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와 샴페인 마셨다...172년 전 韓·佛 첫 만남, 파리서 재연
1851년 5월,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飛禽島)에서 한국 근대사의 문을 여는 역사적 조우(遭遇)가 벌어졌다. 이 섬에 난파한 프랑스 포경선 나발(Naval)호 선원 20여 명을 구하러 중국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 샤를르 드 몽티니(Montigny)가 통역관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이때는 프랑스와 조선이 ‘조불 우호 통상 조약’(1886년)을 통해 공식 관계를 맺기 35년 전이었다. 조선을 처음 찾은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선원들이 서양을 배척(排斥)하는 섬 주민들에게 박해받으며 억류되어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비금도에 와보니 선원들은 조선 조정의 유원(柔遠) 정책 덕에 무사히 잘 지내고 있었다. 이곳을 관할하던 나주목(牧)도 적극 협력했다. 철종 2년 음력 4월 1일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에는 “비금도에 표류한 이국인 20명의 귀환을 위해 튼튼한 배 2척을 골라 제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감격한 몽티니 영사는 감사의 편지를 남기고, 상하이로 떠나기 전날인 5월 2일 밤 나주 목사 김재경(金在敬)을 만나 조선의 후의(厚意)에 보답하는 저녁 자리를 가졌다. 이날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산 샴페인 10여 병을, 나주목사는 갈색 옹기에 조선의 전통술을 가득 담아 가져왔다. 프랑스와 한국의 첫 만남이 양국을 대표하는 술과 함께 아름답게 마무리된 것이다.
정확히 172년이 흐른 2023년 5월 2일(현지 시각), 양국의 역사적 첫 만남을 다시 한번 기념하는 행사가 파리 세브르의 프랑스 국립 도자기 박물관에서 열렸다. 놀랍게도 170여 년 전 만찬 자리에 나왔던 갈색 주병(酒甁)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몽티니 영사가 관아에서 내놓은 술병 중 하나를 만남의 증거로 가져 왔고, 당시의 일을 상세히 적은 외교 문서와 함께 프랑스 정부에 제출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 박물관에 남아 양국의 인연을 증명하고 있다.
이날 행사 역시 ‘막걸리와 샴페인의 만남’이라고 이름 붙었다. 몽티니 영사가 남긴 기록엔 “조선 술은 맑고 독했다”고 되어 있어 소주가 아니냐는 해석이 있지만, 최근 유럽의 ‘K푸드’ 유행을 주도하는 한국 술이 막걸리라는 점을 감안했다. 박물관의 도자기 제작 시설 한편에서 당시의 일을 재연한 작은 공연과 함께 양국을 대표하는 샴페인 2종과 막걸리 3종이 손님 200여 명을 맞았다. 또 샤를르 고메르 프랑스 샴페인협회 사무총장, 정규석 한국 막걸리협회 고문, 비금도 사건을 연구해 온 피에르 에마뉘엘 루 파리 7대학 교수 등이 참석했다.
고메르 사무총장은 “동서를 막론하고 좋은 술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마력이 있다”며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에서 막걸리와 샴페인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했다. 에마뉘엘 루 교수는 “19세기 한·프랑스 관계를 논할 때면 보통 천주교의 전래나 (외규장각 문서를 약탈한) 병인양요부터 떠올리지만, 실은 그 전부터 양국 간에 인도주의적·문화적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행사를 주최한 주(駐)프랑스 한국 대사관은 이날 프랑스인들과 파리 주재 각국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2030년 부산세계박람회 행사 유치도 적극 홍보했다. 최재철 주프랑스 한국 대사는 “2024년 파리 올림픽, 2026년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 등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11월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도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라는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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