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의 한뼘 양생] 건강이 신(神)이 되어버린 사회
조인성, 이성민, 김남주, 황정민, 이병헌, 비, 공유, 이선균, 전지현, 지성, 이정재, 송중기, 유재석, 정우성…. 이들의 공통점은? 얼마 전에 치러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과 관련이 있냐고? 아니다. 힌트로 BTS, 트와이스, 손흥민, 임영웅, 김호중, 박재범, 김신록, 그리고 아이유를 추가하면? 정답은 약 광고에 출연하는 톱스타 혹은 라이징 스타이다. 얼마 전 나는 흑백영화 같은 30초짜리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게 관절 영양제 광고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싸잡아 약 광고라고 하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에 등장하는 비타민, 유산균, 오메가3, 진통제, 자양강장제, 뇌 영양제, 눈 영양제 등이 모두 의약품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광고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일반의약품과는 구별되는, 이른바 ‘건강기능식품’이다. 의약품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가 목적이고, 건강기능식품은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그냥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것(건강기능식품)과 살 수 없는 것(의약품)으로 구분하는 게 이해하기 더 쉽다. 어쨌든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6조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장의 확대를 견인하는 것이 ‘얼리 케어 신드롬(Early care syndrome)’이라는 분석이다. 예전에는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홍삼이나 비타민 등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건강에 ‘갓생’(God과 인생을 합친 신조어) 투자하는 ‘MZ 헬스케어족’이 꼼꼼한 정보 분석을 통해 스스로 ‘영양제 N종’을 산다(경향신문 4월11일자)는 것이다. 얼마 전 외국에 사는 아들이 잠시 귀국하면서 ○○제약의 프로폴리스와 밀크씨슬을 사 간다고 해서, 평상시 아들답지 않은 디테일에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아들의 친구들도 술자리 대신 헬스장이나 단백질 음료를 더 좋아한다고 하니 건강에 진심인 게 아들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갓생’ 트렌드만으로 이런 ‘셀프 메디케이션’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28일 “바이오헬스 분야의 세계 시장 규모는 약 2600조원에 달한다”면서 바이오헬스 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보건복지부도 “디지털 헬스케어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청진기와 임상적 진단 대신 신체를 데이터로 만들고, 이것을 바이오센서 등으로 모니터링하며 디지털 앱을 통해 원격 상담과 처방을 받는 세상을 열겠다는 것이다. 조만간 나의 소셜미디어에는 최근 검색한 양말과 포기김치 광고 대신 내가 스스로 입력하거나 병원에서 제공한 헬스 정보가 빅데이터로 처리돼 매일 내가 먹어야 하는 음식과 영양제, 취약한 신체 부위, 건강검진 시기 등을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미국 의사 아널드 렐먼은 의료가 아픈 사람이 아닌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하는 방식을 ‘의산복합체 전략’으로 규정했다. 전쟁이 무기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무기를 만드는 군산복합체가 소비시장으로 전쟁을 필요로 하듯, 의산복합체도 개인의 건강에 대한 소박한 염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보자는 다짐 등을 몽땅 집어삼켜 많은 사람들을 ‘건강 이데올로기의 신봉자’ ‘데이터교의 신도’ ‘제한 없는 소비자’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완벽하게 지워지는 것은 인간은 예외 없이 생로병사를 겪는 유한한 존재이며 결코 의료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의료기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빈곤, 차별, 주변화, 일자리 부족 등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라는 사실도 감춰지고 있다.
서울 힐튼호텔 옆 쪽방촌인 동자동 주민은 대부분 건강이 나쁘고, 고혈압·관절염·당뇨병·정신질환 등을 앓고 있지만 의료적 돌봄을 받지 못해 기대수명도 낮다(<동자동 사람들>). 그러나 문제는 <병든 의료>의 저자 셰이머스 오마호니의 말처럼 “건강주의는 어떤 강압과 강제가 아니라 의료와 헬스케어가 늘어날수록 선이라는 폭넓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것이며, 디지털 사회의 능력 있는 구성원이라는 확신에 찬 거대한 인구집단의 자발적 협력으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이 되어버린 건강 신(神)을 배반하는 이교도가 될 수 있을까? 디지털 사회의 능력 있는 구성원인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자신 없는 질문이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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