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3세, 평소 지속가능성 중시… 대관식서도 4대 가치 강조할 것”[M 인터뷰]
환경 등 50년전부터 관심
공동체 속 다양성 확보로
‘하나의 영국’ 만들려 노력
젊은이들과 소통도 공들여
찰스3세 왕세자 시절 방한
경주 방문 등 각별한 인연
올핸 한·영수교 140주년
6·25참전용사 방한 예정
자유·민주 등 가치 공유
오는 6일(현지시간) 개최되는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세기의 대관식’을 앞두고 세계인들의 이목이 런던에 집중되고 있다. 21세기 유럽 최초이자 70년 만에 열리는 영국 국왕 대관식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때와 비교하면 형식은 간소화된 반면, 내용은 현대적 가치가 다양하게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75세의 찰스 3세는 즉위 8개월, 왕세자 책봉 65년 만에 왕관을 착용한다. 대관식을 앞두고 지난 1일 서울 정동 주한 영국대사 관저에서 콜린 크룩스(54) 대사를 만났다. 조선 말기 1890년에 지어진 대사관저는 유럽풍의 붉은 벽돌과 하얀 대리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그 자체로도 문화재다. 한국어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유창했다. 인터뷰는 한국어로만 진행했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3일 오후 6시 관저에서 열린 대관식 축하 리셉션에서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관식은 어떻게 진행되나.
“당일 오전 11시에 찰스 3세 국왕 부부가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버킹엄 궁에서 출발하는 ‘왕의 행렬’로 막이 오른다. 행렬은 버킹엄 궁에서 더 몰, 트래펄가 광장, 화이트홀(정부중앙청사)을 거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까지 2.1㎞ 구간을 약 30분간 행진한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1시간 정도 진행하는 대관의식이 끝나면 ‘황금 마차’로 불리는 골드 스테이트 코치를 타고 버킹엄 궁으로 돌아온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때와 같은 점은.
“70년 전과 같은 점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개최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1066년부터 대관식을 거행했고 찰스 3세는 40번째로 왕관을 받는다. 왕관은 순금으로 제작됐으며, 성 에드워드 왕관이라고 한다. 원래는 찰스 2세를 위해 1661년에 만든 것이다. 무게 2.23㎏에 444개의 보석이 박혀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이 왕관을 썼다.”
―다른 점은.
“우선 대관식 시간이 3시간에서 1시간으로 짧아졌다. 또 원래 공작·자작들만 국왕에 충성맹세를 했는데 이번에는 일반 국민도 원한다면 충성맹세를 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대관식을 위해 국왕이 12곡의 새로운 음악을 의뢰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 작곡가가 만든 음악도 나올 것 같다. 특히 찰스 3세 국왕이 중시하는 요소들은 청년·공동체·다양성·지속가능성 등 4가지 기본 가치인데 이 가치들이 대관식을 통해 강조될 예정이다.”
―대관식 중 전통적, 역사적 요소를 꼽는다면.
“국왕이 예복을 입고 한 손에 공을 쥐고 그 공 위에 십자가를 올리는 장면이다. 공은 ‘왕 홀’이라고 하는데 국왕 직위의 상징이 되는 보물을 뜻한다. 왕좌 아래에는 스코틀랜드 왕권을 상징하는 ‘운명의 돌’이 들어간다.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국왕을 소개하며 승인을 요청한다. 참석자들은 ‘신이여, 국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king)를 외치며 화답한다. 군주로서 신에게 약속하는 ‘서약’을 하고 나면 대주교가 700년 된 왕좌에 앉은 국왕의 머리·가슴·손에 성유를 뿌린다. 성유는 예루살렘에서 제공한 것으로 국왕은 지속가능성을 중시해 식물로 만든 성유를 사용한다. 국왕이 왕을 상징하는 보주(寶珠)와 왕 홀을 들고 있으면 대주교가 찰스 3세 머리에 성 에드워드 왕관을 씌워준다. 왕비도 왕관을 받는다. 또 영연방 56개 국가 가운데 영국과 같은 왕국인 캐나다·호주 등 14개 나라 국왕들도 왕관을 받게 된다. 7일엔 윈저 성에서 톰 크루즈와 안드레아 보첼리 등이 출연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8일에는 국왕이 자원봉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자원봉사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운명의 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무게 150㎏의 붉은 사암인 ‘운명의 돌’은 스코틀랜드 국왕의 왕권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물품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하기 전인 9세기부터 스코틀랜드 국왕이 운명의 돌 위에서 대관식을 했다고 한다.”
―4가지 기본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국왕은 언제나 4가지 가치를 중시했다. 기후변화의 경우 넷 제로(Net Zero·탄소중립)를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나라가 노력하는데 국왕은 50년 전부터 그 점을 중시했다. 언제나 환경을 걱정했고 그때부터 지속가능성을 강조해왔다. 지금은 전 세계가 지속가능성 같은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 청년, 공동체, 다양성도 국왕이 중시하는 가치다. 국왕은 언제나 젊은 사람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동체가 국가 정치, 생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노력을 해 왔다. 다양성도 백인뿐만 아니라 이민자, 모든 공동체가 하나의 영국을 만드는 가치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재 리시 수낵 총리를 비롯해 스코틀랜드 총리, 런던시장 모두 남아시아계 사람이다. 영국의 다양성이 가시적으로 확인된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을 것 같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20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다. 관광객들은 대성당에 들어갈 수 없지만, 길거리에서 일반 국민과 함께 지켜볼 수 있다.”
―영국 국민이 찰스 3세 국왕에게 거는 기대가 클 것 같다.
“사실 찰스 3세 국왕이 어떻게 국왕 의무를 행사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긴 임기 동안 아주 훌륭한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 영국 국민뿐만 아니라 영연방에서도 기대할 것이다. 영국에서 국왕은 정치인이 아니다. 나라를 상징하는 존재다. 따라서 국왕이 영국의 권위와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자기 생활에 충실하기를 국민이 바랄 것이다. 어머니가 그렇게 했듯이….”
―대관식을 앞두고 런던에서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것 같다.
“특히 런던 시내 버킹엄 궁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사이에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다.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일기예보에는 당일 런던 현지에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에서는 누가 참석하나.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외국에서는 주요 참석자가 누구인가.
“거의 200개 국가에서 국가수반이 직접 참석하기도 하고, 영부인이나 외교장관도 참석한다. 귀빈만 약 450명이다. 그중 미국의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 대신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참석하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영연방인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호주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 의사를 밝혔다. 왕족 중에는 스페인, 스웨덴 등의 국왕과 일본 왕세제 등이 참석한다.”
―주한 영국대사관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3일 대사관저에서 각계각층 인사들을 초청해 리셉션을 가든파티 형식으로 열었다. 보통 매년 영국 국경일에 여왕 생신파티를 열었는데 올해는 대관식 축하파티로 대체한 것이다.”
크룩스 대사는 이날 리셉션에서 기자와 만나 “대한민국이 활기차게 번영해 민주적이고 세계를 선도하는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성장했다”면서 “한국이 영국의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1999년에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을 때 대사님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젊은 외교관으로 총괄 지휘를 했다. 특히 하회마을을 답사하기 위해 여러 번 내려갔었다. 대여섯 번 간 것 같다.”
―찰스 3세도 왕세자 시절 한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맞다. 1992년에 방한했다. 그해 11월 대사관 건물 제막식을 했다. 찰스 3세는 당시에 경주도 방문했다.”
―영국 왕실은 한국과 인연이 각별한 것 같다.
“여왕은 방한 당시에 한국 전통에 관심이 많았다. 여왕이 방한했을 때 한국 정부, 한국 회사들이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새로운 건물·공장·도시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여왕은 새로운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를 제일 상징하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 고민했는데 하회마을에 가기로 한 것이다. 봉정사에도 가서 한국의 전통 음식·문화·탈춤, 한국 사람들의 친절까지 경험했다.”
―여왕이 다녀간 이후 하회마을은 더욱 유명해져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주한 대사로 부임한 뒤 하회마을에 다시 갔었는데, 예전에 내가 행사를 준비했을 때 함께 일한 관계자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주 반가웠다. 그래서 3일 리셉션에 하회마을 주민들도 초청했다.”
―올해가 한·영 수교 140주년인데 의미가 크다.
“관저를 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양국 간 오랜 역사를 많이 자랑하고 있다. 특히 6·25전쟁 때 영국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보낸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8만 명 정도 된다. 그중에 1000여 명이 사망했다. 이 역사를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긴 역사 동안 두 나라가 협력해 왔다. 아직도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한국에 오면 많이 놀란다. 가난했던 한국이 지금은 선진국이 된 모습을 보면서 좋은 인상을 받아 간다. 수교 140주년 행사들을 계속 하고 있는데 과거 역사뿐만 아니라 미래로 향하는 파트너십을 재도약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한국과 영국은 여러 분야에서 협력할 잠재력이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무역 분야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시작할 예정이고 디지털·정치·경제·과학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풍요로운 잠재력이 있다. 영국과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다. 역사도 다르지만, 기본 가치는 똑같다. 민주주의·인권·법치·자유·시장경제와 같이 공유할 가치가 많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며 앞으로 강력한 파트너십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인터뷰에 배석한 매슈 월터스 대변인과 홍시원 선임공보관 명함 뒷면 전체에는 ‘한·영 수교 140주년 기념’ 글씨와 함께 양국 국기와 ‘140’이라는 숫자를 이용한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140주년 기념행사는 어떻게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나.
“올 1년 동안 여러 가지 행사들을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문화 분야에서 많은 행사가 예정돼 있고, 나중에 발표하겠지만 한국전쟁 휴전 기념식도 열 계획이다. 그때 영국에서 6·25 참전용사들도 한국에 올 예정이다. 지난주 파주에서 임진강 전투를 기념하는 행사도 가졌다.”
박현수·김유진 기자
■ 크룩스 대사는
1995년 외교관 첫 부임지가 한국… 3년간 북한대사도 거친 ‘한반도통’
콜린 크룩스 대사는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피츠윌리엄 칼리지를 졸업한 현대 언어학 석사로, 한국어를 비롯해 프랑스어·중국어·독일어·인도네시아어에 능통하다.
그에게 한국은 특별하다. 1992년 영국 외교부에 들어가 첫 부임지가 바로 한국이었다. 1995년부터 5년간 외교관으로 한국에서 근무했다.
이후 주미대사관 1등 서기관, 주중대사관 참사관을 거쳐 2018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북한 대사를 지낸 뒤 지난해 2월 22년 만에 한국에 대사로 다시 부임해 한국통 외교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 주재 대사로 있는 동안 북한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모든 행정구역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농촌으로 나갔을 때 아직 트랙터도 거의 없고 상당히 열악했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고집하는 이유는 핵이 국력이요 안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며 “그러나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길은 비핵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평화는 더욱 멀어진다는 것이다.
크룩스 대사는 한국과 북한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서울은 활기차고 평양은 조용하다”고 대답했다.
1999년 주한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있을 때 총괄기획을 맡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한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큰 역할을 한 그는 1998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야 했지만, 한국이 워낙 좋아 대사에게 부탁해 1년 연장 근무를 했을 정도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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