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티아고 - 운탄고도를 가다] 8.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길

김우열 2023. 5.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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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막장 피땀 위에 푸른 나무 피어나다
함백산 소공원~상장동벽화마을~산업전사위령탑 16.77㎞
함백산 남동쪽 함태탄광 있던 자리 자작나무 힐링숲 조성
계절별 야생화·탄광촌 벽화·황지연못 등 태백 볼거리 풍성

운탄고도 5길이 ‘광부와 광부 아내의 높고 애틋한 사랑의 길’이라면 6길은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길’이다. 피어나는 봄꽃과 시원한 여름, 붉게 물든 가을 단풍, 순백의 겨울 설경 등 함백산의 아름다운 사계를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을 벗삼아 산길을 내려오면 탄광촌 마을이 그때 그 시절 희로애락의 삶을 안내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막장에서 ‘검은 노다지’ 석탄을 캤던 광부들이 아름다운 자연과 사랑하는 가족(집)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치유·안식의 길’이다.

▲ 지지리골 자작나무숲길.

광부들은 집을 나서 일터에 도착한 순간부터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폭발과 사고 등 위험이 어디에든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일터에서 탈출해야 경직된 몸이 풀리고 자유의 몸이 된다. 이들에게 있어 최고의 보물은 가족, 유일한 낙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가족이 있는 보금자리로 향하는 길은 한결 가볍고 따뜻하다. 일터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자연은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고 희망을 샘솟게 한다. 자연·가족과 조우하는 길이 바로 6길이다.

6길은 가장 먼저 함백산(1572.9m)과 마주한다. 태백시와 정선군 사이에 우뚝 솟은 산으로 태백산과 일월산, 백운산, 가리왕산을 조망할 수 있다. 6길의 가장 큰 매력은 함백산의 사계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따라 발산하는 신비로움도 한가득이다. 구름 한점 없이 맑다가 갑자기 안개로 뒤덮이거나 구름 위를 걷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운해가 펼쳐지기도 한다. 야생화도 계절별로 피어난다. ‘장쾌한 풍경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길’이 운탄고도 6길 함백산 구간이다.

▲ 상장동 벽화마을(사진 위)과 태백황지자유시장.

함백산 남동쪽 기슭에는 지난 1993년 폐광된 함태탄광이 있다. 지지리골로 내려가는 길이 함태탄광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던 운탄 도로다. 광산이나 탄광 갱도 막다른 곳을 뜻하는 ‘막장’. 사회에서 ‘막장’은 ‘갈데까지 간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절망의 의미로 해석하지만 조관일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숭고한 산업현장이자 진지한 삶의 터전, 계속 전진해야 하는 희망의 상징’이라고 규정했다. 탄광이 있던 자리는 자작나무숲이 됐다.

함백산을 다 내려오면 보고싶은 가족이 있는 집(함태탄광 사택촌)이 나타난다. 1970년대 호황기에는 4000여명이 거주했다. 탄광은 벌써 문을 닫았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은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사택촌에서 옛 추억을 회상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원 지폐를 물고 있는 강아지 만복이 등 그때 그 시절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각양각색 벽화도 눈길을 끈다.

태백역을 떠난 기차는 황지 시가지를 통과한 뒤 문곡역을 지나 동백산역으로 향한다. 여기서 기차는 산맥 아래 삼척 도계로 내려가기 위해 긴 터널로 들어간다. 태백과 도계의 고도차가 워낙 커 똬리굴(솔안터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굴이 자리한 곳이 연화산이다. 6길의 도착지인 산업전사위령탑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굴을 품고 있는 연화산의 서쪽, 낙동강 1300리의 시작인 황지천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태백의 중심인 황지동은 다양한 매력을 품고 있다. 황지연못을 중심으로 전통시장인 황지자유시장 등의 공간은 외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하다. 운탄고도 트레킹의 메인 도시로 손색 없다.

6길은 함백산 소공원에서 국가대표 고지훈련장, 오투리조트, 임도, 자작나무 힐링숲, 지지리골 쉼터, 상장동 벽화마을, 연화폭포, 산업전사위령탑으로 이어지는 16.77㎞(소요시간 5시간 34분) 코스이다.

▲ 상장동 벽화마을(사진 위)과 태백황지자유시장.

■6길 주변의 명소들

△지지리골= 옛날 사냥꾼들이 골짜기 안쪽에서 멧돼지를 사냥해 현장에서 돌을 불에 달궈 고기를 구워먹었다. 돌을 구들처럼 길게 만들어놓고 아래에서 불을 때면 돌이 달궈지게 된다. 그 위에다 고기를 얹어 굽는 방법인데 요즘의 돌 구이와 비슷하다. 이것을 지지리라 한다.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아 지지리를 자주 해먹던 골짜기여서 지지리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이 골짜기에 화전민들이 살았는데 지지리도 못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과거 지지리골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화전을 일구거나 탄광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상장동 벽화마을=탄광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이야기마을이다. 함태탄광의 사택촌으로 그 시절 기억들을 간직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탄광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길, 어머니의 길, 만복이의 길, 곰배리 이야기 등 총 4개의 길로 구성돼 있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는 마을 안길 담장과 벽화에서 목숨을 걸고 일했던 광부와 가족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벽화에는 그 시절 금기들도 있다. 출근할 때 다녀오겠다고 인사하지 않기, 집에서 나설 때 뒤돌아보지 않기, 사나운 꿈을 꾼 날이면 출근하지 않거나 일 나가기 전까지 꿈 이야기 하지 않기 등이다. 여자가 그릇을 깨도 출근하지 않았다. 출근할 때 머리 위로 까마귀가 지나가도 두려워했고, 남편이 출근할 때 아내는 앞길을 가로질러 가서도 안됐다.

△함태탄광=삼척탄전의 황지지구에 속하는 무연탄 광산으로 1954년에 개광했다. 1956년 영동선이 개통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1973년까지 약 600만t의 무연탄을 생산했다. 이후에도 매년 60만t씩 무연탄을 생산하며 번성했다. 한때 2200여명의 직원을 둘 정도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으나, 1989년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에 따라 1993년 12월 21일 폐광됐다. 이후 2001년부터 폐광시설을 활용해 탄광을 체험할 수 있는 테마공원이 조성돼 현장학습관, 탄광사택촌, 시민공원 등의 시설을 갖춘 태백체험공원이 개장했다. 김우열 woo96@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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