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운수 납자
세계 어딜 가나 지하철 구경, 지하철 이용은 재미있는 경험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하철은 한산해. 뉴욕이나 델리의 지하철은 종일 붐벼. 한번쯤 꼭 타보고픈 평양 지하철. 무려 지하 100m 밑, 지하 궁전이라지. 역 이름도 신기한 게 지역 이름을 따르지 않고 ‘부흥, 영광, 봉화, 승리, 통일, 개선, 전우, 붉은 별, 광복, 건국, 혁신, 광명, 락원.’ 안내판엔 이런 글귀, ‘어디로 가시렵니까?’. 또 어떤 안내판엔 ‘서울 방면’도 적혀 있단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땅굴을 뚫고 오겠단 뜻은 아니겠지? 웃자고 하는 얘기. 제발 사이좋게 안 싸우고 살면 좋겠어.
세상에서 가장 편리하고 깨끗한 지하철을 꼽으라면 엄지손가락이 우리나라다.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만 완벽하게 설치하면 서울지하철은 무조건 세계 1위.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뭐 있겠냐만 왜 저리 냉랭하게 애를 먹이는지 모르겠다. 한가한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낯선 역에 내려 맛집을 수소문 끝에 찾아가는 여행도 즐겁겠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게다가 요금도 얼마나 양호한지 몰라. 국밥 한 그릇 값은 기본으로 벌었구나 셈 쳐도 돼.
지상의 시내버스 노선도 촘촘하게 잘 연결되어 있지. 오르막길을 손오공처럼 휘리릭. 최근에 버스 기사 한귀영씨가 쓴 <나는 괴산의 시골버스 기사입니다>란 책을 얻어 읽었다. 충북 괴산군에서 군내버스를 운전하는 분. 친절하고 훈훈한 기사님들이 시내버스를 ‘안전 운행’하고, 새벽부터 지하철을 몰며 우리 곁에들 부지런히 계신다. 노동절 즈음에 세상의 모든 운수 노동자들을 기억해. 운수 노동자가 운수 납자지 뭐야. 떠도는 구름과 물, 앞서 걷고 달리는 여행자들. ‘오늘도 무사히! 내일도 무사히!’ 시골버스에서 내릴 땐 ‘수고하세요잉~’ 애교를 잔뜩 발라 인사해. 천천히 내리시는 나무늘보 할머니 부축도 해드리고. 그대 다음 “어디로 가시렵니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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