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5월 하늘에 퍼지는 하프 연주자의 노래
생명의 계절인 5월에 생각하는 죽음의 의미
유성환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이집트학 박사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여러 유물이나 문헌을 보면 이들이 죽음을 ‘본향으로의 귀환’이나 ‘평온한 안식’으로 여겼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들이 죽음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 역시 필멸의 운명을 부여받은 인간의 처지를 탄식했으며 아무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죽음 뒤의 불확실한 상황에 전전긍긍하면서 부활과 영생을 위한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보다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삶의 모든 기쁨과 쾌락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이집트 문학 중 ‘하프 연주자의 노래’라는 장르에 잘 반영되어 있는데, 이 명칭은 귀족들의 주연이나 장례식의 절차 중 하나로 행해지던 장례 연회에서 다른 악사 무희들과 함께 활약했던 맹인 연주자가 하프를 연주하는 장면과 함께 그가 음송했던 가사가 분묘의 내벽이나 석비에 새겨지거나 그려진 데 착안해 현대 이집트학자들이 붙인 것이다. 특히, 같은 종교적 시가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는 찬가와는 달리 공식적인 신전 의례 등에서 낭송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프 연주자의 노래’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와 진솔한 감정을 보다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이 가능했다.
이들 ‘하프 연주자의 노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인테프 왕묘의 하프 연주자의 노래’인데 이 작품에서는 이집트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과는 다른 회의적인 정서가 부각된다.
“아무도 그곳에서 돌아오지 않았네, / 자신들의 처지를 말해주고자, 자신들의 운명을 말해주고자, / 우리의 심장을 달래 주고자, 우리가 그들이 떠나간 곳으로 가기 전까지는! // 그러니 그대의 심장을 기쁘게 하라! / 염려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그대의 심장을 따르라. / 머리에 몰약을 바르고 고운 아마 옷을 입고 / 몸에는 신에게 어울리는 귀한 기름을 바르라. / 즐거움을 높이고 심장이 가라앉지 않게 하라. / 심장이 원하는 대로 지상에서의 일을 행하라. / 그대를 애도할 날이 왔을 때 심장이 지친 이는 그들의 애도를 듣지 않으며 / 그들의 울음이 사람의 심장을 무덤으로부터 구하지 못하니.”
이런 노래가 흥겨운 연회 도중에 울려 퍼졌다면 확실히 분위기는 싸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집트의 다양한 풍습을 기록했던 헤로도토스를 빼놓을 수 없다. ‘역사’에서 그는 이집트에는 이처럼 연회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드는 관례가 있다고 기록한 바 있다.
“저녁 식사 후 개최되는 아이깁토스의 부자들의 연회에서는 한 남자가 나무로 시신처럼 보이게 만든 것을 관에 넣고 방 안을 도는데, 실감 나게 색칠하고 조각한 이 시신을 길이가 1 내지 2페퀴스쯤 된다. 그 남자는 연회에 참석한 손님 한 사람마다 그것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것을 보시며 즐겁게 마시세요. 당신도 죽으면 이렇게 될 테니까요.’ 아이깁토스인들은 연회 때 그렇게 한다.”
실제로 파라오 시대의 연회에도 이런 관례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와 유사한 파토스를 유발하는 공연이 연회의 일부를 이루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론은 가능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기원전 1000년 이후에는 ‘하프 연주자의 노래’라는 장르가 명맥을 잇지 못하고 소멸해 버린다. 장르가 소멸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가 바뀌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이는 장르의 생성과 소멸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인 만큼, 그에 대한 반응도 대체로 항구적이고 보편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때나마 ‘하프 연주자의 노래’라는 장르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집트에서는 죽음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집트인들은 죽음에만 집착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인테프 왕묘의 하프 연주자의 노래’가 삶의 즐거움 쪽으로 가파른 기울기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이 내세에서의 영생을 희구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세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과 행복을 부정하거나 배격한 것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서로 다른 존재의 두 양태가 모두 똑같이 소중했던 것이었다.
계절의 여왕 5월에 불쑥 죽음이라는 달갑지 않은 주제를 꺼내 보았다. 만물이 되살아나고 약동하는 시기에 차분히 모든 것의 종말을 잠시나마 곱씹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의 심장을 기쁘게 하라! / 염려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그대의 심장을 따르라.”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