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1조 쏟아부어 미국 제재 뚫을래" 화웨이 쑤저우 연구소를 가다
산업 특성 최적화 '5G특화망' 솔루션 개발
주춤한 스마트폰 판매에 5G망 구원투수로
지난해 1,615억 위안 사상 최대 R&D 투자
지난달 24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의 '화웨이 5GtoB 연구소'의 한 시연장. "딸깍". 연구원이 마우스를 클릭하자 로봇이 "우웅~"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이동하더니 선반에서 컨테이너 하나를 들어 올렸다. 연구원이 마우스를 다시 한번 클릭해 목표 지점을 일러 주자 로봇은 다른 선반에 컨테이너를 내려놨다.
로봇이 지시를 따르는 동안 중앙 제어실 스크린에는 로봇의 위치가 빨간 점선을 그리며 보고됐다. 컨테이너가 옮겨진 위치는 제어실 스크린과 연구원 스마트폰에 실시간으로 전송됐다. 화물 관리 로봇과 로봇 정보를 저장하는 클라우드가 단일 5G망으로 연결된 덕분이었다.
중국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화웨이는 한국일보를 비롯한 각국 기자들을 5GtoB 연구소로 초청해 직접 개발한 '5G 특화망'을 시연해 보였다. "중국의 성장을 두려워하는 미국의 제재를 정면 돌파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설립한 연구소를 해외 언론에 공개한 건 처음이다. 화웨이는 기술 유출을 염려해 내부 촬영을 철저히 금지했다.
화웨이, 8조원 5G특화망 시장 선점 도전장
5G특화망은 산업 현장에 최적화된 '기업용 5G망'이다. 통신 사업자로부터 공용 5G서비스를 받아 쓰는 게 아니라 항만, 광산, 철강, 의료, 금융 등 특성이 다른 사업장별로 최적화된 독립적인 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망 자체가 업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업무 효율이 높고 소수 인력이 업무를 통제할 수 있어 인건비가 절감된다.
물류 항구를 예로 들어 보자. 폐쇄회로(CC)TV를 지켜보고, 지게차로 화물을 옮겨 싣고, 선적 현장을 점검하는 것 모두가 사람의 일이다. 5G특화망을 도입하면 순찰 로봇, 컨테이너 운반 로봇, 드론, 카메라 등을 5G로 연결해 원격으로 통제할 수 있다. 5G특화망이 산업 현장 디지털 전환(DX)의 필수 도구인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1년 17억 달러 규모였던 세계 5G특화망 시장은 2026년 4배 이상인 65억 달러(약 8조7,0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급성장하는 5G특화망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화웨이의 새로운 목표다. 멍완저우 화웨이 순환회장은 지난달 19일 광둥성 선전 본사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산업 현장 DX가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며 "DX 분야 육성을 위해 화웨이는 통신, 컴퓨팅, 클라우드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기준 세계 20여 개국의 약 5,000개 기업에 5G 특화망을 판매하며 축적한 경험치를 바탕으로 5G특화망을 새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공장 가동 상황, 5G망으로 한눈에
쑤저우 5GtoB 연구소는 5G특화망 산업의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라고 화웨이는 설명했다. 화웨이와 중국정보통신기술원(CAICT), 베이징과학기술대 등 업계, 학계, 정부가 공동으로 투자해 5G특화망 솔루션 개발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중국 최초의 연구소다. 화웨이 관계자는 "중국의 5G특화망 기술이 이곳에 모두 집약돼 있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5G 스마트 제품 검사 솔루션'도 시연했다. 완성된 강판 제품이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돌다 스마트 검사기 앞에 멈춰 섰다. 검사기가 제품의 결함을 찾아내자마자 통합정보 스크린에 "3번 제조 라인에서 결함이 발견됐다"는 경고문이 떴고, 로봇은 불량 제품을 컨베이어벨트 바깥으로 밀어냈다. 제품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통합정보 스크린에는 '공장 가동률', '제품 완성률', '결함 비율'을 나타내는 숫자가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왕융더 쑤저우 5GtoB 연구소장은 "화웨이의 5G특화망은 이미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효율성과 비용 절감 효과를 증명했다"며 "2025년까지 1만 개 이상의 5G특화망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화웨이가 올해 들어 5G특화망 사업 확장에 집중하는 건 미국의 제재와 직결돼 있다. 화웨이는 한때 삼성전자, 애플과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3등분할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의 정보통신사업 확장을 경계한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조달이 어려워지며 주춤했다. 그래서 스마트폰 시장 대신 5G특화망 같은 기업용 서비스로 눈을 돌린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5G특화망 사업에 필요한 반도체는 미국의 제재 대상인 스마트폰용 반도체와는 달라 중국이 자체적으로 조달이 가능할 것"이라며 "5G특화망 사업은 미국의 영향에서 훨씬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미국 제재는 변수 아닌 상수"...어려울수록 R&D 투자
미국의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화웨이의 비장한 각오는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더욱 선명하다. 최근 발표된 지난해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는 전체 매출의 25% 이상인 1,615억 위안(약 31조 원)을 R&D에 투자했다. 20만7,000명의 화웨이 직원 중 R&D 인력은 55%가 넘는 11만5,000명이다. 특허 출원도 7,600개 이상으로, 단일 출원인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냈다. 기술 개발을 통한 신사업으로 미국의 제재를 따돌리겠다는 전략이다.
멍 회장은 지난달 연례보고서 발표에서 "미국의 규제는 이제 우리의 뉴노멀"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전방위 제재는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뜻이다. 그는 "현재의 지정학적 상황과 환경을 바꿀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며 "다만 우리가 할 일은 그 환경에 적응하고, 우리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쑤저우=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어이없다” 부인하더니 황제수영 사실로…고개 숙인 파주시장
- “나이팅게일도 못 버텨” 사표 낸 간호사 ‘결혼식 알바’ 뛴다
- "너무 배고파서"... 외상 부탁한 미혼모 채용한 사장님
- 강수지 "날 '강아지'라 부르는 김국진... 결혼 후회 안 해"
- 김소연 "남편 이상우, 내 생일 맞춰서 보일러 틀어"
- 윤박, 9월 장가간다... 예비 신부는 6세 연하 모델
- 외모로 여신도 선발해 세뇌까지...JMS 정명석 성폭행 조력자 8명 기소
- 프랑스 외교장관과 군함은 왜 동시에 한국에 왔을까[문지방]
- 메스 들고 정맥 도려낸 '김 선생'…정체는 간호사였다
- 엠폭스 국내 환자 96%가 남성, 대부분 익명 인물과 성접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