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門 넘고 門 넘어
신춘문예 당선 후, 문을 하나 통과한 기분이 어떤지, 삶이 조금은 바뀌었는지 질문을 받곤 한다. 읽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점, 그래서 전보다 더 읽고 더 쓴다는 점 외에 내 생활은 크게 변한 게 없다. 독서, 글쓰기 등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교실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만나왔고, 코로나 유행 전엔 책을 읽고 현장을 찾는 역사-사회 탐방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문을 통과해 경계를 넘었다는 말을 들을 때, 학생들과의 일을 떠올리며 빙긋 웃기도 한다. 캄보디아의 한 아동센터와 인연을 맺고 한글 및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어느 해 겨울방학엔 새해 맞이 ‘국경 넘기’를 해보자며 학생들과 학부모님이 동행했다. 우리나라에서 국경을 넘으려면 비행기를 타는 수밖에 없는데, 걸어서 캄보디아-태국 국경을 넘어간다는 말에 아이들이 눈을 반짝였다.
국경 간 다리를 건너, 태국 입국 서류를 각자 쓰도록 했다. 한 아이가 난감하다는 듯 물었다. “왜 가족 이름을 다 쓰라고 하는 거예요? 아빠, 엄마, 동생 이름까지는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데요.” 아이는 ‘family name’ 칸을 두고 고민했다. 아이들은 ‘일 생기면 가족에게 연락해야 해’라거나, ‘칸이 이렇게 작은데 어디다 쓰라는 건지 배려가 없네’라고 한다. 더위와 기다림에 지쳤을 법도 한데 웃음을 잃지 않고 머리를 맞댄 아이들을 보는 일이 꽤 즐거웠다. 미간을 찌푸리던 아이가 방긋 웃으며 “이거 ‘성(姓)’ 쓰라는 거잖아요. ‘KIM’만 쓰면 되는 건데. 알았던 거였는데요”라고 한다. 몰랐든 잊었든 괜찮다. 어찌 보면 인솔자가 걷어 빠르게 작성하고 국경을 넘으면 더 수월할 일이었다. 하지만 추억하며 나눌 이야기가 많은 이유는, 새로운 경험 앞에서 고민하도록 지켜보는 마음과, 좌충우돌하다 깨닫는 재미를 빼앗지 말아 달라는 아이들의 마음이 잘 맞물려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 하나를 통과했다는 건 지난 실수를 거름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말이 아닐까.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하다 보면 결국 자기만의 열매를 만날 것이므로, 천천히 즐기며 지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닫혀 있던 문의 손잡이를 이제야 가만히 돌려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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