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사는 게 뭐길래] 당신은 옳고 괜찮고 잘될 것이다… 정말?
‘당신은 다만 당신이란 이유만으로 사랑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앤드루 매슈스’
자주 다니던 도서관 로비 벽 높은 위치에 저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문구를 볼 때마다 두 가지 의문이 일었다. 하나는 ‘과연 그럴까?’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앤드루 매슈스가 누구야?’ 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앤드루 매슈스는 호주 출신 만화 예술가이자 동기 부여 전문가, 베스트셀러 작가다. 국내 번역서들의 제목이 명쾌하다. 마음 가는 대로 해라, 친구는 돈보다 소중하다, 자신 있게 살아라, 지금 행복하라, 10대여 행복하라, 즐겨야 이긴다……. 나처럼 삐딱한 인간은 저런 명쾌한 문장들을 보면 꼭 딴죽을 걸고 싶어진다. 마음이 친구보다 돈한테 가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
매슈스의 저서들을 찾아서 답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다만 당신이란 이유만으로 사랑과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 나온 문맥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러니 매슈스에게는 억울한 이야기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랑과 존중’은 저렴하거나, 적어도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나라는 사람은 바로 나,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나한테는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하겠지. 그러나 남에게 나라는 사람은 수많은 타인 중 한 명일 뿐이다. 연인이나 가족이 아니라면 더 그렇다. 그들에게도 나는 나라는 이유로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할 존재일까? 얼마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타인의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마음껏 외쳐도 괜찮은 이들도 있긴 하다. 어린아이들이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아닌 내가 남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사랑과 존중은, 그냥 남들이 받는, 내가 남들에게 주는, 딱 그만큼일 테다. 그 이상은 행운과 축복이라고 여겨야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해져야 한다’는 구식 가르침을 받고 자라서일까. 나는 심지어 자신에게조차 무조건적 사랑과 존중을 주장하는 일이 다소 겸연쩍다. ‘자격 없는 상태’가 없다면 자격이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때로는 누가 나를 비판하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꾸짖을 수 있고, 부끄러워할 줄도 아는 게 어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언제 그런 자격을 당당히 주장해도 되는가.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타인에 대한 우월감에서 나온다면 그것도 가련한 노릇이다. 힘든 과업을 해낸 뒤 맛보는 성취감은 훨씬 건강하고 짜릿하지만, 좀처럼 누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내 할 일을 제대로 할 때 얻는 자기 효능감이 자존의 바탕이 되는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자기 효능감을 얻는 일조차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점점 더 가혹하게, 가차 없이,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 효능감을 깎아내리는 것 같다. 일부는 엉성하게 도입되는 기술 때문이다. 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하며 우유 대신 두유를 택하는 방법을 도무지 찾지 못해 좌절하면서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는 없다(내가 자주 이런다).
‘과거의 성공 공식은 끝났다’는 말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듣는다. 과장과 호들갑이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내가 몸담았던 언론계, 현재 몸담고 있는 문화계의 지난 10년을 보면 맞는 말이다. 땀 흘려 배우고 익힌 노하우 대부분이 쓸모없게 되었고, “내가 이 일을 몇 년을 했다”는 말은 더 이상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다. 자기 효능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렇다고 새 시대의 성공 공식이 용기를 주고 희망을 북돋우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유튜브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성공 공식’으로 성공한 이들을 보면 솔직히 대단한 통찰력으로 철저히 준비해 성공을 거머쥐었다기보다는 다분히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공식은 곧 또 다른 새로운 공식으로 교체될 것 같다.
지적 성실함과 약간의 자신감을 함께 붙잡기조차 힘들어진 시대가 된 걸까? 서점에서 ‘당신은 옳고, 괜찮고, 잘될 것이다’라는 문구가 잔뜩 적힌 에세이 코너에 가면 착잡해진다. 다들 저 말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구나, 싶다. 하지만 달착지근한 어린이 메뉴를 너무 많이 먹었을 때처럼, 파스텔톤 일러스트를 너무 오래 봤을 때처럼 느끼하다는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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