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20년된 실험장비 못바꿔… “등록금 규제 차등화해야”

박성민 기자 2023. 5.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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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등록금 규제에 묶인 대학]
등록금 규제 15년에 재정난 가중… 물가 감안하면 사실상 수입 감소
사립대 연구-실습비 10년새 30%↓… 시설 수리-공공요금 내기도 벅차

《15년째 등록금 규제, 발묶인 대학

15년간 이어진 등록금 규제가 한국 대학의 경쟁력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연구비는 10년 전보다 오히려 30% 쪼그라들었고, 우수한 두뇌를 갖춘 전문가들은 낮은 교수 연봉을 이유로 대학의 ‘러브콜’을 거절한다. 그 사이 선진국 대학들은 한국과의 교육 격차를 벌리고 있다. 낡은 등록금 규제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 충남의 한 사립대는 이공계 연구실에 들여온 지 20년 가까이 된 실험 장비가 가득하다. 무게를 0.1mg 단위까지 측정하는 전자저울은 고장난 지 오래다. 생명과학 관련 학과에서 필요한 첨단 현미경 등 실험장비는 수년째 구매 계획만 세우고 있다. 재정을 아무리 쥐어짜도 5억 원에 달하는 장비 구입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다. 컴퓨터에는 현재 산업 현장에선 안 쓰는 구식 프로그램들이 깔려 있어 학생들은 “취업하면 어차피 다시 배워야 한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2. 서울의 한 사립대는 수년째 신임 교원을 ‘비(非)정년 교원’으로 충원하고 있다. 이들은 정년 보장이 안 되고, 정교수로 승진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연봉은 보통 4000만∼5000만 원 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는 것. 이 대학의 인문계열 교수는 “10년째 급여가 거의 그대로다. 대졸 신입사원 초봉만도 못한 보수를 받으며 자괴감을 느끼는 교수들이 많다”고 말했다.

● 화장실 못 고치고 공공요금 납부도 어려워

15년째 이어진 등록금 규제가 대학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실험실습비 예산은 2011년 2144억 원에서 2021년 1501억 원으로 30% 감소했다. 정부는 ‘첨단분야 신기술 개발’ ‘인재 양성’을 외치는데 정작 고등교육 현장에서는 연구교육 투자가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대학 신입생들은 고등학교보다 못한 대학 시설에 황당해하는 경우도 많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교수는 “컴퓨터나 빔프로젝터 등 시청각 장비를 제때 교체하지 못해 10년 가까이 쓴다”고 말했다. 전남의 한 사립대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 씨는 “일부 건물은 화장실이 너무 열악하고 고장이 잦아 학교에 수리해 달라고 했지만 2년째 그대로”라고 토로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대학들은 공공요금 납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수도권의 한 국립대는 경상비 예산을 20억 원가량 추가 편성했다. 지난해부터 가스, 수도, 전기요금 등이 줄줄이 오르거나 인상이 예고되면서 공공요금 인상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 대신 학생들의 해외연수 프로그램 예산, 시설 개선 비용 등을 삭감했다. 경남의 한 사립대 예산 담당자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청소, 경비 등 용역비 지출도 매년 2억∼3억 원씩 올랐는데 등록금 수입은 그대로니 수업이나 연구에 투자할 여력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 10년 사이 연구비는 오히려 31% 감소

돈이 없는 대학들은 우수 교원 확보도 거의 포기한 모양새다. 최근 첨단분야 학과를 신설한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 연구원을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학교가 제시한 연봉이 실리콘밸리 급여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기 때문에 당사자가 거부했다.

대교협에 따르면 전국 사립대의 전임교원 1인당 평균 연구비는 2011년 1207만 원에서 2021년 835만 원으로 31% 감소했다. 수도권의 한 국립대 기획처장은 “자기 실험실, 연구실이 없는 교수들도 있다. 예산이 부족해 모든 교수에게 1인당 하나씩 연구실을 배정해 줄 형편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북의 한 사립대 교수는 “전자저널 구독 비용이 매년 오르니 학교가 예산을 줄여 열람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며 “다른 대학 선후배들에게 부탁해 논문을 받아 볼 때도 있다”고 말했다.

● “등록금 규제 풀고 대학 지원해야” 요구

한계에 몰린 대학들은 교육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등록금 인상’을 저울질 중이다. 올해는 4년제 대학 17곳이 등록금을 올렸다. 부산 동아대도 3.95% 올렸다. 동아대 학생들은 처음엔 등록금 인상에 반대했는데 학교 재정 상황을 듣고는 찬성으로 돌아섰다. 강기동 동아대 총학생회장은 “학교의 재정 악화로 교육의 질이 나빠지면 결국 학생이 손해라는 생각에 등록금 인상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교육부의 등록금 규제를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고등교육법도 일정 수준(직전 3개년 평균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는 인상을 허용하는데, 교육부가 여기에 재정지원 사업, 국가장학금 사업으로 압박을 가하고 인상을 막는 것은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우 동아대 총장은 “등록금 수준이 전국 평균보다 낮은 대학들은 법정 상한선까지는 인상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남의 한 사립대 총장은 “각 시도가 지역 상황에 맞게 등록금 인상 기준을 조율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립대 사이에서는 국립대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국립대 교수들은 매년 호봉에 따라 연봉이 오르는 구조다.

반면 일부 사립대는 수년째 교수 연봉을 동결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립대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이, 국립대는 세금을 꼬박꼬박 지원받으면서 혁신도, 구조조정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과 학생 간 등록금 갈등을 방치하는 정부의 태도는 무책임하다”며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남는 초중등 예산을 대학에 투자하는 등 정부 교육재정의 재구조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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