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뱅크런 vs 금융감독과 예금보험

기자 2023. 5.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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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C)이 지속적인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파산했다. 지난 2개월 사이에 벌써 4번째 은행 파산이다. 이제 미국 중소 지역은행들의 뱅크런이 이번으로 끝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이번 사태가 고도로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은행 또는 잘못 경영된 은행의 ‘개별적인’ 실패인가, 아니면 은행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일련의 ‘구조적’ 문제들을 드러내는 징후인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대처는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가? 막대한 비보장성 예금의 존재와 디지털 뱅크런이 가능한 시대에 예금보험제도의 재설계가 필요한 것인가? 이런 수많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제기된다.

그 와중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는 실리콘밸리은행(SVB)에 대한 감독 및 규제 검토 보고서를,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예금보험제도 개혁 방안 보고서를 각각 발표했다.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뱅크런 사태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각과 향후 대응 방안을 엿볼 수 있다.

연준은 보고서에서 SVB 사태의 원인에 대한 검토 결과를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①SVB 이사회와 경영진의 리스크 관리 실패 ②SVB의 취약성을 식별하지 못한 감독당국의 역량 부족 ③취약성 인지 이후에도 감독당국이 신속하고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 ④연준의 등급별 차등규제(tailoring) 접근과 감독정책 스탠스의 변화 등이다. 은행 경영에 필수적인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경영진의 책임이 1차적일 테지만, 이로 인한 취약성을 감독당국이 제때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까지도 감독당국이 시행한 SVB의 리스크 관리 및 경영 평가 결과는 우수했다. 또한 빠른 성장으로 인해 자산 규모가 1000억달러를 넘어선 2021년부터는 더욱 강화된 감독기준이 적용되어야 했으나, 지나치게 긴 준비기간을 허용(규제 관용 문제)함으로써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아울러 2019년 완화된 금융규제에 따라 자산 규모별로 은행을 4개 등급으로 분류해 차등화된 규제를 적용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기준에 따르면 SVB는 아예 유동성 비율 규제 대상도 아니었다.

연준이 제시한 개선 방향은 첫째, 감독 프레임워크의 강화이다. 감독 집행의 속도, 역량, 민첩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문제점에 대한 식별능력을 높이고, 일단 식별되면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규제 프레임워크의 강화이다. 은행의 금리 및 유동성 리스크 관리에 대해 감독하고 규율하는 방식을 재검토하는 한편, 자본 적정성 평가 기준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FDIC는 별도의 보고서를 통해 예금보험 개혁의 세 가지 옵션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제한된 예금 보장(limited coverage)’ 옵션이다. 이는 기존의 예금보험과 동일한 구조로 예금보장 한도 금액을 높이는 방안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 방안은 본질적으로 뱅크런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둘째, ‘무제한 예금 보장(unlimited coverage)’ 옵션이다. 이 방안은 예금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고, 은행의 과도한 위험 감수 행위를 유발할 뿐 아니라 예금을 특권화함으로써 그 대체재인 여타 자산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끝으로 ‘차등화된 예금 보장(targeted coverage)’ 옵션이다. 이는 계좌 종류별로 예금 보장 한도를 달리 적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다른 계좌와 달리 기업의 결제계좌 보장 한도를 대폭 상향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면서 높은 금융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 각국의 금융 감독 및 규제가 어떤 식으로 변할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뱅크런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제 중 하나는 예금 보호 한도를 넘어서는 비보장성 예금의 대규모 이탈 가능성이다. 현재의 은행 감독은 주로 자산의 질과 자본의 구성에만 주목하고 부채 측면은 간과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은행 부채의 집중 위험에 대한 관리 기준과 감독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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