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 맞고 코너 몰린 은행권…"실제 이익률 1.83% 불과" 호소
[편집자주] 금융권이 사면초가다. '돈'을 버는데 여론은 싸늘하다. 정치권도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벗어난 법안으로 금융권을 옥죄고 있다. 서민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반면 꼭 필요한 법안은 잠자고 있다. 금융권 토로와 법안 발의 이유를 직접 들어봤다.
3일 금융업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5일 은행이 금리 인상기에 낸 이자 수익에 일종의 횡재세를 걷는 서민금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준금리가 연 1%포인트(p) 이상 상승하는 금리 상승기에 은행의 이자 순수익이 직전 5년의 평균 120%를 초과하면, 초과금의 10%를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고금리 시대에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은행들이 이자 상환으로 고통받는 서민과 기업을 도와야 한다는 게 입법 취지다. 민 의원은 "지난해 미국 기준금리가 급등하자 한국은행 기준금리도 2%p 이상 높아졌고, 한국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덩달아 올렸다"며 "은행들은 막대한 이자수익을 얻었고, 중산층 서민과 기업들은 고금리에 고통받고 있다"고 입법 배경을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은행이 벌어들인 이자이익은 55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1.6% 늘었다.
은행권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과도한 이자이익을 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실제 이자이익률이 높은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이자이익이 55조9000억원이지만 이자수익자산 3041조7000억원을 감안하면 이익률은 1.83%에 불과하다.
금융사가 자산을 운용하며 벌어들인 수익에서 자금조달 비용을 뺀 순이자마진(NIM)도 해외 은행과 비교해서 낮다는 설명이다. KB경연구소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5대 대형은행의 NIM은 2.67%로 국내 5은행의 NIM(1.63%)보다 1%p 이상 높았다. 미국 대형은행의 평균 NIM은 3.06%에 달한다. 총자산이익률(ROA)도 미국 은행들의 평균은 1.12%인 반면 국내 은행의 경우 0.52%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은행권은 횡재세가 도입되면 오히려 은행의 사회공헌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정 부분의 이자이익을 사회공헌 명목으로 거둬들이는 만큼 은행들이 자발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할 유인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무리한 과세권 확대보다는 업권 내 자발적인 사회공헌 활동 확대와 기업 경쟁구조 확립, 유통·거래 관행 개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의 보고서를 냈다.
김광수 은행연합회장도 지난달 6일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생각해보면 상당히 맞지 않는 이야기"라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반대했다.
횡재세 법안의 설계 자체가 허술하다는 비판도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횡재'의 기준이 지난 5년 이자이익의 200%도 아니고 120%인데, 설정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다"며 "금리 상승기에 은행은 대출 심사 기능을 강화하는 등 각종 부실 방지 대책을 세우는데, 이러한 노력을 경영활동으로 인정할 수 없는 건지 법적으로 따져 볼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의 이익이 줄면 신사업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지고, 주주 입장에서 배당이 줄기 때문에 투자 매력도도 떨어진다"며 "결국에는 국내 금융산업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권은 횡재세 법안을 내년 총선에서 표심을 위해 시장 논리를 무시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바라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횡재세 법안은 최근 은행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심을 이용하려는 정책"이라며 "코로나19(COVID-19) 기간에 돈을 쓸어 모은 다른 산업군에 대해선 왜 이익을 토해내라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은행권은 '1000만원 기본대출' 도입에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4일 "금융은 특정 개인, 기업,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소산이기 때문에 그 혜택은 모든 사람이 일정 부분 함께 누릴 필요가 있다"며 기본대출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은행권이 성인에게 최대 1000만원까지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 관계자는 "1000만원 기본대출의 경우 정부가 보증을 서 주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 사실 부담은 없다"면서도 "상환 유도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본대출에서 부실이 나면 결국 국민의 혈세로 이를 메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머니투데이 the300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대표 발의한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의 제안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민 의원은 이밖에 은행이 예금보험료나 지급준비금 같은 법적비용을 부당하게 대출이자에 포함시키지 못하게 하는 한편 최근 5년 내 취득한 부당한 이자는 대출자에 환급토록 한 은행법 개정안, 금융회사가 대출자 신용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 신용평점이 상승한 경우 금리인하요구권을 안내하는 은행법 개정안 등도 함께 발의했다.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은 동일 회계연도 내 한국은행 공표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이상 상승하는 경우, 해당 회계연도 동안 은행이 취득한 총 이자순수익이 해당 회계연도로부터 5년내 평균 이자순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금액의 10%를 서민금융진흥원 자활지원계정에 출연토록 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서민금융진흥원은 미소금융중앙재단 후신으로 2016년 설립돼 미소금융, 햇살론, 국민행복기금 등 서민금융업무를 관리중이다.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곧 횡재세를 만든 것이라며 금리 상승기 발생한 수익을 부당이익인 것처럼 치부했단 비판이 나왔다.
이런 지적에 대해 민 의원은 "횡재세란 표현은 감정적"이라며 "초과이자이득세라는 표현이 적절하고 그마저도 세금의 형태가 아닌 서민금융진흥원에 기금 형태로 내는 것"이라고 했다. 또 "요즘 시민들을 만나면 단기간에 두 배나 늘어난 이자 탓에 '누군가 내 통장에서 돈을 훔쳐가는 것 같다'는 하소연을 종종 듣는다"며 "이 법안의 핵심은 비정상적 금리 급등기 서민 이자 부담을 완화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민 의원은 이 법안 별칭을 '은행의 사회적 책임법'이라 불렀다. 은행 수익을 무작정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례적 금리 급등기, 은행 이익이 급증할 때에 한해 서민들의 이자 부담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은행도 동참해야 한단 취지다.
민 의원에 따르면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0%포인트 이상 오른 경우는 2022년 한 해 뿐이었다. 팬데믹(대유행) 기간 중 시중에 풀린 통화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금리가 급등, 이 과정에서 은행권이 얻은 이자 수익도 커졌다. 지난해 5대 금융지주 합산 연간 이자이익은 50조원에 달해 전년 대비 18.5% 늘었다. 예대마진 영향이 컸다.
민 의원은 120%, 10%와 같은 기준을 삼은데 대해 '수용가능성'을 들었다. 민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해 이자손익이 9조3000억원으로 집계됐고 과거 5년 평균치(6조2800억원)의 120%는 7조5300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초과이자손익은 1조7700억원인데 이 수치의 10%는 1770억원이다. 2022년 국민은행에 매겨진 법인세가 1조482억원이었단 점을 감안하면 업계가 수용 가능한 수치란 게 민 의원 주장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법이 존재함으로써 은행이 대출금리를 올리는 데 더 신중할 것이란 점이다. 민 의원은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책정할 때 초과이자이득세를 낼 바에 대출 금리를 좀 더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금리 상승 억제를 통해 물가 상승도 억제되고 서민 이자 부담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이 법을 통해 정부의 시장개입, 즉 '관치'를 억제할 수 있다고도 봤다. 실제로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의 '돈잔치' 비판 이후 은행권이 줄줄이 대출금리 인상을 자제하거나 금리인하에 나섰다.
민 의원은 "정부 호통에 금리가 바뀌는 것을 보면 시민들은 (정부가) 잘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호통치면 바뀔 수 있었던 것인가, 그럼 왜 더 빨리 호통을 치지 않았나, 의구심을 갖게 된다"며 "그게 바로 관치다. 관치가 아닌 입법으로 은행이 분위기 따라 금리를 올리는 것을 막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의 이익을 제한해 신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지지 않겠냐는 우려에 민 의원은 "평시 영업활동에 대해 제약을 가하는 것이 아닌 횡재적 상황에서 얻어진 이익 일부를 사회 환원하자는 것"이라며 "은행 영업활동의 기반인 소비자들이 말라 죽어가는 상황에서 은행이 커지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용안 기자 king@mt.co.kr 김상준 기자 awardkim@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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