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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모티콘은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감정이 먼저 있고 그 표현이 이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 방향도 존재한다.
이모티콘과 인터넷 밈을 사용하기에 비로소 감정이 돋아나기도 한다.
디지털의 손쉬운 감정 표현은 더더욱 우리를 감정 과잉 상태로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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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땡큐!]
현재 이모티콘은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즉각적이고 직관적이다. 게다가 각종 드라마 장면을 인터넷 밈으로 이용하면 맥락을 더해 복잡미묘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별다른 언어적 표현 없이도 이를 개인의 내면을 대신하는 매체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오죽하면 오로지 이모티콘과 인터넷 밈만으로 의사소통하는 ‘고독한 카톡방’ 놀이가 유행할까.
감정이 먼저 있고 그 표현이 이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 방향도 존재한다. 이모티콘과 인터넷 밈을 사용하기에 비로소 감정이 돋아나기도 한다. 별 감흥이 없는데도 ^^ 같은 이모티콘을 사용해 억지웃음을 지어본 적 있지 않은가? 직접 느끼기보다 이모티콘을 누르는 일이 더 편하다. 디지털의 손쉬운 감정 표현은 더더욱 우리를 감정 과잉 상태로 몰아간다.
‘한 달에 절망감 2회’를 선택하는 미래
필립 케이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주인공 데카드는 침대 옆 기분 조절 기계인 무드 오르간(Penfield Mood Organ)을 켜고 숫자를 입력하고 더 나은 분위기를 선택한다. 미래 인간이 자기감정을 잃고 기계에 의존해 인위적으로 감정을 끌어내는 장면이다. 그의 아내가 다양성을 위해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절망에 빠지기로 선택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에스에프(SF)적 설정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다.
수년 전 페이스북 내부고발자는 우리가 온라인 공간에 오래 머무는 이유가 자극과 분노가 고의로 게시돼 유통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용자 모르게 인위적으로 설계된 감정 유인의 구조가 소셜네트워크 안에 있다는 폭로였다. 전 페이스북 직원 프랜시스 호건은 페이스북의 알고리듬이 가짜 정보와 혐오 발언, 심지어 인종 간 폭력까지 조장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인스타그램이 젊은 여성의 자아상을 비틀어 자살 충동을 증가시킨다는 내부 연구보고서가 있다고 말했다. 본인의 신체에 만족하지 못하는 10대가 인스타그램에 오른 타인들의 모습을 질투하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한 것이다.
분노와 시기심, 질투는 부정적 감정이지만 자극적이어서 인터넷 공간에 오랫동안 우리를 머물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런 감정이 네트워크의 트래픽을 만드는 동력원이다. 소셜네트워크는 알고리듬이 감정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현시대의 무드 오르간이다. SF 속 무드 오르간은 감정 상태를 본인이 결정하기라도 한다. 우리가 디지털 네트워크에 구축하는 감정은 실제 생활의 필요와 관련 없이 자극 자체를 즐기려는 심리를 이용하는 알고리듬이 조장한 것일 수 있다. 존재하지 않았던 감정을 디지털 도구로 생산하고 유통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감정은 개인이 체험하는 변덕이 아니라 제도적이며 기술적인 구조의 결과물이다.
감정 기만하는 알고리듬 먼저 고쳐야
한때 젖소에게 가상현실(VR)로 드넓은 초원을 보여주고 기분 좋게 만들어 우유 생산량을 늘리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디지털로 만들어낸 거짓으로 지속해서 젖소의 감정을 속이는 방식이다. 끊임없이 개와 고양이의 귀여움에 탐닉해 웃고 있는 우리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기만당하는 젖소의 자리에 인간이 있다. 이렇게 부조리한 네트워크의 감정 디자인을 고치지 않고 메타버스 시대가 와봐야 더 끔찍한 현실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칭 메타버스 전문가들이 거짓말쟁이인 이유다.
오영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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