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사회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줘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2023. 5.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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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울산의대 의예과 2학년을 대상으로 노숙인에 대한 강연을 하고 왔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존엄이라는 시간에 지난해는 노숙인과 건강, 올해는 노숙인과 벧엘의집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사실 벧엘의집 희망진료센터에 봉사를 나오는 의대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대수업은 거의 임상수업에 대한 이야기만 주로 하기에 인문 사회학에 대한 강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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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울산의대 의예과 2학년을 대상으로 노숙인에 대한 강연을 하고 왔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존엄이라는 시간에 지난해는 노숙인과 건강, 올해는 노숙인과 벧엘의집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처음 의대 학생들에게 노숙인에 대한 강연을 부탁받았을 때는 의대에도 이런 강의를 하는 과목이 있나 하고 의아해 하기도 했다. 사실 벧엘의집 희망진료센터에 봉사를 나오는 의대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대수업은 거의 임상수업에 대한 이야기만 주로 하기에 인문 사회학에 대한 강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 때는 의대에도 인문사회학 과목이 많이 개설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의학은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다. 사람을 다루기보다는 인체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임상수업을 하기 전 인체의 구조를 알아야 하기에 해부학이란 과목을 공부하는 것 같다.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살과 뼈, 신경, 혈관, 장기 등의 구조와 역할 등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이상 증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몸에 병이 생기면 인체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도 바로 영향을 준다. 질병에 대한 염려가 생겨 우울해지기도 하고, 질병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만사가 귀찮아져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그 뿐이랴. 질병은 사람의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가족관계, 일상생활, 등 사회적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반대로 사회 환경이 인체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열악한 주거, 영양상태의 불균형, 불결한 위생상태 등에서 기인하는 질병이 인체에 영향을 준다. 어쩌면 이런 환경과 인체에 대한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 사회의학이라는 학문이 아닐까 싶다. 다만 단어에서 풍기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의 병리현상과 사회 환경이 사람들의 질병에 미치는 상관관계에 대한 학문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 어느 노교수님의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자리에 초청을 받아 '사회를 치료하는 길을 가는 노교수님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으로 축사를 한 적이 있다.

"우리 김교수님은 늘 엄한 분이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는 의대 학생들에게 진중함으로 봉사에 임하도록 하셨지요. 술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마음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겠지요. 또한 교수님은 사람을 보시려고 애쓰셨습니다. 자칫 무료진료소라는 곳이 기능적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곳인데 환자이전에 소중한 인격을 가진 한 사람으로 보시려고 하셨지요.

그동안 교육자로서, 환자를 살리는 의사로서 한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넘어 사회를 살리는 의사로의 길로,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것을 넘어 사회를 교육하는 길을 가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렇듯 학자도 아닌 내가 의대생들에게 노숙인에 대한 강의를 부탁받았을 때 선뜻 가겠다고 한 것은 한 가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내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를 넘어 사람들의 집합체인 사회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단 한 명이라도 결단하는 학생이 생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목사로서 벧엘의집을 시작한 것은 교회의 모범을 세워보려는 열망에서 시작했고, 간혹 후배들에게 강의를 할 기회가 생기면 그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내 이야기를 듣고 한국교회를 제대로 세워가는 목사가 되길 원했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든 결론은 매번 똑같았다.

지금도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사회를 치료하는 의사가 많아지길 원하고, 교회를 바로 세워가는 목사가 많아지길 원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면 마다하지 않고 똑같은 결론으로 말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벧엘의 꿈인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열어갈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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