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야구장에서 응원가를 들을 수 없던 이유[김윤희의 지식재산권 산책]
[지식재산권 산책]
분업의 시대다. 예전에는 한 명의 작가가 스토리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대사도 썼지만 요즘 웹툰을 보면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작사가와 작곡가가 다른 경우가 많다.
저작권법에는 ‘공동 저작물’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두 명 이상이 공동으로 창작한 저작물로서 각자의 이바지한 부분을 분리해 이용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판례가 공동 저작물로 인정한 경우는 ‘A가 작성한 초벌 대본을 B가 수정 및 보완해 만들어진 대본’, ‘스토리 작가가 제공한 스토리에 그림 작가의 그림 등이 결합된 만화’ 등이 있다.
공동 저작물과 구분해야 할 개념으로 ‘결합 저작물’이 있다. ‘복수의 저작자들이 각자 창작 활동의 성과를 분리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뮤지컬이나 가사와 악곡으로 구성된 노래 같은 것이다.
공동 저작물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저작물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이용을 허락하게 하더라도 관여한 모든 저작권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반면 결합 저작물은 분리해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뮤지컬은 각본·악곡·가사·안무·무대 장치 등이 각각 별개로 이용될 수 있다. 이때 각 저작권자들은 자신의 저작물을 다른 저작권자들의 동의 없이 자유롭게 이용하거나 활용할 수 있다.
야구장 응원가도 결합 저작물에 해당한다. 악곡은 거의 같지만 가사는 많이 바꿔 부르는 것만 보더라도 가사와 악곡을 분리해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야구장 응원가는 야구 관전의 흥을 돋우는 데 빠질 수 없다. 그런데 2018년 각 경기장에서 야구장 응원가를 한동안 들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원곡의 작곡가들과 작사가들이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구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해당 사건은 소 제기 시점으로부터 거의 3년이 지나 서울고등법원의 판결(2심 판결)이 나온 후 각 당사자들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일단락됐다. 이후 응원가가 야구장에서 다시 울려 퍼질 수 있게 됐다.
각 구단들은 이미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를 통해 원곡의 이용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원고인 작사가·작곡가들이 주장한 것은 동일성 유지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성명 표시권 침해였다.
동일성 유지권은 저작물의 내용·형식·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다.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편곡·변형·각색·영상 제작 등 저작물을 이용해 새로운 저작물을 작성할 권리다. 성명 표시권은 저작자의 실명 등을 저작물에 표시할 권리다.
우선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야구장 응원가가 ‘결합 저작물’이라고 판단했다(원고들은 공동 저작물이라고 주장). 동일성 유지권에 대해 1심과 2심 법원은 동일한 결론을 내렸는데 악곡은 박자 등 다소 변화는 있지만 동일성이 유지돼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가사는 원 가사와 실질적으로 다른 독립된 저작물로 볼 정도로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동일성 유지권 침해가 아니라고 봤다. 같은 이유로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침해도 인정되지 않았다.
성명 표시권은 1심과 2심의 결론이 달랐다. 저작권법 제12조 제2항 단서에 따르면 ‘저작물의 성질이나 그 이용의 목적 및 형태 등에 비춰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성명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1심은 응원가는 현장 상황이나 분위기에 맞게 즉각적으로 사용되므로 성명을 전달하지 못한 것은 부득이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은 최소한 정규 시즌의 홈 경기에서는 선수 입장 시 각 선수별로 정해진 응원가가 예정돼 있으므로 전광판에 저작자의 성명을 표시하거나 경기 종료 후 한꺼번에 전광판에 표시하는 등으로 얼마든지 표시할 수 있다고 봤다.
나아가 피고 운영의 홈 페이지나 유튜브 채널에 응원가 영상을 제공할 때 저작자의 성명을 표시할 수 있다고도 판시했다.
현대의 저작물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저작자들에게는 위와 같은 여러 종류의 저작권이 있다.
인터넷·유튜브·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 매체의 발달로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항상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김윤희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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