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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부 도시 나폴리 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일단 스파게티와 피자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폴리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이 두 음식의 발상지로 불리는 곳이죠. 봉골레와 알리오 에 올리오가 나폴리에서 유래한 스파게티이며, 마르게리타 피자는 나폴리를 상징하는 음식입니다.
나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호주 시드니와 더불어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일부에선 쓰레기가 넘쳐난다며 이의를 달기도 하지만요. 올 시즌 나폴리로 이적해 유럽 최정상급 수비수로 올라선 김민재가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 출신인 것도 참 재밌죠. 나폴리는 이탈리아 3대 마피아 세력 중 하나로 통하는 카모라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축구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대도시엔 보통 두 개의 라이벌 축구팀이 존재합니다. 밀라노에는 AC밀란과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가 있고, 로마엔 AS로마와 라치오가 경쟁을 펼칩니다. 토리노에도 유벤투스와 토리노FC가 있죠.
그런데 로마, 밀라노에 이어 제3의 도시로 불리는 나폴리에는 단 하나의 팀, SSC나폴리가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나폴리 인근엔 2000여년 전 폭발했던 베수비오 화산이 있습니다. 나폴리 팬들은 “우리는 베수비오의 아들~ 언젠가는 터지더라도 그럼에도 이번 생을 너와 함께~”라는 열정적인 가사의 응원가를 부르죠.
작가인 안젤로 포지오네는 “유럽 대도시의 축구팀 중 드물게 SSC나폴리는 한 도시를 대표하는 단일 클럽”이라며 “우리는 이탈리아인보다 나폴리인이란 정체성을 먼저 내세운다. 축구가 그런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시켜준다”고 말했습니다.
이탈리아는 19세기에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수많은 소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지금도 지역색이 강하죠.
그런 상황에서 남부를 대표하는 축구 클럽 SSC나폴리는 나폴리 시민들에겐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 지역에 맞설 수 있는 자존심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나폴리 팬 파올로 시미노는 BBC 인터뷰에서 “나폴리에서 축구는 전부”라면서 “축구는 북쪽에 억눌려 있던 남쪽 사람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나폴리는 올 시즌 이탈리아 프로축구 정규리그인 세리에A 우승을 사실상 확정했습니다. 5일 오전 3시45분에 열리는 우디네세 원정에서 비기기만 해도 정상 등극입니다.
지난달 30일 살레르니타나전에서 승리했다면, 홈에서 우승 축포를 쏘아 올릴 수 있었지만, 막판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팬들은 33년을 기다렸는데 며칠을 더 못 기다리겠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죠. 나폴리의 마지막 세리에A 우승 연도는 디에고 마라도나(1960~2020)가 활약했던 1990년입니다.
지금 나폴리 시내엔 우승을 축하하는 하늘색 플래카드와 깃발이 이미 곳곳에 나부끼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앞다퉈 나폴리와 관련한 벽화를 그리고 있고요. 김민재를 포함해 올 시즌 나폴리 선수들을 등신대로 만들어 놓은 곳은 ‘인증 샷’ 명소가 됐습니다.
일부 광적인 팬들은 나폴리가 우승하면 베수비오 화산 분화구에 올라가 삼색 조명탄을 터뜨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소식에 화들짝 놀란 베수비오 국립공원 측은 성명을 내고 “화산 가까이 가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며 혹시라도 그런 계획을 갖고 있다면 당장 포기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베수비오 화산은 2017년 대형 산불로 손상을 크게 입어 지반이 극히 불안한 상태라고 합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서 번성했던 도시 폼페이가 일순간에 사라진 슬픈 역사가 있죠.
나폴리 팬들은 이색적인 장례식도 준비했습니다. 유벤투스 등 세리에A 주요 클럽들의 머플러를 두른 관 주위에 나폴리를 제외한 세리에A 19팀 로고가 그려진 십자가를 박아 놓았죠. 이른바 세리에A 묘지로, 나폴리를 뺀 모든 팀은 죽었다는 의미의 다소 코믹한 의식입니다.
또한 나폴리 현지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는 영상이 있는데요. 인기 축구 유튜브 채널 ‘슛포러브’가 공개한 정동식 심판의 나폴리 방문기입니다. 2013년부터 K리그에서 휘슬을 분 정동식 심판은 김민재와 닮은 외모로 유명한데요. 정동식 심판이 1980년생으로, 김민재보다 열여섯 살이 많으니 김민재가 정동식 심판을 닮았다고 하는 게 이치에 맞을 것 같습니다.
영상을 보면 정동식 심판이 나폴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민들의 사인, 촬영 요청이 쏟아집니다. 대부분 팬은 정동식 심판을 김민재로 오인했죠. 정동식 심판은 곧바로 자신은 김민재가 아니라며 바로잡아주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즐거워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 날 그가 나폴리 시내로 나가자 그야말로 난리가 났죠.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앞다퉈 그에게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팬 미팅 현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정동식 심판은 자신은 김민재가 아니라고 거듭 밝혔지만, 나폴리 팬들은 개의치 않고 어깨동무를 한 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결국 그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피자 박스에 ‘김민재 아닙니다. 닮은 사람입니다’란 글자를 써서 들고 다녔죠. 그 모습에 시민들은 웃으면서도 “킴! 킴!”을 연호했습니다.
김동준 슛포러브 대표는 “김민재 닮은꼴인 정동식 심판이 나폴리를 찾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번에 실행에 옮기게 됐다”며 “생각보다 훨씬 현지 반응이 좋아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나폴리가 5일 우디네세 원정에서 우승을 확정한다면, 수많은 나폴리 팬들이 다음 날 그들의 귀환길을 반길 것으로 보입니다. 나폴리 시내에선 또 한바탕 축제가 벌어지겠죠. 우승팀의 특권인 버스 퍼레이드엔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까 기대도 됩니다. 하늘에 있는 마라도나도 기뻐하겠죠.
나폴리 축구를 이야기하면서 마라도나를 빼놓을 순 없습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신(神)과 같은 존재니까요. 베수비오처럼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나폴리 홈 구장 이름이 바로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입니다. 마라도나를 추억하며 나폴리 축구 역사를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1926년 창단한 나폴리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을 호령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라도나가 활약한 1980년대입니다.
FC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마라도나는 1984년 당시 이적료 기록을 갈아치우며 690만파운드에 나폴리 유니폼을 입습니다. 유벤투스와 AC밀란, 인테르, AS로마 등 이탈리아 명문 클럽을 제쳐놓고 1983-1984시즌 승점 1점 차이로 2부 리그 강등을 겨우 면한 나폴리를 택한 거죠. 당시 마라도나의 입단식을 보기 위해 6만5000여명의 관중이 홈 구장에 운집합니다. 결국 마라도나의 선택은 나폴리 축구 역사를 바꿔 놓습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끈 마라도나는 1986-1987시즌 나폴리의 고공 행진도 이끌게 됩니다. 마라도나의 활약 속에 나폴리는 선두로 올라섰고, 결국 피오렌티나와 시즌 마지막 홈 경기에서 1대1 무승부를 거두며 유벤투스를 승점 3점 차로 제치고 창단 61년 만에 스쿠데토(작은 방패란 뜻으로 세리에 A 우승을 의미)를 차지하는 감격을 누리죠.
수많은 나폴리 팬들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마라도나와 함께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나폴리는 그해 코파이탈리아에서도 처음으로 우승합니다. 마라도나는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7골을 터뜨리며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죠.
1987년, 나폴리는 여름 내내 축제였습니다.
세리에A에선 1970년 칼리아리 갈초 외엔 로마 이남 지역에서 우승이 나온 적이 없었기에 남부 지방을 대표하는 나폴리의 우승은 이탈리아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늘 북부에 차별을 당한다고 여겼던 남부 사람들도 나폴리가 스쿠데토를 차지하며 어깨를 펼 수 있었죠.
나폴리를 세리에A와 코파이탈리아 정상으로 이끌며 마라도나는 나폴리의 ‘신’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나폴리 지역엔 마라도나를 신으로 모시는 ‘마라도나교(敎) 신자들이 있는데 그때가 시초가 된 거죠.
그리고 1988-1989시즌. 마라도나의 나폴리는 UEFA컵(유로파리그 전신) 결승에 오릅니다.
결승 상대는 독일의 VfB 슈투트가르트. 현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인 위르겐 클린스만이 버티고 있던 팀이었죠. 나폴리에서 열린 1차전에선 마라도나가 1골 1어시스트로 2대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어 열린 2차전. 나폴리가 전반 18분 알레망이 선제골을 넣자 슈투트가르트가 9분 뒤 클린스만의 헤더 골로 반격했습니다.
그러자 마라도나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전반 39분 헤더로 페라라의 골을 도운 마라도나는 후반 17분엔 시원한 질주 끝에 카레카에 결정적 패스를 내줘 3-1을 만들었죠.
슈투트가르트가 두 골을 추격했지만, 결국 나폴리가 1·2차전 합계 5대4로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마라도나는 그렇게 두 경기에서 1골 3도움을 올리며 나폴리에 창단 첫 유럽 대항전 우승 트로피를 안겼습니다.
세리에A에 UEFA컵 우승까지. 마라도나는 나폴리 시민에게 점점 더 신격화되고 있었습니다.
1989-1990시즌. 마라도나가 코카인 복용을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던 때입니다. 나폴리에서 악명 높은 마피아 조직 카모라가 마라도나에게 마약을 제공하며 그를 조종한다는 것이었죠.
그래도 마라도나는 그라운드에선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AC밀란과 치열한 선두 경쟁 끝에 나폴리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마라도나의 어시스트를 바로니가 헤더 골로 연결하며 1대0으로 승리, 밀란을 승점 2점 차로 제치고 창단 후 두 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합니다.
나폴리에선 마라도나가 영웅이었지만, 나폴리를 제외한 다른 이탈리아 팀 팬들에겐 마라도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마라도나가 이탈리아에서 ‘악마’가 되어버린 사건이 터지고 말죠.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4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납니다. 장소는 공교롭게도 나폴리.
마라도나를 두고 나폴리 시민들은 조국인 이탈리아를 응원해야 할지, 자신들이 ‘신’으로 추앙하는 마라도나를 응원해야 할지 큰 고민에 빠지게 되죠.
어쨌든 경기는 1-1로 승부차기까지 갑니다. 마라도나는 4번 키커로 나서 골망을 갈랐고, 아르헨티나는 골키퍼 세르지오 고이고체아의 선방에 힘입어 4대3으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하죠.
조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이 가로막히자 이탈리아 사람들은 마라도나에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나폴리로 복귀한 그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죠. 마라도나를 벼르고 있던 경찰 당국은 마약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1991년 3월, 마라도나는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오며 15개월간 자격 박탈을 당하고 맙니다. 나폴리를 두 차례 세리에A 우승, 한 차례 UEFA컵 우승으로 이끈 전설적 영웅의 가파른 몰락이었죠.
그는 그렇게 쓸쓸히 짐을 쌌습니다. 마라도나는 이후 “나폴리에 처음 왔을 땐 수만 명이 날 환영해 줬는데 떠날 땐 완전히 외톨이였다”고 회고했습니다.
마라도나 시대가 끝나고 나폴리 영광의 시대도 막을 내리고 맙니다. 지안프랑코 졸라 등이 활약하긴 했지만, 우승으로 이끌기엔 역부족이었죠.
나폴리는 1997-1998시즌에 2승8무24패로 최하위에 처지며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2000-2001시즌 세리에A로 올라왔지만, 바로 또 강등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2004년. 나폴리는 구단주가 스캔들에 연루돼 체포되면서 파산을 선고받고 3부 리그인 세리에C까지 떨어졌습니다. 마라도나 시대의 찬란했던 영광을 기억하는 팬들로선 믿기지 않는 시간이었죠.
다행히 구원자가 등장합니다. 나폴리의 오랜 팬이자 영화 제작자인 아우렐리오 데 로렌티스였죠.
이탈리아 최대 영화 제작사인 필마우로를 설립한 그는 3900만유로에 나폴리를 인수합니다. 그는 통 큰 투자로 5년 이내에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올려놓는다고 약속했고, 팬들이 이에 화답하며 나폴리는 2004-2005시즌 세리에C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우게 되죠.
그리고 나폴리는 세리에B를 거쳐 2007-2008시즌 세리에A에 오르면서 데 로렌티스 구단주는 3년 만에 약속을 지키게 됩니다.
나폴리는 2010년대 들면서 중흥기를 맞이합니다. 슬로바키아 출신 미드필더 마렉 함식이 중심이 됐죠. 2007년부터 나폴리에서 뛴 함식은 2019년까지 하늘색 유니폼을 입으며 구단 통산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웁니다.
함식은 수많은 빅클럽의 구애에도 “돈이라면 머리 세울 왁스 값만 있으면 된다. 나폴리 유니폼은 내 피부와 같다”고 했죠(그는 나중에 유럽이 아닌 중국 리그로 옮기며 나름 나폴리와의 의리를 지켰습니다).
함식과 에딘손 카바니, 에세키엘 라베치가 강력한 공격진을 구축한 나폴리는 2011-2012시즌 코파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합니다. 결승에서 카바니와 함식이 한 골씩 넣으며 유벤투스를 2대0으로 제압했습니다. 마라도나 시대 이후 첫 우승컵이었죠.
나폴리는 이후 2012-2013, 2015-2016, 2017-2018, 2018-2019시즌 세리에A 2위에 오르며 강호로 군림합니다. 2015-2016시즌엔 곤살로 이과인이 36골로 세리에A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죠.
2017-2018시즌은 마라도나 시대 이후 가장 우승에 근접한 시즌입니다. 유벤투스와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승점 4점 차로 고배를 마셨습니다. 유벤투스가 승점95, 나폴리가 승점 91. 3위 로마는 승점 77로 한참 처졌습니다.
나폴리가 세리에A 우승 경쟁을 이어가는 동안 드리스 메르텐스(148골)와 로렌조 인시녜(122골)가 함식(121골)과 마라도나(115골)를 제치고 나폴리 개인 통산 득점 1·2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메르텐스와 인시녜는 올 시즌을 앞두고 나폴리를 떠납니다.
2022-2023시즌을 앞두고 나폴리는 출혈이 심했습니다. 오랜 시간 나폴리 득점을 책임진 메르텐스와 인시녜를 포함해 수비의 핵인 칼리두 쿨리발리,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 파비안 루이스가 나폴리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반면 김민재를 포함해 새로 나폴리로 온 선수도 많았죠. 그렇다면 33년 만에 나폴리에 우승을 안긴 주역들을 살펴볼까요?
왼쪽 윙어인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22·조지아)는 김민재와 함께 올 시즌 나폴리의 대표적인 히트작입니다. 이번 시즌 나폴리 선수 중 평균 평점(후스코어드닷컴 기준)이 7.54로 가장 높습니다. 기회 창출 능력이 뛰어난 그는 10어시스트로 세리에A 도움 선두를 달리고 있죠. 또한 12골로 세리에A ‘10-10′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흐비차는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태어났습니다. 16세에 조지아 리그인 디나모 트빌리시에서 프로 데뷔한 그는 러시아 루빈 카잔에서 2020-2021시즌 4골 8도움으로 맹활약하며 유럽 빅클럽의 러브콜을 받죠. 당시 황인범과 함께 뛰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카잔을 떠난 흐비차는 잠시 고국 리그인 디나모 바투미에 몸을 담았죠. 11경기에서 8골 2도움을 기록하며 조지아 리그를 지배한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나폴리 유니폼을 입습니다.
흐비차는 시즌 개막과 함께 8월 이달의 선수상을 받는 등 곧바로 세리에A 최고 선수로 올라섰습니다. 카타르 월드컵 브레이크 이전까지 6골 7도움으로 나폴리의 리그 선두 질주를 이끌었습니다. 나폴리 팬들은 그를 ‘크바라도나(크바라츠헬리아+마라도나)’라 불렀을 정도이니 말 다했죠.
올해 2월 그는 또 세리에A 이달의 선수에 선정됩니다. 흐비차는 2월에만 세리에A에서 3골 1도움을 올렸습니다. 흐비차는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이번 시즌 14골 16도움을 기록 중입니다.
흐비차의 최대 강점은 돌파력입니다. 뛰어난 드리블과 스피드를 앞세워 순식간에 상대 측면을 허물어뜨리죠.
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 들어와 날리는 슈팅도 일품입니다. 이강인과 2001년생 동갑내기인 22세라 발전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나폴리로선 지난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난 인시녜의 대체자를 찾은 셈이죠.
김민재의 등장으로 한국인들이 나폴리에서 환영받는 것처럼 흐비차의 존재로 인해 조지아인들도 나폴리에서 큰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흐비차는 AC밀란에서 활약한 카카베르 칼라제 이후 오랜만에 유럽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조지아 스타입니다.
나폴리 경기가 있는 날이면 조지아인들은 한 데 모여서 흐비차를 응원한다고 하네요. 대형 스크린을 통한 거리 응원도 펼쳐지고요. 나폴리 현지에서도 요즘 심심찮게 조지아 국기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나폴리의 스트라이커 빅터 오시멘(25·나이지리아)은 최근 유럽 이적 시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골잡이 중 하나입니다. 이번 시즌 평균 평점이 7.50으로 흐비차 다음이죠.
오시멘은 독일 VfL 볼프스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유럽 무대를 밟았습니다. 2018-2019시즌 벨기에 샤를루아에서 20골을 넣으며 다음 시즌 프랑스 릴로 이적했고, 릴에서도 18골을 터뜨렸습니다.
오시멘은 2020-2021시즌을 앞두고 나폴리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10골 3도움으로 시즌을 마친 그는 2021-2022시즌엔 한 단계 올라선 모습을 보이며 18골 6도움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올 시즌 기량이 만개했죠. 전반기 9골로 꾸준히 득점을 올린 그는 지난 1월 5골 1도움으로 이달의 선수상을 받습니다. 그는 2월에도 4골(챔피언스리그 포함)을 넣으며 득점을 이어갔죠. 올 시즌 세리에A에서 21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를 합하면 26골입니다.
검정색 안면 마스크가 트레이드 마크인 오시멘은 빠른 발과 풍부한 활동량을 자랑하는 공격수입니다. 쉴 새 없이 전방 압박을 가하고 배후 공간을 파고들면서 상대 수비를 괴롭히죠. 185cm의 키에 점프력도 좋아 헤더 골을 곧잘 터뜨립니다. 이번 시즌을 통해 이탈리아 리그 최고 스트라이커로 떠오른 그에게 맨유와 바이에른 뮌헨 등 빅클럽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김민재와 흐비차, 오시멘 외에도 나폴리의 영웅은 많습니다. 그야말로 다국적 군단이죠.
피오트르 지엘린스키(29·폴란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16-2017시즌에 앞서 함식의 후계자로 나폴리가 영입한 공격형 미드필더죠. 벌써 나폴리 7년차입니다. 올 시즌에도 7골 10도움으로 쏠쏠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풀백으로 주로 나서는 주장 조반니 디로렌초(30·이탈리아)는 올 시즌 세리에A 32경기 전 경기에 모두 나섰습니다. 그러면서도 평균 평점 7.05로 활약했죠.
미드필더 잠보 앙귀사(28·카메룬)는 이번 시즌 3골 7도움을 올렸습니다. 평균 평점은 7.03. 수준급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로 많은 팀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인 스타니슬라프 로보트카(29·슬로바키아)는 중원에서 뛰어난 탈압박 능력을 앞세워 공격 전개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센터백 아미르 라흐마니(29·코소보)는 김민재와 함께 중앙 수비 콤비로 활약했죠. 주로 교체로 나오는 조커 엘리프 엘마스(24·북마케도니아)는 6골로 오시멘과 흐비차에 이어 나폴리에서 셋째로 많은 골을 터뜨렸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선수를 한데 묶어 세리에A 최고 팀으로 만든 루치아노 스팔레티(64·이탈리아) 감독은 세리에A에서 잔뼈가 굵은 사령탑입니다. 엠폴리와 삼프도리아, 베네치아, 우디네세, 로마, 인테르 등 수많은 클럽을 지휘했습니다. 로마 시절인 2005-2006시즌, 2006-2007시즌에는 세리에A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스팔레티가 세계 축구사에 가장 뚜렷하게 남긴 발자취는 ‘폴스 나인(가짜 9번)’입니다. 그가 창안한 개념은 아니지만, 그는 ‘폴스 나인’을 가장 잘 활용한 감독으로 꼽힙니다.
스팔레티는 로마를 지휘할 당시 마땅한 스트라이커가 없자 득점력이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인 프란시스코 토티를 플레이메이커로 올린 뒤 그의 2선 움직임을 통해 공격을 풀어냈죠. 최전방 공격수로 보였던 토티가 2선으로 내려가면 수비가 그를 따라왔고, 그 틈에 토티의 스루패스가 후방에서 침투한 미드필더에게 전달돼 골을 만들어냈죠.
2019년 인테르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2년간 ‘백수’로 지냈던 스팔레티는 2021-2022시즌을 앞두고 나폴리 지휘봉을 잡습니다. 첫 시즌을 3위로 마친 그는 팀 예산이 줄어들면서 인시녜와 메르텐스 등 주력 선수들이 떠난 상황에서 김민재와 흐비차 등 새 얼굴로 이번 시즌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스팔레티 감독은 백패스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올 시즌 김민재에게 뒤로 패스하지 말라고 소리를 친 적도 있습니다. 스팔레티의 나폴리는 이번 시즌 최후방부터 전진 패스를 이어가면서 상대 공간을 공략하는 공격 축구를 선보였습니다.
탈압박 능력이 뛰어난 수들이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쉴 새 없이 공간에 침투하는 축구로 나폴리는 세리에A 정상에 군림할 수 있었죠. 끊임없이 현대 축구의 트렌드를 좇는 전술가 스팔레티의 아름다운 축구에 팬들은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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