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복판에 빛나는 무지갯빛 돔…김수자가 만든 사색의 공간
갤러리 라파예트,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돔 내부 공간 개방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프랑스 파리에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날이면 파리 중심부에 있는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 본점을 덮고 있는 돔이 무지개색으로 빛난다.
보따리 퍼포먼스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한국 출신 현대미술가 김수자(66)가 마치 보따리로 물건을 싸듯 빛으로 돔을 감싼 것처럼 보이게 만든 작품 '호흡'(To Breathe)이다.
김수자 작가는 1912년 지어진 백화점 꼭대기에 있는 이중 돔 중에서 바깥에 있는 돔에 특수 회절격자 필름을 붙여 햇빛이 투과할 때마다 무지개색으로 빛나도록 작품을 설계했다.
관객은 외부 돔과 내부 돔 사이에 있는 테라스를 걸어 다니면서 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빛의 세기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돔을 바라보며 사색과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원형 테라스를 천천히 걷다 보면 눈으로는 빛이 추는 춤을 쫓게 되고, 귀로는 들릴 듯 말 듯 하다 점점 가빠지는 작가의 호흡 소리를 담게 된다.
에펠탑 등 파리 시내 명소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이 있는 옥상으로 나가면 마치 여러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처럼 다채로운 색감의 빛을 뿜어내는 돔을 마주한다.
공기가 있어야 숨을 쉬듯 김수자 작가의 '호흡'은 햇빛이 있어야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날이 흐리면 그의 작품을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 그 점이 작품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지난달 중순 파리에서 만난 김수자 작가는 "'호흡'은 보이지 않는 순간, 또 전환의 순간까지 스펙트럼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햇빛이 필름을 투과해 무지갯빛으로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들숨의 순간'이 있으면 빛의 향연이라는 '날숨의 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자 작가는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로비 정중앙에 1년에 딱 하루, 하지(夏至)에 원형의 무지갯빛이 드리워지도록 작품을 설치했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1년에 걸쳐 되돌아오는 천체의 운동이 아트리움 공간과 수직으로 만난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에요. 그 조우를 관객 역시 때로는 긴 호흡으로 기다리는 경험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김수자 작가의 '호흡'을 선보이는 테라스는 110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가 그간 일반 대중에 공개한 적이 없는 공간으로, 김수자 작가를 위해 특별히 개방했다.
갤러리 라파예트와 작업을 하면 백화점 안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김수자 작가는 시각적, 음향적 소음이 심해 대안을 물색하다가 이 미지의 공간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상업적인 공간과 분리된 곳에 저의 숨소리와 허밍 사운드 작업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가 들리는 성소(聖所)이자 휴식과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하얀색 유리로 만든 돔에 빛이 뿜어내는 색을 덧입히는 일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돔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갤러리 라파예트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4월 14일 개막한 전시는 6월 30일까지 이어진다. 매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 매주 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김수자 작가는 1999년 미국 뉴욕으로 삶을 터전을 옮기고 난 뒤 자신을 늘 "예술적 망명자"라고 불러왔다. 그런 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수자 작가는 "20년 넘게 떨어져 지낸 가족이 치명적인 병고를 치르게 되면서 가족과 함께 있기 위해 뉴욕 생활을 정리했다"며 "우연히도 이 시기는 코로나19 대유행과 맞물렸다"고 전했다.
한국으로 기반이 바뀌었을 뿐 그는 여전히 호주 시드니, 홍콩, 멕시코 푸에르토 에스콘디도, 덴마크 코펜하겐, 이탈리아 베네치아, 네덜란드 레이든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활발히 전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랑스에 특별한 애정이 있다는 김수자 작가는 2015년 퐁피두 메츠 센터에서 '호흡'을 선보였고, 2022년에는 메츠 대성당 건립 800주년을 맞아 성당 내 회랑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김수자 작가는 조만간 파리 지하철역 안에 설치한 작업을 공개할 예정이며, 파리 외곽 세브르에 있는 국립도자기박물관과 독일 베를린 훔볼트 포럼에서 개인전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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