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민주, 처절한 부활의 제의가 필요하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돈봉투가 오갔다는 혐의 때문에 민주당 분위기가 가위 눌린 듯하다. 이재명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사과했고, 송영길 전 대표는 프랑스에서 급히 귀국해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분명치 않다. 민주당에 대한 윤석열 정부 검찰의 압박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며 이런 상황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검찰의 권력 남용, 부당 행사, 불공정에 대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외부의 공격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 언제까지 방패 노릇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상황을 주도해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003년 열린우리당이 직면했던 상황이 떠오른다.
열린우리당은 출범 당시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났다. 대기업이 제공한 불법 정치자금 일부가 당사를 마련하는 데 흘러 들어갔다는 혐의였다.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모두 부패정치에 넌더리를 내던 때였고 열린우리당은 그런 정치를 바꾸자는 기치로 집권을 하였던 터라 불법 정치자금 유입 혐의는 보통 충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대응은 신속했다. 당 지도부는 불법 자금 유입의 혐의를 받던 당사를 버리고 전격적으로 보따리를 싸 여의도를 떠났다. 새 당사는 영등포 청과물시장 옛 농협공판장이었다. 그 장소는 쓰레기 더미였다. 기자들은 그곳이 정당의 사무실인지 헛간인지 모르겠다는 기사를 올리기도 했고, 화장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안쓰러운 모습이나 ‘쪼그려’ 화장실을 사용하고 다리가 저려 일어나기 힘들었다는 가십도 전했다. 성찰과 혁신의 징표로 강행한 당사 이전의 진정성을 지지해주는 분위기가 일었고, 그 덕분인지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4월 총선에서 승리했다. 승리는 물론 한나라당이 무리하게 추진한 탄핵 실패의 역풍에 기인한 바 컸다. 하지만 자칫 정치개혁이라는 창당 명분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발 빠르게 대처한 열린우리당의 위기 대응이 주효했던 것도 승리의 요인이었다.
2003년 3월 영등포 청과물 시장 쓰레기 더미로 들어간 열린우리당의 경험을 이렇게 환기하는 까닭은 지금 어려운 상황에 놓인 더불어민주당이 좀 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모색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민주당은 성찰과 혁신의 이니셔티브를 잡아야 위기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민주당에 가해지는 공격을 방어하는 형국만으로는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에서는 이런 노력이 지지부진한 것 같아서 걱정이다.
전당대회 돈봉투 문제에 대한 설명 능력도 뭔가 허술하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반대 세력을 탈탈 털어 무력화하려고 한다’는 규탄의 한계효용은 체감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세상인심인지 모르겠다. 야속하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느냐?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게 있지 않냐?’라는 항변도 민심의 현실을 생각하면 안이하다. 여러 차례 확인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법률적 책임 소재 이상으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름값, 밥값 같은 실비다’라는 돈봉투의 성격을 고려해 달라는 부연 설명은 민심의 준엄함을 잊은 큰 실수라고 본다. 또한 ‘김현아는?’ ‘박순자는?’ 이런 질문이 이미 피장파장을 만들려는 물타기 화법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하지 않은 것만 못한 변론이었다.
민주당이 이런 식의 낡은 문법으로 ‘전당대회 돈봉투’에 대해 설명하면 그것을 잘 받아들일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어떤 경우에라도 민주당 편이라는 지지자들이야 그런 설명을 쉽게 믿겠지만 그들은 소수다. 정치인들은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국민은 그렇지 않다. ‘두 개의 진영과 다양한 국민’이라는 말처럼 열성 지지자들만으로는 승리를 위한 다수연합을 만들 수 없다. 박광온 신임 원내대표가 말한 것처럼 “지지자들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고 반사이익만으로도 이길 수 없다.” 이런 인식은 민주당이 연패의 늪에 빠진 당을 수습하기 위해 만든 ‘새로고침위원회’의 보고서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에 다 나와 있다. 보고서는 진보, 보수, 중도로만 구분했던 유권자 지형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해졌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간발의 차이로 진 선거였고, 검찰 권력의 의도적 공세가 계속되더라도 민주당은 성찰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면모를 만들어가야 한다. 스스로 변화하고 미리 변화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처절한 자기부정을 통한 부활의 제의(祭儀)가 필요하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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