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위해" 대출 최고금리 12%로?…오히려 불법 사금융 내몬다
[편집자주] 금융권이 사면초가다. '돈'을 버는데 여론은 싸늘하다. 정치권도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벗어난 법안으로 금융권을 옥죄고 있다. 서민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반면 꼭 필요한 법안은 잠자고 있다. 금융권 토로와 법안 발의 이유를 직접 들어봤다.
◇대출 최고금리 연 12~15%로?…부작용은 '뒷전'
3일 현재 국회엔 법정 최고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내용의 '이자제한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8월 이자제한법에 정해진 최고 금리를 연 12%로 인하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 최고 금리인 연 20%보다 8%p(포인트) 낮춘 금리다. 이자제한법 2조1항에 따르면 최고 금리는 연 25%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는데, 2021년 4월 대통령령이 개정되면서 최고 금리는 연 20%로 제한됐다.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021년 12월 최고 금리를 연 15%로 내리는 내용의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해 11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자제한법 개정안을 통해 최고 금리를 현행 연 20%에서 연 13%로 낮추고자 했다. 3명의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모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심사를 받고 있다.
해당 법안은 이자 부담을 줄여 취약한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발의됐지만 저축은행·대부업체 등 2금융권에선 외려 이 법안이 저신용자를 불법 사금융의 늪으로 떠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고 금리가 낮아지면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격차에 따른 이익)이 줄어 2금융권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조달비용이 커지는 금리 상승기엔 수익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특히 크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고금리 기조와 최고 금리 20% 제한의 영향으로 저축은행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며 예금금리도 연초에 비해 2배 이상 치솟았는데, 대출금리는 최고금리 20%에 가로막혀 일정 이상 상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지난해 1월 2.37%에서 같은해 11월 5.82%로 급등한 반면, 일반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같은 기간 14.68%에서 16.65%로 소폭 올랐다.
◇"서민금융 죽이는 법안", "차상위계층부터 불법 사금융 내몰릴 것"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2금융권은 부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연체할 가능성이 높은 저신용자의 유입을 가장 먼저 막는다. 지난해 하반기 수익성이 나빠진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는 저신용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였다. 대부분의 저축은행은 저신용자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진행하고 한동안 토스 등 대출 중개플랫폼을 통한 접수도 받지 않았다. 1위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 역시 지난해말부터 올해 초까지 신규 대출을 아예 중단했다. 일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는 현재도 저신용자 소극 취급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저축은행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은 올해 1월에만 해도 신용점수 301~500점 고객을 대상으로 가계신용대출을 운영했지만 지난 2월과 3월 차례로 400점 이하, 500점 이하 고객의 신규 대출을 막았다.
2금융권 관계자는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 내용대로 대출 최고금리가 현행 20%보다 더 낮아지면 저신용자가 기댈 곳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금보다 최고금리가 내려가면 저축은행이 받아줄 수 있는 고객이 거의 없어질 것"이라며 "최고 금리를 낮추겠다는 건 서민금융을 완전히 죽이겠다는 소리와 같다"고 말했다.
◇가맹점 우대수수료율 96% 기현상…정치권 개입이후 나타난 결과
3일 금융당국과 카드업계에 따르면, 국내 카드 가맹점 96%가 우대수수료율이 적용되는 가맹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3억원 이하로 0.5%의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곳만 75%인 220만개다.
원래 카드 수수료율은 업계 평균 2% 안팎이다. 그러나 이는 연매출 30억원 초과 일반 가맹점에 해당된다. 대부분에 해당되는 연매출 30억원이 이하 가맹점들은 우대수수료율이 적용되는데,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 1.5%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1.25% △3억원 초과 5억원 이하 1.1% △3억원 이하 0.5%다.
국내 전체 가맹점 300만곳 약 298만곳이 우대수수료율을 적용 받게 된 건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을 너무 과도하게 확대하면서 생긴 기현상이다. 우대수수료율 적용은 2019년 카드수수료율 재산정 당시 5억원까지였지만 당정협의를 거치면서 30억원까지 확대됐다.
◇병원·약국 우대수수료 확대 법안 발의…"과도한 시장개입·형평성 논란"
최근에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형병원과 약국 등 요양기관도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21년 같은 당 홍성국 의원이 공공성을 지닌 가맹점에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는 내용의 유사한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카드업계는 난색이다. 2020년 하반기 기준 병원 6만9843개, 약국 2만4089개 가맹점 중 이미 93%가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어서다. 카드사들과 금융당국 모두 영세·중소 가맹점으로 정한 곳이 아닌 업종 전체 가맹점에 수수료율을 조정하는 건 과도한 시장가격 개입이라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특정 업종 가맹점에만 더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하게 되면 비슷한 매출액의 다른 업종 가맹점과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채무자가 연체했을 때 원금 전체가 아닌 연체한 부분에만 연체 이자를 무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여야가 주요 내용을 합의한 상태다. 14년간 국회에서 표류하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도 합의점에 도달 중이다. 금융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금융민생법안으로 꼽힌다.
3일 금융당국과 국회에 따르면 현재 금융위원회가 제출한 법안 중 개인금융채권 관리 및 개인채무보호법 제정안(이하 개인채무자보호법)이 정무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다. 여야가 개인채무자 보호법을 처리하기로 뜻은 모았고, 세부 내용을 조율 중이다.
개인채무자 보호법은 대출을 연체한 개인채무자에게 과도한 연체 이자가 부과되는 것을 방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금융권은 채무의 일부가 연체돼도 원금 전체가 연체된 것으로 보고 원금 전체에 연체가산이자를 부과 중이다.
예컨대 1000만원의 대출을 열 번에 나눠 상환하기로 했는데, 첫 100만원이 연체돼도 전체 원금(1000만원)에 연체이자를 내야 한다. 원금 전체에 가산이자가 붙어 오히려 상환 의지를 떨어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연체(상환일 도래)한 부분에만 연체가산이자 부과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여야는 큰 틀에서 합의한 상태다. 쟁점이 됐던 법안 적용금액은 대출금 5000만원 선에서 우선 시작하고, 상황을 보아가며 금액을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3000만원 내에서 새 제도를 적용하자고 처음 제시했으나 금액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적용 한도를 너무 높이면 금융사의 이자 수입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있다. 금융당국은 적용금액을 5000만원으로 할 경우 전체 금융회사의 수입이 1528억원 줄 것으로 전망했다.
보험업계에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과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2009년 이후 14년 동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실손보험을 받는 과정을 전산화해 간편하게 청구하는 게 주요 골자다.
지난달 25일 법안소위에서 여야가 주요 내용은 합의했지만 전산화 과정에서 정보 중계를 어느 기관에서 하느냐가 발목을 잡고 있다. 중계 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거론됐으나 진료 내역을 모두 심평원에서 들여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반발이 심했다. 여야는 보험개발원을 중계기관으로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전산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보험업계가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없다"며 "금융소비자 편의 등을 위해서라도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 금융안정계정 도입 내용을 다루는 예금자보호법은 정무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사가 부실 우려가 있을 때 선제적으로 예금보험공사에서 유동성 공급(채무보증·대출)이나 자본확충(우선주 매입 등)을 통해 지원하고, 이후 약정 기간에 내에 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이다.
현재 예보는 부실 금융사로 지정된 금융사에만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선제적 자금을 통해 금융사와 전체 금융시스템이 부실로 가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로 금융안정계정을 생각하고 있다. 수익자 부담과 전액 회수 등의 원칙에 따라 재정 부담 없이 운영된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다만 국회에서 예금자보호한도와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두 가지를 분리해서 논의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며 "예금자보호한도는 부실 발생 후에 쓰는 경우가 많고, 금안계정은 부실을 앞서 방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김세관 기자 sone@mt.co.kr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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