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고양이 대학살
며칠 전 급하게 돈을 융통하러 친한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친한 친구가 나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잊어버렸던 기억을 빌려주었다. 그 친구는 내가 ‘탑 독(top dog)’이 아니라 ‘언더 독(under dog)’의 삶을 살겠노라고 한 말을 상기시켜 주었다. 젊은 날 치기 어린 주장이다. 친구를 통해 말이 씨가 됨을 알았고 나의 감수성의 근원을 살필 수도 있었다. 박사 수료를 위한 마지막 3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일상생활의 사회학’을 수강하고 있다.
수업 자료인 로버트 단턴이 쓴 논문집의 제목은 ‘고양이 대학살(The Great Cat Massacre)’이다. 이 연구의 바탕이 된 글은 인쇄공 꽁따가 쓴 ‘노동자들은 폭동한다: 생 세브랑가의 고양이 대학살’이다. 이 에피소드는 제롬이라는 제삼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배경은 프랑스의 17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턴은 ‘두꺼운 묘사(thick description)’를 통해 인쇄소에서 일어났던 소동에 관한 기록을 더듬어 당시 사회의 ‘망탈리테(mentalite)’에 접근한다. 망탈리테란 “지리나 기후와 같은 장기 지속적인 조건에 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 생활 습관을 말한다.” 단턴의 연구는 미시사(微視史), 신문화사 또는 일상생활의 사회사라고 해도 되겠다. 소개할 내용은 민중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바탕으로 해서 그들의 일상이 역사의 면면들을 채워왔다는 주장이다. 그 대표적인 연구로는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이며 ‘고양이 대학살’이다.
꽁따는 당시 프랑스의 인쇄소 견습공 생활이 처절하기 그지없음을 기록했다. 그는 ‘제롬’과 ‘레베이에’라는 두 명의 견습공이 처한 열악한 먹거리며 너저분한 잠자리를 여과 없이 전한다. 그들은 매일 밤 울어대는 고양이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부르주아’로 지칭되는 인쇄소 주인 부부는 일도 하지 않고 고양이 ‘그리스’를 애지중지한다. 심지어는 고양이의 초상화까지 그리게 한다. 성대모사에 탁월한 레베이에는 꾀를 내어 주인의 침소에 가까이 기어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 며칠 동안 잠을 설친 주인 부부는 인쇄공들에게 고양이들을 잡아들여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견습공들은 제일 먼저 그리스를 처형한다. 나머지 고양이들도 마치 주인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듯이 잔혹하게 살해한다.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너무나도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는 ‘카니발(carnival, 謝肉祭)’이 민중이 분노를 표할 수 있는 출구였으며, 고양이는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는 마녀를 상징했다. 카니발에 참가한 이들의 일탈과 잔혹한 행위는 ‘셰리바리(cherivari)’라는 관습을 통해 허용되고 사회에 복귀가 인정되었다.
단턴은 “고양이 학살을 프랑스 혁명의 9월 학살의 예행 연습으로 보는 것은 어리석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고양이 학살이 상징의 수준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할지라도 그 폭력성의 분출은 민중 봉기를 시사했던 것이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의식주의 한 부분인 주거의 문제가 날이 갈수록 치부의 수단으로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의 삶을 뭉갤 수 있는가. 분노가 치민다. 고양이 대학살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교훈이 될 수 없을까?
프란치스코 교종(servos servorum)께서는 한때 불법 이민자가 유럽으로 가려는 북아프리카 사람들의 밀항지인 이탈리아 시칠리아주에 속한 람페두사 섬을 방문해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말했다. “우리 자신만의 안락을 보호하기 위하여” 헤로데가 뿌린 죽음의 문화를 지적하며, “우리 가슴속에 숨어있는 헤로데를 없애 주십사 주님께 청하자”고 제안했다. “우리의 무관심을 슬퍼하고, 세상과 우리 마음의 야만성을 슬퍼하며, 또한 지금과 같은 비극적 상황을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결정들을 용납하는 익명성의 야만에 슬퍼하는 은총을 주십사 주님께 청하자”고 호소했다. 그렇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있었던 전세 사기로 죽어간 이들과 살아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의 아픔에 슬퍼하며, 그들의 삶에 ‘파스카(pascha, 유월절)’의 기적이 함께하기를 기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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