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인간관계 내려놓고 오직 ‘롤’ 훈련… 지금은 내가 최강”

강동웅 기자 2023. 5.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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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예비 국가대표 정지훈
준우승 단골 ‘무관의 괴물’ 불리다
최근 상승세 타며 2회 연속 우승
“9월 아시아경기 힘 보태고 싶다”
‘쵸비’ 정지훈(젠지)이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젠지 e스포츠 사옥에서 국내 대회 우승 트로피에 팔을 걸친 채 미소짓고 있다. 정지훈은 2018년 프로 데뷔 후 국내 최대 롤 대회인 ‘롤 챔피언스 코리아(LCK)’에서 4년간 준우승만 4번 하며 무관에 그쳤지만 2021시즌 종료 후 젠지로 소속 팀을 옮기면서 최근 2회 연속 LCK 정상을 차지했다. 정지훈은 지난달 21일 발표된 항저우 아시아경기 e스포츠 국가대표 예비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리그 오브 레전드’(롤) 프로 게이머 정지훈(22·젠지)은 ‘한화생명e스포츠’에서 뛰던 2년 전만 해도 ‘쵸비’라는 공식 닉네임 대신 ‘쵸현진’으로 자주 불렸다. 류현진(36·토론토)이 프로야구 한화 시절 그랬던 것처럼 팀 성적이 부진한 가운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젠지 e스포츠 사옥에서 만난 정지훈은 이 별명에 대해 “내가 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면서도 “내가 못하면 팀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끝까지 잘해야 이 별명도 좋은 기억으로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해 더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몸이 말라 학창 시절부터 ‘멸치(앤쵸비)’로 통했던 정지훈은 2018년 프로 데뷔 이후 4년간 국내 최대 롤 대회인 ‘롤 챔피언스 코리아(LCK)’에서 우승 없이 준우승만 4번 차지하는 데 그쳤다. e스포츠 전문 매체 ‘업커머’는 그에게 ‘무관의 괴물(The Uncrowned Monster)’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2021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LCK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풍경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지훈은 2021년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자 젠지로 팀을 옮겼다. 젠지는 당시 공격적으로 전력 보강에 힘쓰고 있던 상태였다. 정지훈은 '2022 LCK 스프링'에서 또 한 번 준우승에 그쳤지만 '2022 LCK 서머'에서 '피넛' 한왕호(25), '도란' 최현준(23), '룰러' 박재혁(25), '리헨즈' 손시우(25)와 힘을 합쳐 우승을 차지하며 무관의 한을 풀었다. 이어 ‘2023 LCK 스프링’에서도 정상을 밟으며 2회 연속 우승 기록까지 남겼다. 두 대회 모두 결승 상대는 ‘페이커’ 이상혁(27)이 이끄는 T1이었다.

정지훈과 이상혁은 모두 팀에서 ‘미드’를 맡고 있다. 롤은 톱, 정글, 미드, 원거리 딜러, 서포터 등 5개 포지션이 한 팀을 이뤄 상대 팀과 전투를 치르는 게임이다. 이 중 미드는 맵(map)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길을 담당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도가 높은 포지션으로 평가받는다. 경기 흐름 조율도 보통 미드가 맡는다.

국내 미드 최강자는 오랜 기간 정상의 기량을 유지해 온 이상혁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지훈의 상승세가 뚜렷하다. 이미 이상혁을 뛰어넘은 기록도 있다. 정지훈은 LCK 대회에 통산 100경기 이상 출전한 미드 가운데 경기당 평균 ‘솔로 킬(solo kill)’이 0.288회로 가장 많다. 아군 도움 없이 홀로 상대를 처치하는 솔로 킬이 많다는 건 그만큼 공격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거꾸로 자신이 상대 팀 선수에게 처치당한 데스(death)는 경기당 1.53회로 가장 적다.

정지훈은 지난달 21일 발표된 항저우 아시아경기 e스포츠 국가대표 예비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롤을 비롯한 e스포츠가 아시아경기 정식 종목이 된 건 9월에 막을 올리는 이번 항저우 대회가 처음이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는 대표팀 최종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지훈은 “국가대표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린 미드 선수들 모두 내가 존경할 만큼 좋은 실력자”라면서도 “그래도 현재 실력으로 따지면 (경쟁자 중) 내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지훈이 자신감을 보이는 건 노력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정지훈은 “(한화생명 시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를 내지 못해 힘들었다.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게임을 제외한 삶의 나머지 부분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여가, 인간관계를 내려놓고 훈련에 1분이라도 더 투자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루고 싶은 게 있을 때 남는 시간을 쥐어짜면서 노력한다. 그렇게 습관을 쌓으면 노력의 성과는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다”며 “최대한 치열하게 살면서 정상을 찍어 보고 싶다. 아시아경기는 쉽게 오지 않는 기회라 다른 대회보다 더 욕심이 난다. 한국이 아시아경기 첫 우승국이 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강조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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