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샴페인 거품은 왜 줄지어 올라갈까, 비밀은 불순물
불순물 없이 기포가 커도 같은 효과
하수처리, 온실가스 연구에도 도움
기포 하강하는 흑맥주는 순환 때문
병 마개가 터지고 거품이 넘친다. 저마다 잔을 들어 기쁨을 나눈다. 시끌벅적한 축배의 자리에서 고민에 빠진 과학자들이 있다. 왜 샴페인은 유독 기포(氣泡)가 잔 바닥에서 위로 줄지어 똑바로 올라갈까. 친구가 마시는 흑맥주는 왜 기포가 아래로 내려갈까. 맥주병을 치면 거품이 폭발하듯 넘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물리학자들이 샴페인과 맥주를 둘러싼 비밀의 거품을 벗겨냈다. 샴페인 기포의 수직 상승은 크기와 불순물에 좌우되며, 흑맥주 기포의 하강은 순환 때문이지 올라가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샴페인 거품이 터지는 최적 조건과 맥주병을 폭발시키는 거품의 위력도 속속 밝혀졌다.
◇불순물이 표면장력 줄여 거품 상승 도와
기포(bubble)는 다른 물질 안에 들어있는 작은 기체 방울이다. 기포가 뭉쳐 덩어리를 이루면 거품(foam)이라고 부른다. 일상에서는 두 용어를 구분 없이 쓴다. 미국 브라운대의 물리학자인 로베르토 제니트(Roberto Zenit) 교수 연구진은 4일 유체역학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플루이드’에 “샴페인 기포가 맥주나 탄산수 같은 다른 탄산음료와 달리 일렬로 상승하는 이유를 알아냈다”고 밝혔다.
샴페인은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 즉 발포성(發泡性) 포도주를 말한다. 포도주를 한 차례 더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많이 나와 탄산음료처럼 기포가 많이 생긴다. 브라운대 연구진은 이산화탄소가 들어있기는 탄산수나 맥주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샴페인만 기포들이 줄지어 수직으로 상승하는 이유를 규명했다. 대부분 맥주는 기포가 올라가면서 옆으로 휘어 여러 개가 동시에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연구진은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 맥주, 탄산수에서 기포가 될 가스를 제거하고 투명 용기에 채웠다. 이후 용기 바닥에 주사기를 찔러 넣고 공기를 주입하면서 기포의 이동 형태를 분석했다. 먼저 같은 크기의 기포라도 계면활성제가 많을수록 일렬로 상승하는 경향이 강했다. 계면활성제는 비누처럼 액체의 표면장력을 줄이는 물질이다. 샴페인 거품이 터질 때 특유의 풍미를 주는 지방산이나 단백질이 그런 역할을 한다.
표면장력은 액체 분자들이 표면에서 서로 끌어당겨 최소 면적을 유지하려고 하는 힘을 말한다. 기포는 표면장력이 적어 표면적이 크게 늘어난 상태이다. 계면활성제는 기포와 액체 사이의 표면장력을 줄여 아무런 마찰 없이 일렬로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탄산수에는 그런 계면활성제가 없어 기포가 불규칙하게 상승한다.
샴페인에 계면활성제가 적어도 기포가 크면 역시 일렬 상승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먼저 올라간 커다란 타원형 기포가 마치 배가 지나간 것 같은 자국을 만들어, 계면활성제처럼 다른 기포를 부드럽게 수직 상승시킨다고 설명했다. 앞서 간 커다란 기포가 뒤에 오는 기포들에게 길을 닦아주는 셈이다.
이에 비해 맥주는 대부분 기포 크기가 작아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일부 맥주는 계면활성제 역할을 하는 성분이 있어 기포들이 일렬로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수처리 돕고 온실가스 연구에도 도움
이번 연구는 단순히 흥밋거리로 한 것은 아니다. 제니트 교수는 “기포는 심해 온실가스 분출을 이해하거나 수처리 공정의 효율을 높이는 데 중요하지만, 일반인은 샴페인이나 맥주에서나 볼 수 있다”며 “음료 기포를 통해 일반인에게 액체를 다루는 유체약학이 일상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려고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기포 형성에 관여하는 유체역학을 이해하면 다양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례로 하수를 정화할 때 사용하는 기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한다면 처리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환경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메탄이나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가스가 해저에서 분출되는 것도 기포 형태이기 때문이다. 제니트 교수는 “해상 풍력 발전기 소음이 해양생물에 주는 피해를 줄이는 데 기포 커튼이 활용된다”며 “이번 연구가 역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샴페인 기포는 이전부터 물리학자들이 좋아하는 연구 주제였다. 지난 2016년 ‘유럽 물리학 저널’을 특별 주제로 샴페인 기포를 선택해 관련 논문 3편을 게재했다. 프랑스 랭스대 연구진은 “샴페인 기포가 클수록 터질 때 공기 중으로 향과 맛을 주는 화학물질이 많이 발산된다”고 밝혔다. 랭스대는 샴페인의 본고장인 샹파뉴-아르덴 지역에 있다.
당시 논문은 기포 크기가 작을수록 샴페인 품질이 좋다는 기존 관념과 정반대 결과였다. 연구진은 샴페인 기포는 지름이 0.4~4㎜인데, 그중 3.4㎜일 때 풍미를 주는 입자들이 공기 중으로 많이 터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더니 기포가 터지는 순간 샴페인이 물줄기처럼 위로 솟았다고 밝혔다. 기포가 터지면 공간이 생기면서 주변 기포를 당긴다. 이 힘이 샴페인을 위로 밀어 올린 것이다.
프랑스 소르본대 연구진은 2021년 ‘피지컬 리뷰 플루이드’에 샴페인 기포가 터지는 소리는 균열 부분이 클수록 주파수가 높아진다고 밝혔다. 기포가 크게 터질수록 소리도 커지는 것이다.
◇기네스 흑맥주 하강은 거품 순환 탓
기네스 흑맥주는 거품이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샴페인과 달리 기네스 흑맥주의 기포는 벽면을 타고 아래로 내려온다. 아일랜드 리머릭대 수학과의 윌리엄 리(William Lee) 교수는 2012년 ‘미국 물리학 저널’에 흑맥주 잔의 독특한 형태가 기포의 하강을 부른다고 밝혔다.
흑맥주 잔은 위가 넓다. 따라서 위에서 보면 잔 바닥 면적만큼 기포들이 가운데 부분으로만 올라온다. 거품이 잔 윗부분에 몰리면 그곳에 있던 맥주가 가장자리 벽면으로 밀려나 쌓인다. 가장자리에서 밀도가 높아진 맥주는 다시 벽면을 타고 가라앉는다. 이때 근처 기포도 같이 끌고 내려간다. 흑맥주가 검다 보니 가운데에서 솟아오른 기포는 보이지 않고 가장자리 벽면을 타고 내려가는 기포만 보인다는 것이다,
리 교수는 2018년 같은 학술지에 흑맥주라도 칵테일 잔에 채우면 거품이 넘치지 않고 바로 없어진다고 밝혔다. 역삼각형 모양의 칵테일 잔은 맥주잔보다 많이 기울어진 형태여서 가장자리 맥주의 하강도 더 빠르다. 그만큼 거품도 빨리 가라앉아 넘칠 새가 없다는 것이다.
맥주병 폭발의 비밀도 밝혀졌다. 뚜껑을 딴 맥주병 주둥이를 다른 병으로 치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거품이 솟아오른다. 스페인과 프랑스 과학자들은 지난 2013년 미국 물리학회 연례학술대회 유체역학 분과에서 그 비밀을 공개했다. 당시 결과는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공개됐다.
맥주병의 주둥이를 치면 압축파가 병을 타고 내려가면서 맥주를 압축한다. 병 바닥을 친 압축파는 다시 팽창파로 변해 상승하면서 압축된 맥주를 순식간에 팽창시킨다. 이로 인해 거품이 폭발하듯 올라오는 것이다. 샴페인이나 맥주나 터지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참고자료
Physical Review Fluids(2023), DOI: https://doi.org/10.1103/PhysRevFluids.8.053601
Physical Review Fluids(2021) DOI: https://doi.org/10.1103/PhysRevFluids.6.013604
American Journal of Physics(2018). DOI: https://doi.org/10.1119/1.5021361
European Physical Journal ST(2017) DOI: https://doi.org/10.1140/epjst/e2017-02679-6
American Journal of Physics(2013), DOI: https://doi.org/10.1119/1.4769377
arXiv(2013), DOI: https://doi.org/10.48550/arXiv.1310.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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