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출신 여성 과학자 절반이 사라졌다
취업 후 꾸준히 여성 인력 이탈, 고위직에는 4% 수준
경력단절 여성 연구 현장 떠나거나 계약직 연구원 선택
이공계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 중 절반이 연구 현장을 떠났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인구 감소와 연구에 대한 기피로 과학기술계의 연구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과학계에서 일하는 박사급 가운데 여성 인력은 전체의 12%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공계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 중 여성 비중이 24%인 점을 감안하면,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 중 절반 가량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과학계에선 이런 고급 여성 연구 인력의 이탈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출산·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과 현장 미복귀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실제 국내에서는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신규 입사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0%에 이르지만 출산과 육아로 계속해서 이 비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과총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과 2020년 공동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여성 중간 관리자의 비율은 12%에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선임 관리자와 최고 관리자(임원)로 올라가면서 각각 7.5%와 4.1% 수준으로 떨어진다. 정부 연구기관에서도 여성 연구원은 비중이 24.7%를 차지하지만, 관리자급에서는 12.8% 수준으로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급으로 올라가면서 인력 규모가 줄어드는 것과 별개로 성별에 따른 구성비가 더 크게 벌어진다는 의미다.
실제로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 중 재취업에 성공한 일부를 제외하면 연구 현장을 떠나거나, 대학 연구실의 계약직 연구원을 선택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생명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기업 연구소에 취업했다는 이모(39) 씨는 “취직 후 둘째를 임신해 휴직을 하고 복직했지만, 동료들의 눈초리와 회사 분위기상 6개월만에 그만두게 됐다”며 “공백이 3년으로 길어지면서 재취업이 어려워 지금은 대학 연구실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나는 그나마 연구를 계속할 수 있지만, 주변의 비슷한 사례를 보면 많은 경우 전업주부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고위층으로 갈수록 여성 인력이 사라지는 현상은 과학기술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여성과총이 국내 공학계 학회 중 여성위원회가 설치된 30곳을 조사한 결과, 역대 회장 851명 중 여성은 단 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여성이 회장을 맡고 있는 학회는 한 곳도 없었다.
오명숙 여성과총 회장(홍익대 화학공학과 교수)은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유엔여성기구(UN Woman) 성평등센터 정책포럼에서 “학회에서도 임원이나 분과 위원장을 맡는 여성이 적다”며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 연구자가 워낙 많기도 하고, 아직 여성이 학회장이 된다는 문화도 없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여성 인력의 이탈 현상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이 지난 2019년 미국립과학재단(NSF)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성 과학기술인력 중 40%가 출산 후 영구적으로 연구 현장을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정부도 지난 2019년 과학기술계 10년 계획의 문제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이탈 문제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경력단절에 따른 여성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사후 대책보다 예방책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발전과 다양성을 위해서는 여성 인력이 시스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오 회장은 “현재 산업계에서 여성 인력이 높은 자리까지 오르는 사례가 나와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해외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경우가 많다”며 “국내 과학계와 산업계의 여성 인력의 복귀를 위한 문화 개선과 함께 여성 인력들의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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