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전세포비아' 닥친 미추홀·강서 울상…"전셋값 수천만원 떨어진 곳도"
HUG 보증보험 요건 강화…"화곡동 전셋값 2000만원은 내렸다"
(서울=뉴스1) 박기현 기자 = "요즘은 만기가 다가오면 세입자들이 찾아와서 사기꾼이라 따지질 않나 거래는 안 되고 골치만 아파요. 괜찮은 매물이 나오지 않으면 소개도 못하고요. 애초에 전세 자체를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A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대한민국에서 전세금을 은행에 예치해놓고 만기에 돌려주는 경우가 어딨나요. 월세 말고 전세를 놓는 이유는 당장 목돈이 필요해서 그런 거죠. 그런 사람들이 방이 안 빠지는데 세입자한테 돈은 어떻게 주나요. 나쁜 임대인이 아니라도 지금 돈을 돌려주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서울 강서구 화곡동 B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전세사기로 큰 논란이 일었던 지역에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자취를 감췄다. 각각 주택 수천채를 보유했던 '빌라사기꾼' 김모씨와 '건축사기꾼' 남모씨가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인근에 전세사기 우려가 번졌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전세사기 충격으로 전세시장이 순식간에 얼어붙은 데다 역전세까지 겹쳐 지역 시장에 '동맥경화'가 발생했다고 걱정했다. 보증금을 크게 깎지 않는 이상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임대인이 퇴거를 희망하는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숭의동 부동산 절반이 문 열지 않아…"전세는 한 건도 중개 못 해"
지난 2일 <뉴스1>이 찾은 숭의동 일대 공인중개사무소는 대부분 한산했다.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기에도 이른 시간대였지만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문을 닫고 있었다.
숭의동 소재 C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지난해 7월부터 월세 중개는 몇 건 했지만 전세는 한 건도 하지 못했다"며 "집을 낙찰받으려는 피해자들이 경매 시세를 물어보거나 낙찰을 마친 피해자는 세를 어느 정도로 놔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 제외하고는 문의가 뜸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인근에서 사기를 일삼던 컨설팅 업체들이 사라지면서 위험한 매물이 간혹 들어오는데 이런 매물은 중개도 못 한다"고 토로했다.
숭의동 D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세입자와 임대인이 생각하는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며 "임대인은 전세 가격이 높았던 시절 맺었던 가격을 생각하는데 임차인은 안전한 가격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전세사기 이슈가 불거지면서 임차인들도 공부하다 보니 어떤 가격이 보증금을 돌려받기에 유리한지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경매로 전셋집이 넘어가더라도 우선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최우선변제금' 기준을 고려한다든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주택을 요구하는 임차인이 많다는 것이다.
◇"공시가격도 내렸는데"…HUG 보증보험 가입 요건 강화
이달부터 HUG는 전세가율(시세 대비 전세가 비율)이 90% 이하인 주택에 사는 세입자만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있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기존에는 가입 기준이 전세가율 100%였으나 '깡통전세'를 시장에서 퇴출하기 위해 보증의 문턱을 높인 것이다. 이에 따라 전셋값이 공시가의 126%('공시가 140%'의 90%) 또는 실거래가격의 90%보다 낮은 주택만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다.
인근 E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얼마 전에 세금 깎아준다고 정부에서 공시가격을 터무니없이 낮췄다"며 "낮아진 공시가격에 126%까지 적용하게 되면 보증보험에 과연 몇이나 가입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집주인 한 명은 계약이 끝났는데도 보증금을 못 돌려줘서 기존 임차인한테 보증금 차액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면서 세입자를 구하고 있는 걸로 안다"며 "전세를 내는 집주인들은 대부분 목돈이 급한 사람들인데 차액을 구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했다.
◇화곡동 전세거래량 '뚝'…"대부분 2000만원 떨어져"
이른바 '빌라왕' 사건으로 많은 피해자가 나왔던 화곡동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강서구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거래는 작년 1월 766건으로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많았으나, 올해 1월에는 절반 수준인 394건으로 줄었다. 두 달 뒤인 3월은 549건으로 다소 늘었으나 전년 동월(792건)에 비해서는 여전히 적은 수준이다.
화곡동 소재 F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2억원을 넘던 매물들이 1억원대 중후반까지 내려왔다"며 "대부분 2000만원 이상은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화곡동에서 21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대표는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거래가 되지 않으니 임대인들 사이에서 비상이 걸렸다"며 "매물이 쌓이는데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하니 수수료를 더 주겠다면서 빨리 팔아달라는 연락도 종종 온다"고 전했다.
기존 전셋집에서 이사를 나오려는 세입자도 많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지금 전셋값으로 살기에는 비싸다고 생각해서 이사를 나오려고들 많이 한다"며 "괜찮은 매물도 많은데 중개사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masterk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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