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이식이 필요한 사람들[메디칼럼](27)
장기이식 수술 후에는 보통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한다. 간, 심장, 폐가 망가진 경우는 할 수만 있다면 이식하는 게 맞다. 하지만 췌장이식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직 합병증이 없고, 혈당 조절이 잘 안 되는 경우에 권한다.
장기이식은 현대 의학의 꽃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인류의 오래된 꿈이 현실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위암을 수술할 때 암이 있는 부위를 잘라내고 나머지 부위를 문제가 안 되도록 연결하는 방식은 이상적 치료가 아닌 듯이 느끼게 됩니다. 휴대전화 액정이 망가졌을 때 액정을 접착제로 수리하는 것보다 액정을 갈아주면 서비스를 받는 사람의 기분이 더 좋아지듯, 문제가 있는 장기를 아예 건강한 장기로 바꿔주면 훨씬 더 완벽한 치료 방법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인간 몸의 면역체계는 외부의 병원균에 대해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조직에 대해서도 작동합니다. 즉 다른 사람의 장기가 몸에 들어오면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이상 거부반응 없이 다른 사람의 장기를 내 몸에 이식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진화의 결과일 겁니다. 모든 사람의 조직형이 같고, 그 조직형이 취약한 병원균이 유행한다면 인류는 멸종할 수도 있으니까요. 진화론적으로 유전성 다양성의 확보는 그 종의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성공적인 장기이식을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면역력을 억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면역억제제라는 것을 최소한 이식 후 이식받은 장기가 제 기능을 할 때까지, 보통은 평생 복용해야 합니다. 면역억제제는 그야말로 면역을 억제하기 때문에 그것을 먹지 않는 사람은 걸리지 않는 감염에 취약해지기도 합니다. 또 몇십 년 동안 면역억제제를 먹게 되면 암이 생길 확률도 올라갑니다. 이런 면역억제제 복용의 불편과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장기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 심장, 폐 등의 장기가 망가지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장이식의 경우는 투석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는 있지만, 1주일에 3번씩 투석을 하면서 삶의 질이 좋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신장이식도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할 수만 있으면 하는 게 좋습니다. 뇌사 기증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체 기증자라도 기증이 가능한 분이 있다면 좋겠지요.
췌장이식의 경우는 그러나 좀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췌장 수술은 신장이식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인슐린 주사를 끊을 수 있다는 건 장점입니다. 혈당이 정상적으로 조절됩니다. 문제는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신장과 같이 이식하는 신췌장동시이식이나 신장이식 후에 면역억제제를 먹는 상태에서 췌장이식을 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선택이 어렵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식한 신장 때문이라도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니까요. 이런 경우는 췌장이식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습니다.
면역억제제의 위험이냐 인슐린 주사냐 췌장만 단독으로 이식할 때 고민이 발생합니다. 과연 이 사람에게서 췌장이식을 시행함으로써 혈당이 정상화되는 것이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는 위험성보다 더 이득이 있을 것인가. 췌장이식을 하는 외과 의사로서 가지는 딜레마입니다. 국내에서 췌장이식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곳은 매우 적습니다. 사실 1년에 10개 이상의 췌장이식을 하는 곳은 전국에 서울아산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간이식이나 신장이식 같은 경우는 집단 지성이 작동해 특정한 경우에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중지가 모아집니다. 췌장이식은 다릅니다. 이식외과 의사로서 ‘내가 과연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합니다. 자기반성과 판단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고독합니다.
신장기능이 좋아서 신장이식이 필요 없는 경우라도 반드시 췌장이식이 필요한 사례가 있습니다. 저혈당 무감지증(hypoglycemic unawareness)의 경우는 혈당이 떨어져도 식은땀, 두근거림 등의 증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반드시 췌장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슐린이 필요한 당뇨병을 가진 모든 환자가 저렇게 명확한 상태는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분비내과 의사 선생님들이 저를 연수강좌 강사로 불러주셨습니다. 췌장이식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내분비내과 선생님들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는 건 췌장이식을 하는 외과 의사로서는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치료하고 있으면서도 소통이 너무 부족했다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내분비내과 선생님들과 상의한 결론은 우선 당뇨병을 좀더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당뇨병은 혈당이 높아진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그 당분이 우리 몸의 미세혈관, 주로 신경과 망막 등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 상태가 더 오래되면 심장혈관이나 뇌혈관까지 막히게 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어느 정도 합병증이 진행돼 회복이 어려운 지점을 지나면 그때부터는 혈당을 아무리 잘 조절하더라도 몸 상태가 예전처럼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췌장을 이식한 환자 중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런저런 당뇨병 치료를 오랜 시간 해오는 과정에서 신장기능은 괜찮더라도 몸의 다른 부분에 합병증이 진행된 분이 많습니다. 내분비내과 선생님들이 보고는 놀라더군요. 가장 심한 당뇨합병증 환자가 췌장이식 외과에 다 있었구나 하고요. 합병증이 많이 진행된 환자는 췌장이식을 시행해 혈당이 정상화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제한적입니다. 내분비내과 선생님들과 상의해서 우선적으로 내린 결론은 아직 합병증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혈당이 전혀 조절되지 않는 사람들이 제일 췌장을 이식하기에 알맞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저의 경험을 보더라도 아직 합병증이 없는 사람이 췌장을 이식받았을 때 거부반응 등도 오히려 적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췌장이식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췌장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뇌사자에게서 이식을 받기 위해 등록한다면 대기 기간이 3개월을 잘 넘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췌장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겠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췌장이식이라는 수술의 위험성과 면역억제제의 위험성을 무릅쓰고라도 췌장이식을 받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환자분들이 있습니다. 이미 신장이 망가져 신장이식이 필요한 당뇨병 환자들과 저혈당 무감지증 환자들은 췌장을 이식받는 게 더 낫습니다. 아직 신장 기능이 괜찮고, 다른 합병증은 많이 진행되지 않았고, 적극적인 인슐린 치료에도 불구하고 저혈당과 고혈당이 반복되면서 혈당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적극적으로 췌장이식을 고려해보기를 권합니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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