았다>(위즈덤하우스)라는 책을 펴냈어요. 선녀가 날개옷을 훔쳐간 나무꾼의 죄를 묻고 처벌하는 내용을 담았어요. 원래 이야기에서 선녀는 자신을 훔쳐보고 옷까지 훔친 남성과 결혼하잖아요.
비슷한 사례로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반비)가 있어요. 이 책에서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하지 않고 케이크가게를 열어 스스로 자기 삶을 찾습니다. 여성이 좋은 남성을 만나야 행복한 건 전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읽을 책을 물려받았는데, ‘와 그림이 예쁘네!’ 했는데 막상 보면 대체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고, 시대에 맞지 않거나 성차별적 내용이 담겨 있어 내버린 책들도 있었어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조성실 활동가가 이런 생각을 나눠줬어요.
아동문학 평론 일을 하는 김지은 서울예술대 문예학부 교수는 이런 경우 비교하면서 읽으라고 하네요. “옛이야기라고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읽어야죠. <신데렐라>와 지금 상황에 맞게 새로 쓴 이야기 <해방자 신데렐라>와 비교하는 것도 좋아요. ‘빨간 모자’(유럽 동화)도 소녀를 수동적인 피해자로 그린 것도 있지만 최근에 나온 <너의 눈 속에>(웅진주니어)는 소녀가 늑대와 대결하는 이야기예요.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린이가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어른이 곁에서 도와주면 좋겠어요.”
‘이제 쌔완하네’ ‘예 여간 쌔완하네요’
장성유 방정환연구소 소장은 “지금은 방귀를 뀐다고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은 없겠지요. 이런 부분이 꼭 필요할까요? 교훈도 없는 것 같아요. 현대에 받아들 수 있도록 고칠 수밖에 없겠죠.” 그러면서 장 소장님은 동화작가 방정환(1899~1931)이 일본 작품 ‘양초 귀신’을 바꾼 이야기를 해줬어요. ‘양초 귀신’에서 동네 사람들은 양초를 물고기로 알고 끓여 먹습니다. 일본 버전에서는 배 속 양초에 불이 붙을까 걱정한 마을 사람들이 물속에 빠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방정환 버전은 담뱃불을 붙인 한 나그네가 나타나 물속 마을 사람들을 도깨비로 오해해 한 차례 더 혼란이 일어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방정환의 양초 귀신’은 원래 이야기에서 뒷부분을 해학적으로(재미있게) 바꾸었어요. 바꾼 이야기는 지금 어린이들도 재밌게 읽어요. 아이에게 웃음을 주는 말맛이 잘 살아나도록 시대에 맞게 고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찾아서 한번 읽어볼까요?
최근(2023년 2월) 영국 출판사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를 쓴 로알드 달(1916~1990)의 이야기를 새로 썼어요.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못생긴’(ugly) 같은 표현을 없애고, ‘뚱뚱하다’(fat)를 ‘거대하다’(enormous)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분명할 때 ‘남자들’(men)이라고 적었던 것을 ‘사람들’(people)이라고 바로잡았어요. 원래 이야기대로 둬라, 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나서서 반대하는 등 논쟁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방귀쟁이 며느리’가 오랫동안 이어진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서 새롭게 쓰인 이야기라고 해요.(<아동청소년문학연구> 제5권, ‘방귀쟁이 며느리 설화의 동화화가 지닌 문제점과 가능성 연구’, 김현량)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중 평안북도 쪽의 결말은 이렇다고 합니다. “시부모(남편 부모)가 ‘이제 네 맘은 쌔완하네(시원하니)’라고 묻자 메니리(며느리)는 ‘예 여간 쌔완하네요(아주 시원해요)’라고 했다.” 며느리가 방귀를 시원하게 뀌면서 그간 억울했던 마음을 풀어내죠.
“사실 똥이나 방귀를 다루는 책 중에 여성이 주인공인 책이 드물거든요. 이 역시 성별 고정관념이 들어간 거죠. 그런 의미에서 자유롭게 방귀 뀌는 며느리가 등장한다는 점을 놓고 볼 때 ‘방귀 뀌는 며느리’는 좋은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유지은 대표)
배운 사람들이 교훈적으로 고치다가
하지만 뒤에 덧붙인 이야기들 때문에 ‘방귀쟁이 며느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됐어요. ‘시집에서 며느리가 쫓겨났다’는 이야기가 붙고, ‘쫓겨난 뒤 방귀로 과일을 따서 유기와 비단으로 바꿔 시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현재까지 출판된 30여 종의 이야기는 대부분 이 두 가지 이야기가 보태진 것입니다. 여기에 ‘며느리가 방귀로 산적을 소탕한다’ ‘외적을 물리친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글거리가 덧대졌어요.
‘방귀쟁이 며느리’가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임정진 동화작가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많지만, 옛이야기는 입체적이고 상징성이 있는 문학이에요. 팩트체크(사실확인)를 하면 이해 안 되지만 문학으로 보면 숨은 뜻이 보여요. 어린이에게 읽어줄 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줘요. 착한 사람이 복 받는다는 것, 자기가 닦은 대로 받는다는 것, 알고 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고 깊은 이야기거든요”라고 했어요.
동서양 아동문학을 전공한 김환희 박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똑같은 ‘방귀쟁이 며느리’라고 해도 이야기꾼이 누구냐에 따라 결말이 다르고, 중간에 변이가 이뤄져요. ‘방귀쟁이 며느리’를 읽다가 걸리는 부분을 고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조심해야 할 점은 고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교육받은 사람들이 고친 부분 때문에 이야기가 더 보수적이거나 구태의연하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제대로 바꾸려면 먼저 옛것을 제대로 알아야 하겠죠. ‘방귀쟁이 며느리’ 속 여성도 여성 신의 흔적을 간직한 주인공이에요. 강한 방귀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여성 산신이 가부장제 사회가 되면서 일반 여인의 모습으로 푸대접받다가 미미하게나마 자기 능력을 인정받는 이야기거든요.”
“부모가 좋아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방귀쟁이 며느리’가 조금 달리 보이나요? 이 설명을 들으면 ‘방귀쟁이 며느리’는 슈퍼파워를 가진 히어로일 수도 있겠네요. 이렇게 다시 쓴다면 윤겸이도 재밌어할까요?
김환희 박사는 이렇게 권합니다. “부모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 이야기를 할 때의 표정이나 떨림까지 아이들은 느끼거든요.”
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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