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돈을 자기 것처럼 굴려… 동의 없이 빚투 "전형적 폰지 사기"

박준석 2023. 5. 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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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드러나는 'SG 주가 폭락 사태' 전말]
일임업자 ‘주문 대리인’ 불과한데 맘대로 ‘빚투’
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 이익 실현 정황
주가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투자자 돈 끌어와야 
"작전세력만 돈 벌었을 것… 다단계 금융 사기"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 연루 의혹으로 최근 압수수색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서울 H투자컨설팅업체 사무실이 2일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주가조작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는 ‘투자 일임(주식 투자를 대신 해주는 일)’ 방식으로 돈을 끌어 모은 뒤 투자자 동의도 받지 않고 레버리지(빚)를 일으켰다. ‘실탄’ 규모를 키운 뒤에는 관리하던 투자자들 주식을 서로 사고팔거나, 신규 투자자가 기존 투자자 주식을 비싸게 사주며 주가를 끌어올린 듯한 흔적도 보인다. 라 대표는 투자자 간 합법 거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수년 전 치밀하게 시세조종을 계획한 정황이 포착됐다. 증권업계에선 “투자금 모집부터 운용, 투자금 회수까지 모든 과정이 사실상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사기)’였다”는 말이 나온다.


'투자 일임' 탈을 쓴 유사수신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폭락 사태와 관련 검찰에 입건된 H투자컨설팅업체 라덕연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시내에서 연합뉴스TV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라 대표는 투자금을 비정상적으로 모았다. 그는 2019년 지인들과 투자금 30억 원으로 H사를 설립한 뒤 ‘투자 일임’ 방식으로 자금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자 돈을 모아 펀드를 조성한 후 운용사가 독립 운용하는 집합투자와 달리, 현행법상 투자일임은 투자자 명의 계좌에 들어가 관리해주는 형태라 제약이 많다. ①투자대상 ②한도 ③기간 등을 규정한 투자일임 계약을 체결해야 일임매매가 이뤄진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일임이란 말이 많은 권한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임업자는 언제 얼마나 사고팔지 대신 결정하는 대리인 정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H사는 투자자 자금을 쌈짓돈처럼 굴렸다. 투자자 A씨는 “평생 카드 할부조차 쓴 적이 없는데, 라 대표 측이 내 계좌에서 2배가량 레버리지(빚)를 일으켜 주식을 샀다”며 “원금 날리고 원금만큼 빚이 생겼다”고 푸념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일임매매에서 레버리지를 투자자 동의 없이 일으킨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돈이 어디에 투자됐는지도 몰랐다. 주주총회 소집 통지서 등을 전달받고 뒤늦게 투자 대상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한 투자일임사 대표는 “라 대표에 적용된 죄명은 ‘미등록 투자일임’이지만, 본질은 투자자 돈을 자기 돈처럼 굴린 것”이라며 “투자일임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유사수신 사기”라고 비판했다.


투자자끼리 손바꿈하면 통정매매가 아니다?

JTBC 보도 캡처

운용 방식 또한 위법 소지가 뚜렷하다. 금융당국은 라 대표 등이 매매 가격 등을 사전에 짜고 거래하는 수법으로 2~3년간 주가를 끌어올린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 대표는 본보 인터뷰에서 “통정매매가 아닌 투자자 간 스위칭”이라고 반박했다. 기존 투자자가 수익을 실현하고자 주식을 1억 원에 팔고 나가고 싶을 때, 후속 투자자가 이 물량을 받아주는 식으로 거래를 조율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라 대표가 2021년 투자설명회에서 “제가 (시세조종) 지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런 해명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라 대표는 이에 대해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본질은 다단계?

최근 SG증권발 폭락 사태로 드러난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키움증권에 대한 차액결제거래(CFD) 검사에 착수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키움증권 본사의 모습. 연합뉴스

라 대표가 당초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줄 생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삼천리 등 8개 종목 모두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유통주식 비율이 50%가 되지 않는다. 서울가스는 전체 주식의 17.4%만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거래량이 적어 주가를 끌어올리긴 쉽지만,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나 개인들의 매수가 뒤따라야, 라 대표 등이 보유 물량을 고점에서 팔고 나갈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가 상승으로 연기금이 투자를 늘리긴 했지만, 이들 세력의 조(兆) 단위 투자금을 회수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에 신규 투자자가 기존 투자자의 '엑시트' 물량을 받아주는 다단계 구조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소수 부유층을 상대로만 투자금을 모집하던 이들이 최근에는 ‘VIP 지인’까지 영업 대상을 확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라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주주가 일부러 가격을 누르고 있는 주식을 들고 있다가, 상속 시기에 대주주에게 팔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라 대표 등이 사들인 주식 중에는 하림과 다우키움 등 기업 승계 작업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곳이 많았다. 다만 승계 작업이 언제 진행될지 알 수 없기에, 그때까지 주가를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신규 투자자 돈을 끌어와야 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주가조작 세력이 투자자 수익의 50%를 성과 수수료로 떼갔기에 투자자들은 결국 돈을 잃지만 세력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며 “전형적인 폰지 사기”라고 지적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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