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룩 업(Look Up)’ 인구재앙

박희준 2023. 5. 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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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경고 외면하다 지구멸망
작년 합계출산율 0.78명 지속되면
80년 후 2000만명 밑으로 떨어져
국가소멸 위기, 대통령 직접 나서야

6개월 14일 후면 인류가 멸망한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거대 혜성이 관측된 것이다. 혜성의 직경이 5∼10㎞나 된다. 지구와 충돌 가능성은 99.78%다. 수치를 기반으로 한 천문학자 경고에 최고 정치지도자 결론은 단순명료하다. ‘지켜보고 판단한다(see tight and assess).’ 2021년 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내용이다.

‘돈 룩 업’은 닥쳐오는 재앙을 외면한 채 눈앞 이익만 좇는 정치권과 사회의 행태를 꼬집고 있다. 영화에서 현실을 직시하라면서 외치는 ‘위를 보라(룩 업)’는 경고는 ‘위를 보지 말라’는 정치적 구호에 뒤덮인다. 인류가 멸망하고 2만2740년이 흘러 우주선 냉동캡슐을 타고 한 행성에 도착한 이들이 외계 생명체에 잡아먹히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박희준 논설위원
80년 후면 5000만명인 우리나라 인구가 2000만명 아래로 뚝 떨어진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경고다. 계산은 간단하다. 1946∼65년 출생한 베이비부머가 2050년부터 사망 연령대가 된다. 매년 70만명가량이 태어난 세대다. 지난해 출생아가 24만9000명이니 여성은 절반인 12만∼13만명. 여성 숫자에 지난해 말 합계출산율 0.78을 곱하면 2050년대 신생아는 연간 10만명 정도로 계산된다. 10만명이 태어나고 70만명이 사망하니 우리나라 인구는 매년 60만명씩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암울한 미래다.

어느 한 인구학자만의 경고가 아니다. 위기음은 통계청이 2000년부터 내기 시작한 월별 통계를 통해 매달 나온다. ‘역대 최저’, ‘기록이 또 깨졌다’는 말을 워낙 자주 듣다보니 내성이 생겨서인가. 이제 어지간해선 충격으로 들리지도 않는다. 지난 2월 출생아 수는 1만9939명으로 2만명 아래로 내려갔는데도 말이다. 또 역대 최소치다. 베이비부머 시절 최고 월 9만명까지 태어나던 것과 격세지감이다. 대한민국 인구가 2000만명 밑으로 떨어질 시기가 ‘80년 후’에서 더욱 앞당겨질 것이라는 얘기다.

숫자가 아니라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불똥처럼 생생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요즘 군 부대 중에는 사병 급식을 전문푸드업체에 위탁한 곳이 있다고 한다. 단무지 몇 조각에 건더기 없는 콩나물국 같은 급식 사진이 공개되자 형편없는 급식의 질을 높이려는 게 아니다. 병역 의무자원 감소로 취사병이 절대 부족해서다. 부대 내 취사병들은 업무 과중을 호소한다. 조리로봇 도입을 검토하는 부대까지 있다. 전시상황이 발생하면 어찌 해야 할까. 전쟁터에 민간 푸드업체 직원들이 따라다니고 조리로봇을 수송해 가야 할지 모를 일이다.

어린이집들은 어린이가 없어 문을 닫는다. 지난해 말 전국 어린이집 수는 3만923개로 집계됐다. 4년 전 3만9171곳과 비교하면 5곳 중 1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가 지방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 2월 서울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가 학생수 감소로 폐교했다. 성인용 기저귀 공급량이 유아용보다 1.6배 많아 산업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룩 업’, 대한민국을 향해 몰려오는 인구 재앙을 쳐다봐야 한다. 우리나라 양육비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보고서가 엊그제 나왔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 갖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경고음이다. ‘지켜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당장 대처해야 할 위기다. 대통령이 나서 직속 저출산고령위원회를 자주 열고 무엇이라도 해봐야 한다. “(위원회 부위원장은) 비상근이라서 보통 국회의원 하셨던 분들이 겸직하면서 1년에 몇 번 회의하는 자리”라고 한 모 정치인의 안일한 인식이어서는 안 된다. 대중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앞에 놓인 길을 보라”면서 눈앞 선거에만 관심을 갖는 영화 속 지도자와 다를 게 없다.

‘돈 룩 업’에서 주인공은 혜성 충돌의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 보면, 우린 정말 모든 걸 갖고 있지 않았어? 그렇지? 생각해 보면 그래.” 모든 걸 갖고서도 지구 종말을 맞은 영화 속 실수를 현실에서는 되풀이하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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