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잡화점의 컬트 아티스트"…美유력지, 재야 한인미술가 조명
"미술작품이라 할 수 있나" 논쟁에도 작품 미국 안팎 갤러리서 전시
황해도 출생, 서강대 졸업 후 항공승무원으로 일하다 1977년 이민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 유력 일간지가 최근 별세한 한국 출신 재야 미술가의 삶과 창작을 장문의 기사로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시카고트리뷴은 3일(현지시간) "시카고 로저스파크 지구에서 식품잡화점 '킴스 코너 푸드'(Kim's Corner Food)를 운영하며 '예술이란 무엇인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컬트 아티스트' 토머스 공이 지난 1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면서 그가 살아온 삶과 창작 동기 등을 소개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공씨는 17년 전 '킴스 코너 푸드'를 인수하고 매장 선반이 얼마나 삭막해 보이는지 깨닫기 전까지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칙칙한 상자들과 차가운 금속들을 가리기 위해 색종이를 자르고 접기 시작한 것이 열성 팬들을 확보하고, 미국 내·외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는 '예술가' 반열에까지 오르게 했다.
공씨는 빈 병으로 첨탑을, 검정 비닐봉투로 벽장식을, 포장 박스들로 조형물을 만들어 천장의 철제 프레임과 음료 냉장고, 창문 등을 장식해갔고 이는 매장 외부로까지 확대됐다. 그의 가게 안팎이 온통 그의 작품들로 뒤덮이게 된 셈이다.
독특한 그의 '창작 샘터'는 차츰 찬사를 불러 모았고 그의 작품은 10여 년 전부터 지역 갤러리 전시회에 초대됐다.
시카고 '062 갤러리'는 작년 12월 1일부터 지난 1월 말까지 두 달간 시카고 디자인 박물관에서 '우리 매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Thank You for Shopping With us)란 타이틀로 공씨 단독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공씨의 작품은 "과연 미술작품이라 할 수 있는지"라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시카고를 넘어 세인트루이스, 포틀랜드, 탬파, 일본 도쿄, 호주 멜버른, 독일 쾰른 등의 갤러리에도 전시됐다.
2014년 공씨에게 처음 전시 기회를 준 로저스파크 소재 '로먼 수전 갤러리'의 디렉터 네이선 스미스는 "공씨는 명상 또는 기도를 하듯 작업을 했다. 자신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062 갤러리'의 한인 디렉터 S.Y.림씨는 "2018년 공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잡화점 안에는 약 1만 점의 작품이 전시돼있었다. 지금은 3만 점에 달한다"고 전했다.
림씨는 "062 갤러리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도쿄와 타이베이의 미술제에도 가져가 작품 판매 수익금 전액을 그에게 주었다"면서 "하지만 그는 작품당 20달러(약 2만6천 원) 이상 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트리뷴은 "공씨는 하루 12시간, 주 7일 가게 문을 열고 일했다"면서 "시카고 디자인 박물관에서 그의 단독 전시회가 열렸을 때도 '가게를 비울 수 없다'며 개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킴스 매장에 가면 늘 카운터 앞에 서 있는 백발의 그를 볼 수 있었다"면서 "그는 입에 담배를 문 채 가위·풀·테이프 등을 옆에 놓고 새로운 작품 만들기에 몰두해있었다"고 부연했다.
공씨는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자재로 하루에 최소 10개 이상의 작품을 만들었다.
언젠가부터는 매장 뒤편에 작은 갤러리까지 조성하고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까지 했다.
시카고 디자인 박물관 설립자 태너 우드포드는 "그는 눈앞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으로 탄생시켰다"고 평했다.
공씨가 작품에 가장 많이 사용한 문구는 "행복하세요"였다.
방사선과 전문의인 공씨의 아들은 "아버지는 백혈병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며 "일을 좀 줄이시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가족들의 금연 권고도 듣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예술가의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면서 "근면 성실한 직업윤리를 갖고 시카고에 이민한 후 수많은 허드렛일을 거쳐 개인사업을 운영하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공씨는 1950년 황해도 태생으로 1953년에 남하해 1972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일하다 1977년 가족 초청으로 시카고에 이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한국 이름은 태권. 아버지가 북한군에게 피살된 후 어머니가 여섯 남매를 데리고 남한으로 이주했다고 트리뷴은 전했다.
공씨는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은 일이 없으며, 영문학도일 당시 소설가 F.스콧 피츠제럴드와 극작가 아서 밀러를 좋아했다고 트리뷴은 덧붙였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손주 5명, 누나 5명과 조카들이 있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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