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코베일" 전세사기 특별법 `사각지대`의 피해자들 [이미연의 발로 뛰는 부동산]
"준비해간 얘기는 듣지도 않았어요. 지원대책 발표는 했지만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고, 보고해야하니 피해상황만 빨리 모아서 적어내라'는 것이 무슨 대책회의인가요. 이렇게 겉으로는 '시에서, 나라에서 지원해준다'고 큰소리를내고 있지만 알맹이없는 껍데기일 뿐이었습니다."(부산 부부임대인 전세사기 피해자 S씨가 구청 면담 후 밝힌 소회)
안녕하세요 디지털타임스 금융부동산부 이미연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전세사기 피해자 분들의 사연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달 20일 가시화됐던 부산 건입니다. 최근 부산전세피해지원센터에 폭증한 문의는 바로 이 건이 촉매제였다고 하는데요.
부산 사상구와 부산진구, 동구에서 빌라와 오피스텔 95호실 가량을 소유하고 있는 부부임대인이 최근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입니다.
이 부부가 소유한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 S씨는 4월 초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다른 임차인의 메모를 보고 자신도 '전세사기 예비 피해자'임을 알게됐다고 합니다.
메모에는 계약만기가 다가와 이사 준비로 임대인부부에게 보증금반환을 요청했는데, 집주인이 통화 중 전화가 끊어지다가 부재중 통화로 넘어가더니 급기야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와 집주인 부부가 잠적했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에 S씨를 비롯한 몇몇 세입자들이 모여 임대인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이 부부의 서류상 주소지에는 비닐하우스만 있었다고 합니다. 정황상 전세사기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어 부산전세피해지원센터에도 도움 요청을 했지만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피해사실이 없기 때문에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답변만 듣고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하시네요. 실세 소송이나 추적(?) 등은 피해사실이 가시화되어야 가능한 사안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피해는 이미 시작된 상황이었습니다. 집주인에게 관리비로 내는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의 미납 중인데다가, 이 부부가 소유한 건물 4채에는 40억원대의 담보대출이 잡혀있는 상황이었던거죠.
방법을 찾던 이들은 어렵사리 피해자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제보에 나섭니다. 뉴스로 크게 알려진 덕분인지 부산시청에서 S씨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전세피해센터에 제출한 정보를 통해 연결이 됐는데, 현재 어떤 상황인지, 어떤 지원책을 원하는지를 듣고싶다고 했다네요.
지난달 26일 S씨를 포함한 세입자 몇몇이 생업을 포기하고 부산시청 주택정책과를 만났습니다. 당시까지 모였던 피해자들의 상황을 정리하고 기사화된 지원대책에 대한 질의를 정리하는 등 준비도 철저히 했습니다. 피해자 95세대를 대표해 가는 자리라는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게 한줄기 빛이 보이는 듯 했지만, 이들이 아직 '전세사기 피해 사각지대'의 예비 피해자라 결국 두번 울고 오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전세보증금대출 이자 지원, 단수·단전 유예 등 부산시에서 내놓은 대책에 대해 물었지만 "세부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는 대답만 되돌아왔기 때문이죠.
전세피해확인서 등 현실적으로 절실한 사안에 대해서도 "(구청) 소관이 아니니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국토부에 문의하라"는 굳이 만나서 안들어도 됐을 답변도 함께였다고 합니다.
전세 만기가 도래하면 조만간 이들도 '전세사기'로 승격(?)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눈뜨고 코베일' 사태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당해야만 하는지 울분을 토하고 있습니다.
인천에서는 더 황당한 피해 사례가 나왔습니다. 전세'분양'사기입니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이미 너무도 많이 알려진 '미추홀구 건축왕' A씨입니다.
애초 작년 4월에 준공 예정이었던 주상복합에 전세로 들어가려던 피해자들은 계약금으로 가구당 전세보증금의 10% 수준인 3000만~4000만원을 A씨 건설사에 건냈습니다. 그러나 준공은 계속 미뤄졌고, 결국 지난해 7월 공사가 중단되며 피해자들은 아직 입주조차 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이 분들은 살아보지도 못하고 계약금을 떼일 위기인겁니다. 게다가 이들은 정부와 여당이 발의한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의 구제대상에서도 포함되지 않아 피해보상을 받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별법이 정한 피해자 요건은 대항력이 있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이거나 임차 주택의 경·공매 진행 등인데, 이들은 건물이 아예 완공되지도 못한 상태라 대항력 요건인 전입 신고나 등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세사기 피해가 너무도 다양하게 우후죽순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튀어나오고 있어 2023년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전세사기 공화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전세사기 지원 특별법'은 지난 1일에 이어 3일에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특별법 상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에 정부가 이를 일부 완화한 수정안을 다시 내놨지만, 여전히 지원대상 범위를 넓혀야한다는 주장에 부딪힌 겁니다.
수정안은 △대항력·확정일자 모두 충족하지 못해도 임차권등기를 마친 경우 △임대인의 파산 및 회생절차, 경·공매 절차 개시로 다수의 임차인에게 피해 발생 및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 △임차인의 임대차 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경우(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 조정으로 최대 4억5000만원까지 인정) △수사 개시 및 임대인 등의 기망 또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는 자에게 임차주택 소유권을 양도하는 경우 등 4개 조건을 충족하면 피해자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인데요, 이에 근거하면 앞서 말씀드렸던 부산과 인천 미추홀구 미입주 피해자들은 구제를 받을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세사기 여파를 곧 당할 예비피해자는 물론 전세사기 한복판에 놓인 피해자들은 특별법 처리도 시급하지만, 부디 국회가 전세사기 피해가 우려되는 사각지대도 잘 살펴서 판단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 한가지 더 있습니다. 전세사기로 많은 이들의 피눈물을 낸 가해자들의 처벌 강화입니다. 부산 예비피해자 S씨의 토로로 이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세피해 대책과 다양한 케이스의 전세피해자들의 구제 메뉴얼, 그리고 더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전세피해 예방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피해자들 구제 대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전세사기) 임대인에게 책임을 지게하고 처벌을 강화해 엄중히 다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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